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몸에 좋은 거라고 사람들이 권해도 루이보스티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단호했다.
"목욕탕 탕물 맛."
사람들이 오기가 생겼는지 바닐라 루이보스티는 괜찮다며 권하기도 하고, 이것 저것 블랜딩 된 티도 권하기도 했지만 루이보스라는 단어가 들어간 모든 차에 끝 맛은 다 목욕탕 맛이었다.
어려서 자주 가던 공중목욕탕에는 늘 약초탕 같은 특별한 탕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늘 루이보스가 한 가득 담겨 우러나고 있었다. 피부에 좋다고 엄마가 들어와 보라고 하면 못 이겨서 들어갔지만 약초의 향 같기도 하고 씁쓸한 향이 나는 검고 불투명한 물이 그렇게 싫었다. 루이보스탕에 몸을 담그기도 싫은데 마시라니 말이 안 됐다.
임신을 하고 처음 받은 축하선물이 루이보스티였다. 임산부에게 좋다고 알려진 차고 면역력이 떨어진 임산부에게 면역력을 길러주고, 카페인이 들어있지 않아 임산부가 마실 수 있는 거리 중에 몇 안 되는 권장되는 차였다. 게다가 양수를 맑게 해 준다는 말을 덧붙이는데 쳐다보기도 싫은 루이보스티를 실눈을 뜨고 한번 째려보았다.
'그렇게 좋을 거면 맛이라도 좋던지 그렇게 맛이 없을 거면 그렇게 좋지나 말던지….'
그래도 선물 받은 거라 소중히 모셔두었다. 그래도 선뜻 마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쯤 흘렀을 때, 루이보스티를 선물한 친구를 만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작은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축복하는 마음으로 사준 선물을 내팽개쳐놓다니…. 그리고 돌아온 집에서 소중히 모셔두기만 한 루이보스티가 나를 원망하며 식탁 위에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그래, 뱃속 아기한테 좋다는데 그까짓 것 마시면 되지.'
큰맘 먹고 커다란 유리잔에 따끈하게 차를 우리기 시작했다. 짙은 황금빛 차가 우러나기 시작했다. 루이보스티의 검고 탁했던 빛깔이 아니라 제법 먹음직스러운 황금빛 루이보스차가 우러났다. 그리고 풍겨오기 시작한 흐릿한 목욕탕의 향. 한참 입덧 중이라 모든 냄새가 다 역하게 느껴지는데 이상하게도 싫지 않았다. 홀짝 한 모금 따뜻한 차를 머금자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맛에 연거푸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따뜻한 차를 한잔을 비우자 온 몸이 따뜻하게 순환되면서 평소에 땀이 없던 나도 살짝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우나를 하고 난 개운함이 덤으로 찾아왔다.
'이거 뭐지. 옆에서 마시는 것도 싫던 차가 맛있다고 느껴지다니. 인체의 신비인가? 임신의 신비인가?'
그 이후로는 아침마다 루이보스차를 따뜻하게 우려서 마신다. 출근길에 도로 위에서 나도 모르게 받았던 스트레스와 긴장된 근육이 풀어지고 차를 마신 뒤 찾아오는 개운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출근을 하면 루이보스티 한 잔을 마시는 게 일상이 되었다.
임신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루이보스티의 매력을 임신을 하고 알게 되었다. 임신하고 좋은 점 중 하나랄까.
"아니! 누가 루이보스티 보고 목욕탕 맛 이래!!"
과거의 나 무릎 꿇고 반성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