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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륜 Nov 01. 2023

60대도 런지 동작이 가능할까?

2주 만에 재개한 필라테스. 친정엄마는 호흡법을 잊지 않았다

친정엄마의 동유럽 여행일정으로

필라테스를 2주간 쉬었다.

운동을 등록할 때부터 예정돼 있던 여행이었어서,

자연스럽게 운동기간을 홀딩

(운동을 하지 않는 기간만큼 전체 등록기간을 연장해 주는 것)해두었다.


2주 동안 필라테스를 안 가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잊고 살다가

운동 재개 하루 전날이 되어서야 번뜩 레슨이 있다는 걸 깨닫고

새로 산 레깅스 비닐을 벗겨두었다.




엄마가 필라테스 호흡법이나 자세를 기억하고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싹 다 잊고 올까 염려한 강사님이 엄마에게 개인톡으로 설명 영상과 텍스트를 보내두긴 하셨지만, 그걸 봤을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필라테스 스튜디오에 갔을 땐 나도 안일한 마음가짐이었다.

'오랜만에 가는 거니 간단한 호흡이나 스트레칭만 하고 오겠지~'




처음 시작은 평범했다.

그동안 친정엄마와 수업하던 리포머가 아니라, 바렐이라는 운동기구가 꺼내져 있을 때부터

나는 대충 어떤 동작들을 할지 감이 왔다.

 

한 다리를 바렐 위에 올리고 하는 스트레칭이 예상됐다.

이 동작은 유연성이 없다면 너무 아파하는 동작이라 좀 걱정했지만 친정엄마는 곧잘 따라 했다.


나이가 들수록 유연성은 정말 중요하다.

관절의 가동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은,

 낙상이나 외부에 의한 충격을 신체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어느 정도 완충작용을 해줄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특히 노년층의 낙상은 단순 외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골다공증이 동반된 경우 고관절 골절이 되면 다시는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뇌에 충격이 가해질 수도 있으며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최근 회사에서 낙상 콘텐츠를 만든 덕에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가뜩이나 운동이나 스트레칭을 하지 않아 뻣뻣한 친정엄마에겐 근력도 중요하지만 유연성을 키우는 일도 중요했고, 바렐 위에서의 동작은 그런 엄마에게 조금 아프지만 효과적인  운동이다.


내가 놀란 건 친정엄마가 나도 모르게 필라테스 호흡법과 어깨 내리는 자세를 연습해 왔던 것!


강사님의 '복습 좀 해오셨나요'라는 질문에 당연히 '아니요'라는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엄마도 계속해서 신경을 쓰고 있었던 거였다. 양치할 때 서있는 자세를 바로 잡으려고 신경 쓰는 나처럼!


친정엄마가 이 필라테스라는 '운동'과,

운동하는 '시간'을 그래도 그냥 흘려보내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바렐에서의 스트레칭이 끝나자

 본격적인 운동이 시작됐다.

아랫배에 힘이 잔뜩 들어가게 되는 동작을 계속하며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엄마와의 필라테스에서 땀이 난 건

오늘이 처음이다!


절정은 리포머 위에 서서 하는 런지동작이었다.

'런지'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발을 앞에, 다른 발을 뒤에 둔 채 앞쪽 다리를 90도로 굽히며 엉덩이를 바닥으로 내리는 런지는 내가 가장 못하는 동작이다.


출산 후 족저근막염의 후유증으로 한 발로 중심 잡는 게 어려워진 데다

제대로 된 런지를 하면 앞다리 허벅지부터 뒷다리 엉덩이까지 힘이 정말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당연히 친정엄마도 못할 거라 굳게 믿었다.

처음 자세는 어설펐다.


엄마, 발을 안으로 쏠리지 않게, 상체가 너무 앞으로 쏟아지지 않게, 앞다리 무릎이 너무 앞으로 나아가지 않게 해야지-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입을 다물고 내 허벅지와 엉덩이에만 신경 썼다.


강사님은 친정엄마가 동작을 할 때마다 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기다리느라 곡소리를 내는 나에게 잠시 쉬고 있으라고 하고,

엄마의 자세를 꼼꼼히 봐주셨다.


첫 번째 시도에서 아주 어설펐던 엄마는

두 번째 시도에서는 팔꿈치가 펴졌고, 상체가 올라갔고,

세 번째 시도에서는 안쪽으로 말려있던 발이 제자리를 찾았고,

네 번째 시도에서는 꽤 괜찮은 자세가 만들어졌다.


물론 강사님의 많은 터치가 필요했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엄마의 런지 자세는 확연히 나아졌다.

허벅지와 엉덩이가 부들부들 떨리던 나보다 더 버티는 힘이 좋은 것 같았다.


아직 근육이 많이 부족하고, 자세도 처음 해보는 거라 어색하지만

60대가 넘은 어르신도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면

어려운 동작도 해낼 수 있구나, 내가 엄마를 너무 얕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런지 8번에 엄마도 나도 땀을 뚝뚝 흘리는데 우리 몸은 과연 개선의 여지가 있는 건가-하는 양가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제대로 땀 흘리며 운동한 엄마는 개운해 보였다.


"다음 주에 내가 god콘서트 때문에 운동 못하는 날이 있는데,
이날 엄마 혼자라도 1:1 수업을 할래?"

라고 물으니 흔쾌히 "나는 좋지!"라고 말하는 친정엄마를 보며 운동에 대한 부담감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 새삼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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