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차의 이유를 묻지 마세요
회사마다, 그리고 부서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의 암묵적인 룰은 휴가를 쓸 때 아래와 같은 프로세스를 거친다
1. 먼저 주변 동료들에게 살살 밑밥을 깔고
2. 과장님에게 컨펌을 받고
3. 팀장님에게 구두로 전달하고
4. 결재를 올린다
주변 동료들에게 밑밥을 까는건 예전에는 무척이나 어려웠지만, 뭣도 없으면서 지나치게 강압적인 두 명의 젊은꼰대가 우리팀을 떠나고, 젊은 동료들이 많아져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새로 우리팀으로 넘어온 선배 한 명도 이전에 있던 젊은꼰대와 다르게 그런것에 엄청 쿨하다.
이전에 있던 젊은꼰대는 새벽에 술먹고 팀원들 여럿한테 전화해서 개진상을 부리던, 공과 사의 구분이 모호했던 사람이었는데 이번에 온 선배는 너무나 공사 구분이 확실해서 후배들이 오히려 편해졌다.
이제 남은 관문은 상사들이다.
회의 때마다 수시로 "별다른 일정 겹치는거 없으면 편하게 월차도 쓰고 하세요~" 라고 말은 한다. 직원들의 휴가사용이 관리자 평가항목에 들어가기 때문에 휴가를 많이 쓰면 쓸수록 좋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말을 함에도 불구하고 선뜻 월차를 쓰겠노라 말하지 못하는 직원들이 많다.
"휴가라고? 어디 좋은데가나? 누구랑 가나?"
팀의 분위기상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멘트이지만 휴가 하루 쓰는데 저 얘기를 수차례 듣는 당사자는
이걸 다 말을 하고 가야되나 말아야되나, 휴가이지 출장이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생각이 살짝 스민다.
누구랑 간들, 뭐 부모님이랑 가면 효도한다고 용돈이라도 쥐어주실텐가?
애인이랑 가면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내시려고 하나?
친구랑 간다고 하면 그 친구한테 비상연락이라도 받으시려고?
제발 월차의 이유를 묻지 마시라. 알아서 잘 쉬고 스스로 잘 놀고 올테니-
그게 팀의 입장에서도 훨씬 좋은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