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의 추억
아 전 영어요.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갔더니 무료 강의를 듣게 해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건 강의 시스템은 결국 모두 광고였다. 뭔가 산모들을 모아두고 분유도 팔고, 책도 팔고 하는 뭐 그런 시스템 중 일부라나.
여하튼 당시 들었던 것이 프뢰벨 선생님이 하는 강의였는데, 강의 시작 전 '자녀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에 대해 간단히 설문을 작성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중 한 문항이 '어떤 능력이 있는 자녀로 키우고 싶나요?'와 유사한 질문이었다. 당시 보기에 '창의성, 수리력, 영어능력' 이런 것들이 있었고, 나는 확신을 갖고 '영어'에 체크했다.
내 설문결과를 본 선생님이 약간 당황의 눈빛을 보이면서,
선생님: 대체로 어머님들은 창의성이나 이런 걸 체크하시는데요. 영어는 처음이네요.
나: 아 전 영어는 꼭 해야한다는 입장이라서요.
교육학에서 선생님이나 부모는 대체로 자신의 경험의 반경 안에서 자녀를 가르치고 양육한다는 이론이 있다. 내가 경험한 반경에서는 영어였던 것 같다. 그리고 교육학자의 자신감인지 다른 부분은 아이와 내가 함께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영어' 만큼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영어능력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물론 내가 아이에게 영어능력을 갖추게 하려는 데에는 '대학'을 위해서는 아니다.
영어가 아이에게 넓은 세상을 언어의 장벽없이 탐색하는 데 좋은 도구가 되길 바래서이다.
남편과 나는 모두 공부하는 학자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학문의 어떤 영역이든 주 사용 언어는 영어이다. 때문에 영어가 잘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학계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쉽지 않다. 게다가 국제학술대회에서 교류하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조건이다. 그래서 영어의 필요성은 나보다 남편이 더 극심하게 느끼는 것 같다. 분기별로 해외학회에서 발표를 해야하고, 영어로 논문을 써야하니 말이다.
남편과 나는 완전 한국인이다. 영어 조기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그저 공교육을 통해서만 영어를 접하고, 수능영어 정도 공부한 뒤 필요에 의해서 계속 영어를 공부하는 입장이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참 영어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에게 내가 무언가를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영어로 자유롭게 읽고 쓰는 능력을 길러주고 싶다. 그리고 이 영어를 도구삼아 아이가 더 넓은 식견을 갖고 더 많은 경험을 하며 삶을 풍요롭게 살아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