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도 임산부지만 임산부 남편도 극한 직업인 것 같다.
입덧으로 천지사방이 구분이 안 되는 임산부는 도대체가 예측할 수가 없다. 죽는다고 끙끙거리다가도 멀쩡한 얼굴로 나와서 바나나를 먹기도 하고, 멀쩡히 맛있게 먹어놓고 위액까지 토하기도 한다. 가끔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꾀병처럼 보일까 봐 지레 남편에게 투정 부리듯이 말했다.
"이게 되게 꾀병 같지만 임산부는 이렇게 상태가 시시때때로 변해."
"나는 꾀병이라고 한 적 한 번도 없는데?"
"아무튼 나도 내가 꾀병 같지만 진짜 아니야."
"알았어!"
요즘 남편은 임산부 학대범이 되었다. 그냥 아무 말이나 해도 '구박하지 마' 소소한 행동을 해도 '지금 임산부 괴롭히는 거야?'로 응수하니 남편이 나지막이 말했다.
"나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까?"
"안돼! 뭐라도 해야지!"
아이가 생기고 그냥 내가 아이가 된 것처럼 마음껏 응석을 부리고 있다. 성질이 날 법도 한데 웃으면서 넘겨주는 남편이야말로 극한 직업이 아닐까 생각했다.
저녁 11시가 넘었을까 갑자기 방울토마토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생각만 한다는 것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 방울토마토 먹고 싶다."
"사다 줄까?"
"지금 이 시간에 방울토마토를 어디서 사, 새벽 배송시킬 테니까 가만히 있어."
"아니 내가 편의점에서 본 거 같아. 내가 한 번 가볼게!"
"아니야. 괜찮아."
몇 번의 만류에도 총총 집 밖을 나서더니 아주 비싼 방울토마토를 의기양양하게 들고 나타났다.
"봐봐 내가 편의점에서 봤다니까?"
손수 꼭지를 따고 씻어서 소파에 누워있는 나에게 건넨다.
"앉아서 먹어. 누워서 먹으면 또 체해!"
그 방울토마토를 아주 달고 시원하게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우와 다 먹었네~! 잘했어!"
세상 뿌듯한 표정으로 아빠미소를 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아내가 임신하면 로망 같은 게 있었는지 결혼 선배들의 혹독한 교육이 있었는지 몰라도 뭔가 먹고 싶다고 하면 총알같이 튀어나갈 준비를 늘 하고 있다. 늘 필요한 거 있는지,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보고 마법사처럼 구해온다. 나는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물을 때면 늘 '괜찮아 아무것도 필요 없어.'라고 대답하는데 그때마다 서운한 표정을 한다. 가끔 이런 고마움이 쌓여서 뜬금없이 최고의 남편이라고 칭찬하는데 그러면 남편이 씩 웃으면서 "당연하지!"를 외친다.
힘든 입덧을 남편 덕에 이겨낸다. 힘들다고 투정 부리고 아프다고 드러누워도 밤낮으로 이마를 짚어가며 괜찮은지 열은 안 나는지 살뜰하게 챙기는 남편 덕에 긴 터널을 지나 조금은 빛이 보이는 것 같다.
이제 내일이면 안정기라고 하는 12주다.
임신한 몸에 갇힌 것 같던 시간이 지나고, 행복해지는 마음의 안정기가 다가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