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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가 "난 무서운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이유

나르시시스트의 말은 나르시시스트 번역기를 돌려서 해석해야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우습다.


그런데 그가 우습다는 걸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르시시스트 자기 자신이다. 


그는 다수의 타인을 적이나 경쟁상대로 인식한다. 

외부세계에 대한 적개심이 강한 것이다.


이견을 내는 사람,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사람. 친해지려는 사람, 따뜻하고 온유한 사람. 그 외 다수. 

이들을 나르시시스트는 진심으로 불쾌하게 여긴다. 


물리쳐야 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인식하기에 어두운 감정을 느낄 때가 많은 것이다. 

그러니 자아가 양념에 물든 김치처럼 팽팽한 긴장감으로 절여져 있다. 

부정적 감정에 매어 있기에 나르시시스트는 겁쟁이로 자라난다.   


어떤 나르시시스트는 밝게 웃으면서 속내를 밝힌 적이 있다. 


“마음에서 미움이 끊임없이 올라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미소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는 종교인으로서 좋은 이미지를 가져가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 마음은 달랐다.

이상적 자아와 현실 속 나의 간극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그의 웃음은 자기 방어적인 감정 표현이었다.  


그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본인이 설정한 가상 페르소나로 스스로를 위장한다.

섣부르게 짜증내거나 남을 구박하는 것도 매사에 신경이 곤두서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를 무시할지도 몰라. 

내가 저 사람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지도 몰라. 

내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보이면 안 되는데.

쟤를 밟아야 하는데 해맑게 지내는 것 같아 초조해지네.  


이런 걱정들이 나르시시스트의 정신을 장악하고 있다. 


B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C가 복도에서 지나가는데 나한테 인사를 안 하는 거야. 내가 먼저 인사해도 인사도 안 받더라. 그런데 걔가 나중에 울면서 그때 미안했다고 하더라고. 하하하. 솔직히 난 그게 아무렇지 않았거든.”


B는 스스로를 권위적인 사람이라고 정의 내렸었다. 

서열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위치가 떨어지는 것 같으면 불안해했다. 

그런데 나이차이가 한참 나는 대상이 인사를 받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아무렇지 않았다는 말은 믿기 힘들다. 

작은 거절에도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B인데 말이다. 


아무렇지 않았다는 것은 나르시시스트 고유의 화법이다. 

B는 C의 행동에 크게 상처를 받았다.

사람을 불신하다 못해 미워하는 그였다. 

그리고 C는 B의 적개심에 걸맞게 행동했다. 

인사를 받지 않다니. 

사회생활의 기본인데 말이다. 

기분 나쁠 만하다. 


B는 아무렇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 일을 마음에 깊이 담아두고 있었다는 거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면 그런 말조차 안 했을 것이다. 


B는 재밌는 에피소드를 말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제삼자에게 C의 행동을 전파했다.  

본인이 당한 일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 같지만 주관적인 감정을 말하고 싶었던 거다. 

C에게 상처받았다고 말이다. 


타고난 성향이라는 게 있다. 

무던한 사람이 어떤 계기로 예민해질 수는 있다. 

그런데 예민한 사람은 무던해지기 쉽지 않다. 

인간은 대다수가 본래 성격대로 살아간다. 


그러니 나르시시스트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진짜 모습을 전면부정하면서 완전히 다른 페르소나를 뒤집어쓰고 살아가니 말이다.  

그를 동정하자는 게 아니다. 

겉모습은 속마음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다. 

그는 그저 이상적 자아를 흉내 낼 뿐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과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사는 부랑자와 같다. 


얼마 전에 E는 이직을 했다.  

그는 후배에게 엄청난 양의 기사를 프린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기사 날짜별로 다 뽑아줘.

양이 많아도 상관없어. 

난 그런 거 안 무서워해. 


무섭냐고 물어본 사람이 없다. 

꼭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했다.  

정말 무섭지 않다면 무섭다는 개념 자체를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저 말은 무서움을 참고 일하겠다는 고백에 가깝지 않을까. 


E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E를 뒷받침하는 후배는 이 직장에 오래 머물러 왔다. 


이 팀에서 맡은 업무는 E에게 생소한 분야였다.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무엇이든 처음이란 순간은 낯설고 어색하다.   

E는 많은 양의 자료를 익숙하게 조사하는 후배에게 살짝 어려움도 느꼈다. 

물론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사람이니까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이상한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럴 수 있는 거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이다. 


하지만 E는 위축된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일에 익숙한 후배가 살짝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혹시 뒤에서 나를 서툴다고 평가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어떤 계기가 생기면 내가 누군지 보여줘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여러 가지 감정이 합쳐 저서 저런 말이 나온 것이다. 


나는 무엇을 안 무서워해. 

원래 난 냉정한 편이야. 

나는 상대가 누구라도 가만히 안 있었어, 예전에 상사가 하는 말이 마음에 안 들어서 책상을 탁 치면서 화를 냈었거든. 내가 원래 그랬던 사람이야.   

난 고칠 점만 본다고 말했잖아? 


듣다 보면 별 거 아닌 말인데 그들은 마치 엄청난 비밀을 토로하는 것처럼 말한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이렇게 말하며 본마음을 감추고, 이상적인 자아를 내세운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저 말의 내용과 다르다.  


두려움에 둔감하면 무서워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는 경향이 있다. 

냉정한 사람은 내가 따뜻한 성정을 지녔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다.

나르시시스트가 자주 꺼내는 주제를 살펴보라. 

그게 그들의 약점이다.  


또 나르시시스트는 고칠 점만 보는 게 아니다. 

그는 상대가 무슨 행동을 하든지 별로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그 결론에 뒷받침할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기분이 나쁜데 스스로 그 이유를 정확하게 모른다. 

대신 부정적 감정을 뒷받침할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서 덧붙인다. 


그렇다고 꼭 부정적으로 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도 사람을 가린다. 

나르시시스트는 강약약강의 논리에 급하게 순복 하는 편이다. 

그래서 직장 후배나 동생들, 나이는 많지만 직급이 낮은 대상을 콕 집어서 폭언을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무엇을 얻기 위해 그토록 못되게 구는 걸까?


나르시시스트는 병들고 초라한 자신의 내면을 숨긴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을 때 건강하게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그는 고통에 직면하지를 못하고 희생양에게 괴상망측한 방식으로 감정을 전가한다. 

'자신이 건드려도 불이익이 없을 것 같은 사람' 앞에서 패악을 떠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불이익이 없을 거라고 추정하는 후보군이다.

잘 웃는 사람, 화내지 않는 사람, 배려하는 사람, 대부분의 사람에게 마음을 잘 여는 사람, 직장 후배, 유한 성격의 직장 동료, 친구들 중에서 암묵적으로 서열이 낮은 사람, 서비스업을 하는 사람들 등.


나르시시스트는 그들을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 '이미지'로, 혹은 '아랫사람'으로 잠정 분류한다.

그리고 상대의 말투, 목소리 크기, 특정 상황에서 짓는 표정, 성격, 옷차림, 걸음걸이, 취미생활, 선호하는 도서, 대인관계 등 모든 것이 잘못됐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기 시작한다.


지적이란 행위는 당위성과는 상관없이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보편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라면 필요할 때만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상대의 기분과 표정을 살핀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누군가를 비난하려고 계획을 짜고, 실천에 옮긴다. 

심지어 애초부터 무엇을 지적할까 설레어한다.

굴절된 돋보기로 상대의 이모저모를 면밀히 뜯어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동안 쌓아 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느 시점부터 상대를 신나게 비난한다. 

그게 나르시시스트의 병적인 심리이다.

그러지 않으면 스스로 어색해하고, 할 일을 못한 것처럼 초조해한다. 


이때 상대의 반응이 중요하다.

만약 나르시시스트의 말 한마디에 속상해하고 힘들어한다면 나르시시스트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 게 된다. 

누군가가 감정적으로 타격을 받을 때 그는 본인이 힘 있는 존재가 된 것 같다는 망상에 빠지기 때문이다.  

상대가 고통받는 게 그가 원하는 상황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언행으로 희생양이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길 기대한다.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말만 추앙해 주길 바란다. 

그게 나르시시스트의 목적이다. 


사실 나르시시스트는 그 누구보다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다.

허약한 자아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니 고통이 배가 되는 것이다. 

그는 매일 벼랑 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F는 회식을 하다가 거들먹거리며 말한다.

"내가 오늘 아들을 혼냈는데, 걔가 무서웠는지 오줌을 질질 싸더라고. "

그는 웃었다.


그의 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그는 수치심을 준 경험을 영웅담처럼 자랑스럽게 떠벌거렸다.

어린 자녀가 오줌을 싸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는 망상에 빠진 것이다. 


성인이 아동을 오줌까지 쌀 정도로 혼낸 게 정상인가?

나르시시스트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는 상식적이지 못한 자신이 추하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


나르시시스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겁을 먹길 바란다.

그의 자아는 독립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타인의 자존감을 해쳐가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충실하게 따른다. 

그래서 먹이사슬의 윗단계에 머물길 원한다. 

그는 서열이 높은 사람들에 만큼은 순종적인 페르소나를 쓰고 연기를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겁을 먹은 나머지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것이다. 

겁먹기를 바라는 것도 나르시시스트 자신이 쉽게 겁먹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G는 자신의 일을 도울 사람을 구하고 있다.

그는 면접자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제가 좀 무서워요."


나르시시스트의 화법을 감안해 이 말을 풀이해 보자. 

G는 같이 일할 사람이 공격을 하면 어쩌나 미리 염려하고 있다. 

무서운 사람처럼 보여야 상처받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나르시시스트는 걱정이 많고, 작은 일도 확대해석을 하기 때문에 얌전하고 순종적인 사람을 뽑고 싶어 한다. 

G는 외부의 자극에 잘 흔들리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신경을 건드리지 않을 사람, 자신이 막 대해도 공격하지 않을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연약함을 역으로 포장한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오히려 세상이 자신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고 억지 주장을 한다. 

그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무서워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홀로 고군분투한다.  


이렇게 하면 내가 무서워 보일까?

저렇게 하면 내가 무서워 보일까?

나르시시스트는 그런 걸로 고민한다. 쓸데없이.   


나르시시스트는 평이한 상황에서도 적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적이 자신의 발밑에 있지 않고 오히려 행복한 표정으로 다가온다면?

흥미롭게도 그런 사람에게서 위협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과도하게 의심한다. 

사실 진심이 아닐 거라는 둥 가식적으로 웃는다는 둥 하면서 그를 부정적으로 볼 생각만 수집할 것이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을 보호하려고 해맑은 상대를 깎아내리고자 애쓴다.

이 과정에서 온갖 트집과 구박으로 상대를 하인 취급하려고 애걸복걸한다.

한껏 신경질을 부린 다음 나중에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널 위해서 그랬다고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결국 나르시시스트의 목적은 남을 공격해서 자신의 두려움을 일시적으로 잠재우는 것이다.

그는 막연하고 실체 없는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인간관계를 망가뜨린다.


나르시시스트가 스스로 자신이 무서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자신이 세상을 무서워한다는 뜻이다.

나르시시스트가 아무렇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때 속상했기에 보복을 꿈꿨다는 뜻이다.

이렇게 나르시시스트의 말은 번역기를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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