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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예반장 Oct 21. 2023

말벌의 습격

   1570년 미 대륙 동부 항구 도시 버지니아에 스페인 예수회 소속 이주민 일행이 도착했다. 이들은 얼마 못 가 토착민 인디언의 저항을 견디지 못하고 전멸한다. 뒤를 이어 내부 문제로 식민지 개발 필요성이 절실했던 영국이 이곳을 두드린다. 아메리칸 인디언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확보한 대륙 통치권, 그러나 이로 인해 인권의 보고(寶庫)라는 미합중국은 영원히 숨기지 못할 부끄러운 꼬리표,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을 끌어안고 살게 되었다.     

    

   시비 건 적 없다. 웬만하면 남들과 다툼을 피하고 싶은 나이, 그 불한당이 어디서 왔는지 왜 덤비는지 채 짐작도 전에 셔츠와 바지 속까지 들어와 마구 찌른다. 밤새 내린 빗물이 마당 곳곳에 고여 신발 뒤축이 살짝 젖었다. 물을 털어내려고 두 발을 땅바닥에 쿵쿵 굴렀던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말벌을 쫓아내려 몸부림치던 그 와중에도 예닐곱 살 적의 오래된 장면이 순간 떠오른다. 마을 앞산 무덤 머리를 동네 꼬마들이 겁먹은 얼굴로 어슬렁대던...

   그땐 잘못 건드렸다. 땅 구멍에서 솟아오른 고깔 모양의 회오리가 삽시간에 머리 꼭대기를 빙빙 맴돌았다. 작은 날갯짓이 겹겹이 뭉쳐 나지막하나 무거운 소리를 내면서 시커먼 무리가 쌕쌕이처럼 고꾸라져 내려왔다. 우린 되도록 멀리 도망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고 한쪽에서는 벌써 벌에 물려 바닥에 나뒹구는 꼬마들 비명이 들려왔다. 생존의 위협을 느낀 땅벌이 제집을 파헤치는 동네 조무래기들을 가만둘 리 없었다.

   그렇게 오지게 겪었던 덕에 벌에 쐬고도 견뎌낸 것일까. 따갑고 간지러운 정도가 모기나 벌레에 물린 상처보다 훨씬 심했다. 이상한 기운을 느껴 뒤돌아본 나에게로 대충 수십 마리쯤, 어쩌면 백 마리는 넘을 새카만 벌떼가 직선으로 달려들었다. 얼굴, 목, 팔다리에 들러붙은 그들을 양손으로 털어냈다. 한쪽에서는 겉옷까지 뚫은 벌침이 내 속살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2~3분 짧은 시간이 참 길었다.     


   병원으로 실려 가지 않은 게 이상하다며 남들이 되레 호들갑이다. 엉덩이와 등, 허벅지와 배까지 빨갛게 부어올라 간지럽고 따갑다. 얼핏 봐도 서른 군데 이상, 모르는 게 약이라더니 통증까지 몰려온다. 벅벅 긁으면서 화가 치민다.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일찍 돌아왔다. 마당 한가운데 차를 대고 운전석에 앉아 곳곳을 살핀다. 당한 만큼 돌려주려면 요것들이 주인 몰래 어디에다 진을 쳤는지부터 알아내야겠다.

   돌아보면 그들이 내 집 어딘가에 집을 지으려는 시도는 해마다 계속된 연례행사였다. 현관 서까래 밑이나 처마 아래, 계량기 옆 구멍과 심지어는 옆 벽을 덮은 목재와 목재 틈 깊숙한 곳에 집을 짓는다. 그때마다 에프킬라와 망사잠자리채 그리고 몽둥이를 동원하여, 완성되기 전의 벌집 깨부수기를 멈추지 않았다. 꿀벌이면 모를까 나에게 그들은 생김새나 느낌은 물론, 무지막지하게 침이나 쏴대는 괘씸한 것들이었으니.

   말벌이 침입한 것일까 아니면 오래전부터 그들은 이곳을 드나들었을까. 사람이 살지 않던 시절에야 생명의 영역 내 이동이 어느 만큼 자유로웠을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나를 그들은 이방인 침략자 취급하겠지만, 내 땅에다 벌집을 지으려던 그들에게는 나야말로 한낱 겁먹은 인디언일 뿐이다. 각자 입장을 내세운다지만 그 근거는 다르다. 본능에 충실한 자연 속 미물(微物)과 경제적 소유 관념에 익숙한 영장류 인간, 조화롭게 지내기엔 대단히 불편한 관계다.         


   안방 창문 바깥에 설치한 목재 데크의 마당 쪽 기둥 아래 빗물이 닿지 못할 장소에 삼십 센티는 족히 될 길이로 견고하게 자리 잡은 벌집을 드디어 찾았다. 하필 차를 세워두는 위치 바로 앞이다. 간격을 멀리해서 현관 앞쪽으로 주차한 다음 내려섰다. 아니나 다를까, 두 마리 척후병이 공중에 떴다. 불안하다. 살살 걸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묘하지. 질긴 싸움이겠네. 벌 숫자가 많고 벌집이 대규모지만 그들을 제거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마당에서의 동선이 불편해졌다. 저들 신경을 거슬러 또 당하기 싫어 발꿈치를 들고 운전석 쪽으로 빙 돌아간다. 참 나,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열흘이 넘었다. 보일러 기름 배달 온 사장님이 119에 신고하라고 알려준다. 아니지, 내가 처리할 거야. 완전무장하고 에프킬라를 뿌려 단숨에 전멸시킨 후 비닐봉지로 싸서 벌집을 통째 떼어낼 계획이었는데 그게 쉽지 않다. 실은 무서웠다. 갖은 핑계로 거사를 미루다 보니 계절이 바뀌었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모기 입이 비뚤어져 더는 사람을 물지 못한다는 처서(處暑), 벌의 행동도 확실히 둔해졌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달라붙던 척후병이 안 보이고, 곁눈질로 훔쳐본 벌집 위 꿈틀대던 황갈색 벌도 움직임이 잠잠하다. 용기를 내어 가까이 다가갔다. 이런, 그새 벌집이 텅 비었다! 대체 어디로 갔을까? 집단 참사든 이주든 단판에 사라진 이유는 궁금했다.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환경 오염의 결과로, 어쩌면 그들을 반드시 깨부수겠다는 내 속마음을 알아채서?   

       

   약한 자는 억울하다. 보호구역에서 반(半) 구금 생활을 이어가는 미 인디언의 환영(幻影)이 벌과 엉키면서 갑(甲)이 되어버린 내가 도리어 난감하다. 이 땅을 먼저 점했던 말벌이 이곳의 주인이라는 논리가 맞지. 사람이 여기 살기 전엔 오가기도 자유로웠을 텐데. 이주자 청교도의 욕망이 순박한 원주민 인디언을 몰아냈듯이 뭔지 알 수 없는 요인에 의해서 벌도 사라졌다. 스스로 물러났든 절멸이든 뭔 대수인가. 주인 떠나 껍질뿐인 벌집인데도 치워버리자니 왠지 걸린다. 그냥 놔두고 드나들 때마다 물끄러미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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