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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륜 Oct 14. 2023

친정엄마의 필라테스 땡땡이에 울어버린 내 엉덩이 근육

워킹맘들에게 운동은 욕심인 걸까?

오늘은 아이의 어린이집 소풍날이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소풍날 학부모가 동행하기를 원한다.


거의 다 워킹맘, 워킹대디인 학부모들이

 어디서 그렇게 연차가 많이 생기는 건지

다들 휴가를 내고 , 심지어 부모가 같이

아이들의 소풍에 동행한다.


연말이 다가오니 남편과 나는

 휴가가 점점 부족해졌다.

도저히 애 소풍날마다 부부가

전부 따라다닐 수가 없었다.


남편이 반차를 내느냐, 내가 반차를 내느냐로 논쟁을 벌이는 우리의 모습에

친정엄마가 손을 들었다.


어차피 10월엔 안식월처럼 쉬고 있으니

 애 소풍 반나절 따라갔다 오는 게 뭐 얼마나 힘들겠어- 하는 생각이었겠지.


그러던 엄마는 오전부터 무너졌다.

소풍지에서 영상통화를 했던 엄마는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지쳐있었고,

돌아오는 길에 잠이 든 애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충전이 끝난 듯 눈을 떠버렸다.


엄마아빠가 도착할 때까지 단 한숨도 안 자고 버텨서 할머니의 멘털을 바사삭 흩어놨다.


그런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오늘 운동은 너 혼자 가"하는 말에

 순간적으로 섭섭해졌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당일취소는 예의가 아니니 엄마 몫까지 내가 1:1 수업을 해버려야겠다고.


생각해 보면 나도 여러 운동을 등록해 놓고는

육아가 힘들다며, 잠을 못 잤다며, 회사에서 털렸다며 안 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엄마라고 다를까 싶었다.


하지만 운동 시작하기 전까지, 엄마의 결정에 서운한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엄마가 쉽게 안 가겠다고 말해버린
 그 수업 결제할 때
내가 몇 번씩이나 고민했었는 줄 알아?

나도 오늘 회사에서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엄마랑 수업 제대로 하려고
부랴부랴 필라테스양말도 새로 사 왔단 말이야.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내 감정의 끝은 서운함이 아니라 결국 슬픔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조금 슬펐다.


다른 친구들이 엄마와 어린이집 소풍 갈 때
외할머니가 따라가야 했던
우리 아이가 혹여나 실망하지는 않았을지,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혼자 손녀만 바라보던
친정엄마가 쓸쓸하지는 않았을지,

일하는 딸을 둔 친정엄마는
왜 환갑이 넘어서도 애보느라 힘이 드는 건지.

워킹맘, 그리고 워킹맘 딸을 둔 친정엄마에겐 운동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게 과욕은 아닌지.


운동 나오기 전 30개월 된 딸에게 "엄마가 오늘 소풍 같이 못 가서 너무 아쉬웠어"라고

한마디를 건네는 것조차

눈물이 날 것 같아 힘겨웠던걸 보면

오늘의 필라테스를 하러 가기 전까지

내 감정은 슬픔이 맞는 것 같다.


엄마와 함께 듀엣수업을 하지 않으니

오늘의 필라테스는 기존과 다른 방에서 진행했다.

고정된 기구에 누워서 숨만 쉬던 엄마와의 수업과는 다르게, 오늘은 좀 운동 같은 운동을 했다.


최근에 했던 필라테스는 그룹수업인 데다가,

그룹수업을 하는 강사님 입장에서 나는

 손이 많이 가는 수강생은 아니었다 보니

아무래도 조금 설렁설렁하게 되는 면이 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맛본 1:1 수업은 필라테스의 매운맛을 다시 느끼게 해 줬다.

배꼽을 등 쪽으로 바짝 끌어당기고,

갈비뼈가 아릴 때까지 모아서 버티고,

발끝까지 당기고 밀어내면서

오랜만에 엉덩이 근육이 바르르 떨리는

힘든 필라테스를 했다.

그러면서, 조금 슬펐던 감정은 많이 휘발됐다.


'워킹맘이 운동하는 건 사치인가?'라는 생각으로 출발했는데

돌아올 땐 '이러니 더더욱 워킹맘은 운동을 해야겠네'라는 마음이 됐다.




50분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애는 잠이 들어있었고,

당연히 피곤함에 지쳐 잠들었을 거라 생각한 친정엄마는 전기장판에 누워

 BTS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도 더 이상 서운하지 않았다.


친정엄마의 필라테스 땡땡이가 부디 따뜻하고 달콤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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