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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Nov 19. 2021

도서관 이용자 인식 조사

도서관은 이용자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까?

'도서관 이용자 만족도 조사'가 2021년부터는 '도서관 이용자 인식 조사'로 바뀌었다.


도서관정보정책기획단에서 도서관 평가와 관련한 이용자 만족도 조사에 대한 개선 사항으로 변경된 것이다. 그동안 도서관 이용자 만족도 조사의 경우에 도서관의 각각의 서비스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만족도를 5점 척도로 분석하고 만족도가 높은 부분은 강화하고 만족도가 낮은 부분은 개선하는 역할이 있었다. 그러나, 이 이용자 만족도 조사에 대한 평가가 도서관 평가에 반영되면서 일부 도서관에서는 이용자의 정확한 의견을 청취하기보다는 일단 '매우 만족'이라는 답변을 얻어내기 급급했다. 실제로 내가 타 도서관 이용자로 있는 도서관에서는 전체 문자로 "매우 만족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자가 오기도 했다. 물론 암암리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용자의 정확한 의견은 도서관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주먹구구식으로 그저 높은 평가를 바라는 경우에 그런 부분이 반영되기는 어려웠다. 그런 몇가지 부작용 때문이었을까. 수년간 지속되던 '이용자 만족도 조사'가 '이용자 인식 조사'로 이름을 바꾸어서 등장했다.


처음에 바뀐 표준 문항을 보고 짐짓 당황했다. 문항이 매우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라고 느껴졌다. 인식에 대한 문항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도서관이 귀하의 삶에 어떤 면에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가?
도서관은 귀하에게 어떤 의미인가?
도서관이 지역사회에 어느 정도 기여한다고 생각하는가?


특히 두 번째 문항에서 개별 문항에 포함된 문장들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나는 도서관에서 환대받고 존중받으며 자존감과 동기를 얻는다.", "나는 도서관에서 필요한 질문과 새로운 영감을 얻어 성장한다고 느낀다." 등의 문장은 도서관에 근무하고 있는 사서로서도 이용자에게 묻기 조심스럽고 조금은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한 문장 안에서 너무 많은 긍정의 의미를 도출하려고 애쓰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나는 도서관의 사서로서 이용자를 환대하고 존중해야 하는 주체일 것이다. 그런데 이용자는 도서관에서 환대와 존중을 받는다고 해서 자존감과 동기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다른 문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질문과 영감을 얻어 성장한다고 느낀다는 문장도 어딘지 낯이 뜨거워졌다. 세 번째 문항의 개별 문항의 문장들도 거창했다. 도서관이 지역사회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 묻는 문항의 개별 문항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기본 권리로서의 인권의 보호", "모든 종류의 불평등 해소", "기후 변화 대응", "빈곤층 감소와 사회안전망 강화"와 같이 거창한 기여도를 측정하고자 했다. 물론 도서관에서 위의 문제와 이슈를 담은 다양한 문화프로그램과 행사들을 기획하기도 하고 운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각 항목에 도서관이 어떻게 기여하는지는 도서관에서도 확실히 연구되지 않은 분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문장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도서관의 의미나 역할을 명시해놓은 어떤 외국 원서의 문장을 지나치게 과장되고 포괄적으로 옮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하는 사람이 납득하지 못하는 질문들을 이용자에게 내놓으려니 며칠간 저 질문들이 꿈속을 떠다녔다. 가끔은 이불이 공중에 떠오르도록 발로 차기도 했다.


도서관 평가 항목에 따라 이 표준 문항을 두고 전 직원이 회의를 진행했다. 이용자 인식조사를 위해 회의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도서관 평가에 반영되는 평가 지표 중 하나였고, 이 문항들에 수많은 의문이 있는 담당자로서 다른 직원들의 의견들을 듣고 싶기도 했다. 대부분 당황스럽고 무엇을 이용자에게 듣고 싶은 건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표준 문항이기도 했고, 처음 시행되는 이용자 인식조사가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상태에서 문항을 다수 수정하고 교체하는 것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이용자 만족도 조사를 위한 계획을 수립한 상태에서, 하반기에 들어선 지 훌쩍 지나 이용자 인식조사를 수행하라는 도서관 정보정책기획단의 공문으로 갑자기 노선을 변경해서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 이 문항들을 일일이 수정하고 우리 도서관과 지역의 특성에 맞게 변형하여 진행하기도 일정이 시급했다. 도서관 이용 경험에 대한 부분만 우리 도서관에 맞게 문항을 수정하고 교체했다. 나머지 도서관 인식에 대한 문항은 표준문항을 따라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2021년 첫 번째 도서관 이용자 인식 조사가 실시되었다.


한 달 간의 이용자 인식 조사가 끝나고 결과를 취합했다. 생각보다 후한 이용자들의 답변을 취합하며 어쩐지 가슴 한편이 찡해졌다. 생각해보면 많은 설문조사들이 정확한 의견을 제시하기 보다는 평가에 반영될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이 관례인 듯 자리 잡은 탓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그중에서도 냉정하게 답변을 해준 이용자들의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며 반성을 하게 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런 의견들이 모여서 하나의 그래프를 만들어 내고 그 그래프가 가리키는 방향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의견 중에 가장 뜨끔했던 것은 "설문조사가 그저 요식행위인 것 같다. 실제로 도서관에서 이용자의 의견을 청취해야 할 부분이 있고 그에 맞는 질문을 했으면 좋겠는데, 지금 현재는 누가 봐도 표준문항을 따라 진행한 것 같다."는 가장 찔리던 자리를 깊숙이 찔러준 이용자의 기타 의견이었다.


'도서관 이용자 만족도 조사'의 문제점에서 시작된 개선안으로 등장한 '도서관 이용자 인식조사' 첫 해 시행한 담당자의 소감은 위와 같다. 그나마 첫해 시행 담당자였기에 약간의 시도 차원에서 그대로 적용하여 진행할 수 있었지만, 내년과 내후년이 걱정되는 업무이다. 물론 묻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이용자의 의중을 분석하고 그 부분을 도서관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응답자의 그룹을 나누고 다양한 교차분석을 시도하고 숫자와 엑셀의 싸움을 진행해서 어찌어찌 결과보고를 끝마쳤지만, 도서관의 실무자로서 이용자에게 듣고 싶었던 의견과 또 도서관 운영에 반영할 수 있는 의견을 듣지 못하고 끝난 거 같아서 아쉽다. 


사서는 이용자에게 주로 질문을 받는 사람이다. 
그런 사서가 이용자에게 질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기회를 날린 것 같아서 아쉽다.
이게 올해 시행한 도서관 이용자 인식조사에 대한 나의 총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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