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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네 Aug 11. 2022

‘기적’ 대신 믿어 볼 만한 것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보고

어린이의 세계

 인생  번째 크리스마스 , 나이에 맞지 않던 순진함이 무너졌다. '산타는 엄마 아빠잖아.' 설마 몰랐냐는 듯한 목소리. 사실 10살이면 산타를 믿기에는  나이를 먹었을 때이니, 짐작도 못한 거라고 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말을 정확히 듣는 것은 처음이라 확인사살을 당하는 기분이었달까. 혹시나 하던 마음이 실망감으로 차올랐다.


얼마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왜인지 엄마는 혼자서 예전 동네에서 지냈는데,  때문에 중학교 입학할 때까지만 잠시 떨어져 지낸다는 허술한 핑계를 우리 자매는 철석같이 믿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이 숨겨둔 이혼 서류를 발견했다. 그녀가 건넨 꾸깃한 서류를 대충  훑어본  낭랑한 목소리로 '그런  같더라니'하며 아무렇지 않은  허세를 부렸다.


'세상에 산타도 없는데 엄마 아빠가 몰래 이혼한 것쯤이야(?)'


어린이는 괜찮지 않을 때 괜찮은 척을 해선 안된다. 철없는 소리를 하는 것은 어린이가 가진 최고의 특권이니까. 하지만 눈물을 뚝뚝 흘리는 동생을 보니 괜히 더  씩씩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날은 우리 자매가 살던 어떤 세계가 쩍 하고 갈라지던 날이었다. 얼마 뒤 '엄마 집'에 도착한 나는 결국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몇 시간을 꺼이꺼이 울었다. 저녁에 우리를 데리러 온 아빠가 '자 와저라는데?'하고 물었지만 엄마는 멋쩍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이에게 부모는 온 세상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언젠가 세상의 전부였던 부모가 더 큰 세계의 일부로 멀어져 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혼은 다소 폭력적인 방법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커다랗고 무관심한 세계와 처음 부딪힌 어린이는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물만 흘리는 것이다. 그 외로운 순간, 위로가 되는 것이 없었다.  


세계를 선택해도 괜찮은 이유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주인공 코이치의 부모님도 이혼을 했다. 코이치는 화산이 폭발하더라도 흩어진 가족이 다시 함께 살기를 바랐다. 그러나 고작 초등학생인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기적처럼 화산이 폭발하기를 기도하는 일뿐. 그래서 그는 '상행선과 하행선의 기차가 마주치는 순간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순진한 소문을 믿어 보기로 한다.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아도 어른인 우리는 알고 있다. 기적은 없을 것이라는 걸. 영화의 끝에 진짜로 기적이 일어나는 반전은 없었다. 하지만 꺼이꺼이 울었던 그날의 나와 달리 코이치는 울지 않았다. 소원을 빌었냐는 동생의 질문에 코이치는 이렇게 대답한다.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하기로 했어”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실망스럽겠지만 그 안에서 반짝이는 일들을 찾아내는 것 또한 삶의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이 기특한 꼬마는 이해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무 맛도 나지 않던 할아버지의 떡에서 처음으로 단맛을 느낀 코이치. 이 슴슴한 떡에서 단맛을 찾은 것은 억지스러운 자기 위안이 아니라, 그 미묘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 뿐이니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영화의 주인공 ‘코이치’

누군가 고레에다의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 영화는 슴슴함 속에 딱 좋은 단맛이 느껴지는 백설기를 먹는 느낌이야' 하고 대답하려고 한다. 아마도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을 것 같지만… 그렇다면 일단 드셔 보라고 말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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