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리목월문학관
천년의 시간여행, 동리목월문학관 산책
오랜만에 경주로 갔다. 지난번에 동리목월문학관에 갔다가 학생들이 많아서 대충 둘러보고 서둘러 나왔다.
경주불국사를 일 년에 몇 차례를 다녀왔지만 불국사 길목에 있는 동리목월문학관을 매번 지나쳤다. 2월 초, 그날은 오로지 동리목월문학관을 목적지로 하고, 시와 소설을 사랑하는 신중년과 함께 떠났다.
부산에서 출발할 때는 날씨가 흐렸다. 경주에 접어들자 나지막한 산등성이에 하얀 눈이 덮인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차츰 눈이 녹아들고 있었는지 산 꼭대기만 눈이 보였다. 경주불국사 입구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길 양쪽으로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에 수북하게 쌓인 게 아니라 하얀 가루를 뿌려놓은 듯했다. 아래서부터 눈이 녹아들고 있었다. 갈색나뭇가지가 편백이 되었다. 부산에는 좀처럼 눈이 오지 않아서인지 신중년들은 흥분했다. "아이고 예뻐라"를 연발하면서 문학관 앞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이내 문학관 안으로 들어가 주차를 한 다음 문학관에서 불국사 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미끄러질까 봐 조심스럽게 내려가는 동안 눈이 한 두 방울 내리더니 그쳤다. 그 길목은 불국사로 가는 계단과 곡선이 아름다운 다리와 다리 양쪽으로 연못이 잘 어우러져 풍경이 아름답다.
눈구경을 한 다음 우리는 해설을 부탁하고 '신라를빛낸인물관'부터 관람을 했다. 신라시대의 왕과 재상, 장군, 화랑, 학자, 예술, 효행 등 신라를 빛낸 인물들을 전시해 두었다. 해설은 주요 인물 몇 분만 짧게 해설을 해주셨다. 해설이 끝난 뒤 꼼꼼하게 내용을 살피며 사진과 메모로 기록을 했다. 우리가 몰랐던 신라시대 스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해설사가 언급한 사찰이나 유적지를 다시 가보고 싶었다. 다시 답사를 가게 되면 다르게 보이지 싶다. 아는 만큼 보일 테니.
인물관 관람을 마치고 본관으로 갔다. 본관은 따로 해설이 없고, 1층 로비 좌 우로 좌측에 김동리작가의 전시실과 우측에 박목월 시인의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지하는 두 작가를 소개하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그 영상에서 소설 김동리작가와 시인 박목월 선생의 작품과 생애를 마주했다. 특히, 학창 시절 외우고 쓰고 시험을 치렀던 시가 목월문확관에 들어서면 눈에 띈다. 오랜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웠다. 평일이라 사람이 없어서 자유로웠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내가 좋아했던 나그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를 시 낭송하듯 했다. 그 외에도 두 작가가 경주와 자연을 소설로 시로 표현한 글들을 읽고 쓰고 말하며 문학 산책을 했다. 동행인은 고전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두 작가의 글을 새기듯 관람을 했다.
두 작가의 작품은 같은 지역 출신이자 선 후배라 그런지 경주의 예스러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공간에서 두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감상하면서 사진으로 기록을 하고 오래 머물렀다. 김동리 작가는 어린 시절 이웃 소녀의 죽음으로 인해 종교와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바탕이 드러나는 소설과 영상이 소개된다. 박목월 시인의 영상에서 젊은 날의 초상을 보면서 아리한 연민이 느껴졌다.
동리목월문학관 산책을 마치고 나왔더니 하얗게 뒤덮은 눈은 사라졌다. 돌아오는 길에 '구 불국사역' 앞에 있는 단골집 '갈비랑 국수랑'에서 식사를 하고, 서출지 카페 맛집 '서오' 카페로 이동했다. 서출지가 지난여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연분홍 연꽃이 핀 연못은 청둥오리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파릇파릇했던 연못 중앙에는 볼품없는 갈색빛 잡풀들로 엉켜있다. 서출지의 풍경은 황량했다. 서출지 한 바퀴를 돌아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맛은 그대로다. 서출지에도 사람이 없었다.
평일 흐린 날, 신라천년의 시간여행은 고요한 문학관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었고, 그날따라 우연히, 잠시 마주한 설경 또한 좋았다. 가끔 문학관 산책을 떠난다. 오영수 문확관을 갔던 날도 그랬고, 어디든 여행에서 만난 문학관은 작은 떨림과 함께 낯선 뿌듯함이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