18주.
타는 듯한 가슴통증과 식도가 타들어갈 것 같은 속 쓰림이 시작되었다. 16주 무렵부터 조금씩 시작된 속 쓰림은 18주가 되자 점점 더 거세졌다. 돌멩이를 삼킨 것만 같이 멈춰버리고 꽉 막혀버린 것 같은 위장 상태가 순식간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화끈거리는 쓰림으로 태세를 바꿨다. 임신 초기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속의 상태는 체한 것 같은 상태와 배고픈 상태밖에 없어.'라고 말했는데 음식물이 들어있을 때는 거북하고 메슥거리고 체한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지고, 그게 지나가면 바로 타는 듯한 속 쓰림으로 바뀌었다. 체한 것 같은 느낌이 두려워 음식을 먹기가 꺼려지고 또 타는 듯한 속 쓰림이 느껴지면 뭐라도 입에 욱여넣어야 했다.
"그렇게 아프면 약을 먹으면 되지."
무심히 지나치며 하는 소리에 임산부가 먹을 수 있는 제산제를 처방받아서 먹었다. 약을 먹으면 불난 속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그런데 다음날 시작된 변비에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초반에 조산끼가 있었던 터라 화장실을 가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인데 변비에 온 힘을 다 쓰고 나면 아이에게 무리가 갈까 봐 두려워졌다. 임신을 하고 가장 두려운 것은 나의 고통보다는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었다. 제산제의 평온은 짧고 두려움은 길었다. 속이 불타올라도 제산제를 찾지 않게 되었다.
혹시 비슷한 경험이 있는 임산부들은 없는지 그들은 어떤 현명한 방법으로 이겨내고 있는지 블로그나 카페에 묻기도 했다. 대부분은 광고들이었고 그게 아니면 괴롭지만 그냥 견뎌내면 언젠가는 괜찮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견뎌내기로 했다. 이유 없는 고통이 어디 있겠는가. 속이 쓰려지면 무엇이라도 먹고, 속이 더부룩하면 몸을 조금 움직였다. 그러다 오래 서 있거나 걷다 보면 배가 뭉쳤다. 그럼 또 쉬어가곤 했다.
16주 병원 정기검진에서 이제 슬슬 철분제를 복용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이 있었다. 철분제야 임신하고 보건소에서 받은 철분제도 있고, 그 이전에 약간의 빈혈끼로 복용하던 철분제가 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비릿한 철분의 맛은 하루 종일 속을 뒤집어 놓았다. 또 속 쓰림을 가중시키고, 변비는 너무나 당연한 부작용으로 따라붙었다. 아이에게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서 혈액량은 50%가 증가하는데, 양이 증가하면서 혈액에 필요한 철분의 농도는 옅어지게 되어 빈혈이 발생하고 그에 따른 난청이나 어지러움증 두통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임산부에게는 물론 아이에게도 혈액이 필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어 신생아 체중 저하 및 기형아 출산 위험이 증가한다고 한다. 나는 이미 혈색이 없어지고 있는 중이고 잦은 두통과 어지러움이 동반되고 있는 상태이다. 철분제를 못 먹으면 붉은색 고기라도 섭취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는 입덧으로 고기는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 속에 애타는 마음만 커져간다.
18주에 들어서고 생긴 또 다른 증상은 뼈마디가 욱신거리는 증상이다. 자고 일어나면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 모든 관절이 욱신거린다. 혈액순환 장애가 원인일 수 있고, 임신 중 생성되는 릴렉신 호르몬으로 근육과 인대가 이완되어 관절이 불안정해지면서 생기는 현상일 수도 있다고 한다. 또 배가 부르면서 수면 자세를 원만하게 바꾸지 못하는 것이 원인인 것 같기도 하다. 원인이 무엇이든 내 몸에 나타나는 현상은 너무나 현실이고 내 것이어서 쑤시는 관절을 주무르고 근육을 주무르며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다. 파스도 붙이지 못하는 임산부의 몸에 이런 크고 작은 통증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다.
임신 전에는 배고프면 밥을 먹고, 아프면 약을 먹고 병원을 가고, 소화가 안 되면 운동을 하던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을 할 수가 없다. 모든 고통을 혼자 끌어안아야 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누가 대신해줄 수도 없고 곁에서 지켜보기엔 답답한 일들이 늘어간다. 그저 당연한 일상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무 무섭다. 마치 엄마가 되려면 끊임없이 참고 견뎌야 한다는 트레이닝 같기도 하다. "고작 이것도 버티지 못하면서 엄마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단 말이야?" 하는 핀잔 같기도 하다. 각오를 나름 했는데, 굳게 먹은 마음도 가끔 무너지게 할 때가 있다.
임신 후에 벌어질 모든 일들을 모두 안다면 임신할 때 누구나 신중하고 또 신중할 것이다. 그런데 임신은 너무 많이 가려져있다. 임신을 하고 내 몸에 일어나는 증상을 하나하나 느끼고 겪고 누군가에게 묻기 전까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증상을 이야기하면 "아! 나도 그랬어. 앞으로는 더 심해질걸?"라며 대수롭게 않게 얘기한다. 아이를 낳고 행복감에 지나온 길을 모두 잊은 엄마들의 덕분인지 괴롭고 힘들었다는 기억보다는 아이의 얼굴을 처음 보자마자 잊히는 행복감에 모두들 그런 일이 있었었지 정도의 가벼운 회상으로 남기는 것 같다. 나도 아이와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한 순간에 증발시켜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배 위에 손을 얹고 톡톡 두드리는 태동을 느낄 때나 점점 불러오는 배를 볼 때마다 그런 고통들이 또 잊히고 있다.
임신의 주수가 경과할 때마다 변화하는 몸의 변화를 보면서 정말 단 한 번도 겪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맨 몸으로 맞서며 한발 한발 걸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나 원망을 하다가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이 문을 열기라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