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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Feb 18. 2021

책 리뷰_<사피엔스>

매일 자기의 미래를 고민하지만, 인류의 미래를 고민해본 적은 없는 너에게



 오랜만의 책 리뷰다. 중국어 인강, 당근마켓 판매, 밑미, 설 연휴 같은 크고 작은 이벤트를 보내고 나니 2월도 훌쩍 반이나 지나있네. 그래도 잘한 건 2월 1일부터 꾸준히 2주간 읽어온 벽돌책 '사피엔스'를 놓지 않고 있었다는 것. 기대를 갖고 있는 트레바리 독서모임 첫 지정책이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책장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책이었는데, 매일 50쪽씩, 100쪽씩 읽거나 하루하루 쉬어가기도 하면서 읽었더니 드디어 어제 그 대장정을 마쳤다. 독서노트를 13 페이지나 할애해야 했던 많은 분량의 책임에도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비결은, 독자인 내가 아닌 저자 유발 하라리에게 있다. 그의 질문, 주장, 비유를 따라 읽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책 <종이책 읽기를 권함>에서 말했듯이 독서의 묘미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자기의 힘으로 소화하고 넘어가는 과정의 치열함과 즐거움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이 책을 리뷰할 수 있는 오늘만을 기다렸다. 




사진출처: yes 24

들어가며


<사피엔스>는, 인류 즉 사피엔스 종이 걸어온 역사를 인지혁명-농업혁명-과학혁명의 큰 단계로 분류한다. 

이러한 역사 분절 단계는 책이 진부하고 지루할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각 혁명의 단계에서 제기할 수 있는 질문, 혹은 없앨 수 있는 편견을 알아가는 과정 덕분에 이 책이 역사책이라기보다는 철저한 사회과학 종합서라는 인상을 주었다. 


살면서 인류로서의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나의 미래는 매일 고민되었지만, 인류의 미래는 안중에 없었다. 


새로 알게 된 것은 내가 '호모' 속에 속하는 '사피엔스' 종이라는 사실이다. 


인지혁명


-평등은 거짓이다


인간은 우연한 유전자 돌연변이로 언어를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여타 동물의 의사소통이 포함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험담 같은 것), 그리고 허구를 말할 수 있게 된다.  


수많은 공동체와 협력을 양산해낸 종교적 신념, 정의, 인권, 국가, 민족 등의 개념은 허구이되, 모두가 이 허구의 존재를 믿는다.  개개인의 삶을 결정짓는 큰 가치들은 사실 인류의 협력을 위한 가상의 실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다. 

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원칙으로 하는 함무라비 법전과, 인간의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주장하는 미국독립 선언문 중 어느 것이 '객관적으로 타당한' 보편적 정의인가? 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실 "평등"이라는 개념 자체는 생물학적 기반이 아닌 상상의 질서일 뿐이며, 진정한 신봉자들에 의해 유지된다. 신봉자들이 평등의 가치를 믿는 이유는 평등이 객관적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평등을 믿음으로써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함무라비가 생각하는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는 압제와 착취의 사회였을 것이다. 


-예전도, 지금도, 앞으로도 차별


"불행하게도 복잡한 인간사회에는 상상의 위계질서와 불공정한 차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평등주의는 개인주의와 동행했다. (밀과 토크빌에 따르면, 개인주의와 평등주의의 도래로 공동체주의와 민주주의의 의미는 퇴색되고 있다고 한다. 이 두 짝꿍 개념이 trade-off 관계일 수밖에 없는지는 더 공부해봐야 할 부분이다.) 개인주의 사회 하의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끼리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되기 위해서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종, 계급 차별의 기반이 되는 상상의 위계질서는 일련의 우연한 역사적 상황에서 비롯될 뿐 어떠한 차별의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회 정치적 차별에는 논리적,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우연한 사건이 신화의 뒷받침을 받아 영속화한 것에 불과하다." 역사적 상황상 흑인이 '우연히' 아메리카에 노예로 수입되고, 피지배 계층이 생겨나고, 차별적 법률이 생겨나고, 교육을 받지 못해 계속해서 피지배/빈곤 계층에 머무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훌륭한 이유 중 하나다. 

차별 자체를 없애기는 쉽지 않지만, 적어도 이 차별이 정당하지 않음을 밝혀내고 차별을 당하는 사람이 계속 그 위치에 머무르지 않을 수 하는 것이 역사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농업혁명>


-먹을 게 많아지면 행복해질 줄 알았지


인간이 몇몇 동식물의 삶을 조작하기 시작하면서 농업혁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농업의 결과로 양산된 잉여 식량은, 인구 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이후 인간은 폭력-폭력에 대한 통제 시스템-풍요와 안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더 열악한 환경에서 더 끈질기게 살아남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우리가 농업의 파급효과를 생각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온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농업 혁명으로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는 있었지만, 식량이 늚과 동시에 인구도 동시에 늘고, 잉여 식량을 뺏고 착취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농업 혁명 이전 사피엔스(그때까지만 해도 수렵채집인)들은 생각하지 못했겠지. 즉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 집단은 DNA 복사본 수를 늘림으로써 진화적 관점에서는 성공했지만, 개개인의 고통이 동행했다. 그래서 저자는, 인류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인류를 길들인 것이라고 한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언가다." 


-문화는 변하되, 모순은 지속된다


모든 문화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중이며 모두 내적 모순을 지닌다. 중세 사람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기독교를 믿음과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기사도 기반의 신분사회를 신봉했다. 또 평등과 자유는 모순적인 개념임에도 두 가치 모두를 추구하는 것이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숙명이다. 저자는 이러한 모순이 "문화의 엔진으로써, 우리 종의 창의성과 활력의 근원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한다. 


-인류 대통합의 질서가 된 화폐, 제국, 종교


"사실 지구는 각기 격리된 수많은 인간 세상들로 구성된 은하와 같다." 하지만, 인류를 통일시킨 보편적 질서는 존재한다. 화폐질서, 제국질서, 종교질서가 바로 그것이다. 


화폐질서는 효율적인 상호 신뢰 시스템이다. "신뢰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왜 금융시스템이 우리의 정치, 사회, 이데올로기 시스템과 그토록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설명해준다." 우리는 '돈'이라는 연결고리로 상대를 신뢰할 수 있고, 사람들은 신뢰를 기반으로 투자와 대출을 하며 경제는 몸집을 불린다. 


제국은 문화적 다양성과 국경의 탄력성을 정의로 한다. 여기서 저자는 특이하게도 제국의 대한 현대의 비판에 맞선다. 제국은 피정복 민족을 효과적으로 다스렸고 피정복 민족에 대한 착취의 결과로 인류의 문화적 성취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종적 배타성에 맞서,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경향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제국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지점은,

-> 역사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여 선악을 나눌 수 있는가? (저자는 그럴 수 없다고 함) 

-> 단일 민족국가와 민족주의가 입지를 잃고 단일 세계 정부가 등장할 것인가?

이다. 


특히 첫 번째 질문에 있어서, 과거 일제 강점기를 거쳤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역사의 절대적 악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하버드대 교수가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표현한 데에 대해, 하버드대는 학문의 자유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21711060005259


이 책의 논점을 흐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책에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논리가 있었음에도 제국주의의 비참함에 대해 추가적인 언급이 없어서 아쉬웠다.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제국주의 자체는 문화유산을 남겼겠지만, 제국주의 하에서 자행된 반인륜적 범죄는 제국의 어떤 순기능 하에서도 용서될 수 없다. 제국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과정은 자칫 조화롭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고등학교 때 역사책에서 배운 창씨개명, 민족말살정책 등등이 생겨났다. 그 아우름의 과정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당시 협소한 관점을 가진 데에다가 보수적이었던 조선은 개방 세력에 의해 처참히 무너졌고 결국 식민지화되었고, 제국의 폭력에 노출되었다. 


종교에 관해서는, 

농업혁명과 더불어, "동식물은 영혼의 원탁에 앉은 동등한 존재(애니미즘)에서 소유물"로 끌어내려졌고, 초인적 질서와 인간 규범의 가치체계를 동반한 종교가 보편적으로 전파되었다. 신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 종교뿐만 아니라 불교처럼  "모든 것을 집착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종교도 생겨났고, 인간을 신성시하는 인본주의적 종교도 등장한다. 


-역사는 충분히 바뀔 수 있었다. 


역사는 결정론적이지 않다.(we were meant to be 의 운명은 적어도 역사에는 없다.) 희박한 가능성이 놀랍게도 실현되어왔고, 예측에 선제적으로 반응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그리고 정치)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 연구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지평을 넓히고,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럽거나 필연적인 것이 아님을 인정하며, 우리의 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속성은 끊임없는 변화다"


 독립국가의 생성은 평화를 불러왔을까, 폭력을 불러왔을까. 찰스 디킨스 소설의 첫 문장인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의 어구를 빌리자면, 국가에 의한 폭력이 자행되었지만, 이 폭력은 국가가 생겨나기 이전의 폭력보다 덜했으니 이 시기는 최고이자 최악의 시기라고 할만하다. "왕국과 제국이 강력해지면서 공동체의 고삐를 죄자, 폭력은 줄어들었다."

 제국주의가 쇠퇴하고 독립국가가 등장하면서, 전쟁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인 진정한 평화가 도래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 역시 최고의 시기이거나, 최악의 시기이겠지. 그건 미래의 인류가 판단할 일이다. 



<과학혁명>


-너의 무지를 인정했을 때 진보할 수 있으리라


과학혁명은 "집단적 무지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인류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관찰로부터 얻은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진리보다는 유용성을 탐구하게 된다. 인류의 진보는 과학혁명의 단계에서 등장한 자본주의와 산업혁명 덕분에 실현될 수 있었다. 


-정치의 과학화, 과학의 정치화


"이데올로기는 연구비를 정당화하고, 동시에 과학적 의제와 사용에 영향을 미친다."

 근대 시기 전쟁이 빈번히 일어났던 이유는, 무지의 인정(과학)과 정복의 사고방식(제국주의)이 결합했기 때문이다. 과학은 자본주의와도 결합했다. 지식을 얻는 것, 그로써 진보하여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은 최고의 선이 되었다. 이로써 과학 연구에 대한 투자에서 "생산성과 경제성장"은 중대한 기준이 된다. 


-아편전쟁과 그리스 재정 부실


 "오늘날 한 나라의 신용등급이 천연자원보다 경제적 복지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

자본주의는 정부의 역할을 규정한다. 한 선진국을 이루는 국민은 상인/해외투자자 및 주주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는 정부의 역할을 규정하게 되었다. 국가 자체의 신용 등급을 높이고 유지하는 것. 그럼으로써 국내의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것. 아편전쟁과 그리스 재정 부실은 모두 선진국의 자본주의 신봉자들을 보호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의해 중국과 그리스가 부당한 패배를 맛본 사례다. 


-에너지 결핍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핍된 것은 우리의 지식일 뿐이다. 


 의외로 과학자들은 에너지 고갈 사태를 걱정하지 않는다. 에너지는 전환되는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 에너지를 전환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되, 에너지 사용과는 별개로 자연 파괴는 일어날 것이고 인류는 멸종할 것이다. 


 "산업혁명은 제2의 농업혁명이다." 과학의 힘을 빌려 동물을 도구화하고 기계화함으로써 인류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 위에 군림했다. 우리는 그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 



-역사는 행복의 방향으로 발전해왔는가, 그렇지 않다면 제도, 산업, 과학이 모두 무슨 소용인가. 


행복을 측정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1) 주관적 안녕의 측정 (돈, 질병, 가족공동체 등의 요인): 행복은 "주관적 기대와 객관적 조건 사이의 상관관계"로 정의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타인의 행복을 추론할 때 오류를 유발할 수 있다. (실제로 지속적인 고통이 아니고 질병이 악화되지 않는 한 질병을 가진 이는 상황에 적응하게 되어 질병이 없는 사람과 같은 정도의 행복감을 누릴 수 있다) 


(2) 생물학적 행복:  신체 내에는 화학적인 행복 조절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에 따르면 풍년을 맞은 중세시대의 농부와 좋은 집을 얻은 현대의 부자는 똑같은 정도의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3) 자기 삶에 대한 가치: 그러나 이는 자신의 가치가 충분히 실현되고 있다는 "자기 기만"을 통해 실현된다.  


(4) 불교의 행복관: 내면의 주관적 느낌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 


 정답은 없다. 저자는 행복의 측정방식을 논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수많은 접근법과 올바른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진화론을 넘어서는 인간의 지적 설계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 물학 등의 학문은 인간이 더 이상 진화론의 문법에 따르지 않고, 생명을 '설계'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저자는 프라이버시( DNA 프라이버시와 유전적 차별)와 정체성 이슈, 의료와 평등 문제를 고민할 것을 정부와 법률가에게 주문한다. 인류의 의학적 몰두가 단순한 질병 치료가 아니라 인간 능력 강화라면, 우리는 새로운 특이점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마치 빅뱅 이전의 세계는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결국 역사는 예상 밖의 시나리오다. 역사의 다음 단계에는 기술적, 유기적 영역뿐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정체성에도 근본적인 변형이 일어날 것이다. "


빅 히스토리의 관망은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지게 하고, 인류의 일원으로써의 '나'의 존재를 생각하게 하며,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게 한다. 그러니 나의 고민은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진 것이다. 이런 고민을 즐기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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