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란다 고양이 Nov 03. 2023

11월 3일

우울하지만 사랑해도 될까요?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가난하거나 우울한 사람은 사랑을 하면 안 된다고. 상대에게 그저 민폐일 뿐이라고.

가난하고 우울한 나는 이야기한다. 간절히 사랑하고 싶다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일은 참 즐거운 일이다.

그 사람과 있을 때 행복하고, 그 사람과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한다.

내가 이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이 사람의 행복을 갉아먹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그 속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드는 불안은 내가 우울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해주곤 한다.


한때 외로움에 몸서리를 쳐 적극적으로 사랑을 찾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나를 조금이라도 좋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한껏 마음을 열었고 그만큼 돌아오는 상처도 거리낄 것 없이 받아들였다.

우울하고 외로운 사람은 아주 약한 흔들림에도 뿌리째 뽑혀 넘어간다. 유튜브 사연에서나 볼 법한 뻔한 대사와 뻔한 수법들에 나는 내 온 마음을 줄 준비가 된 사람처럼 굴었다. 그 결말은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때는 과거의 그놈들이 나쁜 놈들이라고 욕을 하고 다녔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그 사람들이 나에게 상처를 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당장의 사랑이 갈급해 분별없이 불을 향해 달려드는 날벌레처럼 행동했던 것 같다.

일종의 자해행위였다. 자존감을 깎아 바쳐서 순간의 도파민을 얻어내는 그런 방식의 자해행위. 그렇게 나는 밀려드는 외로움을 하나하나 쳐내면서 살았다.

하지만 이것도 모두 한 순간이었다. 이 악순환의 과정이 완전히 싫증나 버리자 그다음으로 찾아온 것은 끝도 없는 공허함과 무력감이었다. 완전히 사랑에 실패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아무것도 아닌 무의미한 시간들.

그냥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편이 더 나았다.

그 어디에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다 목적을 가지고 나를 사랑하는 척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는 편이 상처를 받는 것보다 나를 덜 아프게 했다.


그렇게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채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홀연히 지나가버린 좋은 인연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좋은 인연들을 맞이하기에는 내가 너무 한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간절히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도록 설계된 생물이라, 내가 사랑에서 멀어지려 하면 할수록 그것은 집착처럼 내 뒤로 따라붙었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으나 사랑받고 싶다는 내 본능은 다시 한번 나에게 자해와도 같은 그 관계들을 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이상은 그런 관계에서 위로를 찾을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건강한 사랑을 할 권리가 있었다. 


나는 우울하지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 사실을 잊고 살아오고 있었다. 내 사랑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예 고려도 해보지 않은 채로 그렇게 살고 있었다.

나의 초라한 모습 때문에 사랑하기를 망설였다. 내가 우울하기에 상대에게 피해만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픔이 상대를 아프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갇혀있었다.

나의 사랑이 때로는 상대에게 상처가 될지라도 그것보다 더한 행복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 어떤 사랑을 받는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랑을 줄 수 있는지였다.


생각을 바꾸고 나니 진짜 사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외면하고 있었던 진실된 세계가 있었다.

진짜 사랑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따뜻한 사랑을 줄 만큼 좋은 사람을 찾아야 하며, 그 좋은 사람에게 로맨스의 감정을 느껴야 한다. 심지어 그 사람마저 나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사랑이라는 것은 결실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보니 따뜻하고 건강한 사랑이란 것이 마치 기적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될 확률은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 같은 지적 생명체를 만나게 될 확률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사랑을 하는 매 순간마다 새로운 문명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모험이자 탐구요, 개척이다.

개척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수많은 두려움과 아픔을 겪어내야 할 것이고 미움과 슬픔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도 나아가보려고 한다. 언제까지나 그냥 이곳에 멈춰서 있을 수는 없기에 사랑이라는 미지의 것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뎌 보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10월 27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