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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Jun 01. 2021

사서, 그림책을 꿈꾸다

지난해 각종 공모와 문화행사로 골머리를 앓았던 걸 아셨는지 올 해는 업무분장이 잠시 쉬어가는 듯 평년보다 수월한 업무분장을 받았다. 그래도 몇 개의 공모를 맡았는데 그중에 하나가 한국도서관문화진흥원에서 주관하는 '1관 1단'이라는 공모사업이다.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에 문화 예술 동호회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올해 3년 차로 접어든 사업이다. 작년에 진행했던 공모사업을 이어서 진행하는 것인 만큼 기획은 이미 완성되어있는 공모사업이고 사실상 운영만을 맡은 상황이었다. 본 사업은 '그림책'을 만드는 문화 예술 동호회 지원사업으로 일러스트레이터 및 그림책 작가를 모시고 1년간 실제로 문화예술동아리 회원분들과 그림책을 창작하고 출판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었다.


'그림책'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렌다. 처음 사서가 되고 업무분장을 할 때도 그림책 때문에 어린이실 업무를 정말 하고 싶었다. 매년 업무분장을 위한 면담에서도 늘 어린이실을 지원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년시절 어머니께서 산처럼 많이 사둔 명작 전집을 제외하고는 다른 창작 그림책을 접하긴 어려웠다. 내가 제대로 그림책을 접하고 좋아하게 된 건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면서 독서지도 수업을 들으면서부터다. 내가 다닌 대학교는 유아교육과가 강세인 학교였기 때문에 대학도서관에도 좋은 그림책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공강 시간이면 도서관에 틀어박혀 그림책을 읽고 또 읽었다. 수백 권의 그림책을 훑어보고 또 좋은 그림책은 두고두고 찾아 읽었다. 그림책은 늘 새롭고 늘 놀라웠다.


그냥 그림책이 좋았다. 그래서 그림책에 둘러싸여 근무를 하고 싶었다. 그때 당시 사서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사서가 된다면 어떨까 하고 떠올리는 미래의 상상 속에 내 주변에 있는 책은 그림책이었다. 그런데 나는 사서로 13년 사는 동안 어린이실 근무를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사무실에서 문화행정업무를 보거나 기획 및 사업 운영 파트에서 주로 있었다. 종종 장서 담당이 되기도 했지만 자료실은 늘 일반자료실에 근무했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업무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림책 창작 동아리 육성 사업이라니!' 사실 이 사업도 최초로 사업계획서를 썼던 건 나였다. 아쉽게도 내가 지원했을 때는 지원기관의 교체 텀을 놓쳐 떨어졌었다. 돌고 돌아 그 사업의 담당을 맞게 된 것이다. 사업을 운영하면서 하나의 욕심을 덧붙였다. '나도 그림책을 펴내 보자.' 물론 프로그램 운영 시간에 참여자들과 같이 그림책을 그릴 수는 없지만, 수업을 곁에서 열심히 지켜보며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보며 나도 어깨너머로 어찌어찌 그림책을 그려보자 마음먹었다.


처음에 패기롭게 시작했다. 막힘 없이 스토리보드를 쓰고 계통 없는 그림으로 어찌어찌 썸네일까지 완성했다. 나름 자신만만했다. 그동안 본 그림책만 해도 수천 권인데, 그림책 한 권 어찌어찌 최선을 다하면 완성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림은 모자라니 스토리를 담자.' '왜 이런 그림책은 없었지?' 하며 신나 하면서 그림책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막다른 길에 막혀있는 것 같다.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 그림책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은 것 자체가 문제였구나 싶다. 처음엔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을 만큼 그럴듯한 스토리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흔해빠진 스토리고, 이렇게 엉성한 그림을 누가 봐줄까 싶고, 그나마도 이것을 완성할 끈기가 내 안에 없다는 것을 매일 깨닫는 중이다.


그러다가도 이걸 내가 직접 하고 있으니까 참여자들의 고충을 알겠구나 싶다. 그게 아니었다면 왜 정해진 수업일 정대로 속도가 안 나는지, 왜 자꾸 과제 완성 시간을 못 지키는지 알 수 없었을 것 같다. 창작의 고통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간마다 다르고 강도도 방향도 달라서 그 고통 위에 함께 서있지 못했다면 그저 행정운영처럼 무미건조하게 임했을 것 같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얼마나 막막한지, 얼마나 더 잘하고 싶은지 그 마음들의 한가운데서 경험하고 사업을 운영하니 참여자들과 소통이 자연스럽다.


괜히 그림책을 편다고 했나 싶다가도,

그래도 그림책을 편다고 하길 잘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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