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친구들과 다툼이 생기면 어른들은 나에게 먼저 사과하라고 가르쳤다.
먼저 사과하고 다가서면 상대방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 마련이라고.
아직 분한 마음이 풀어지지 않았어도 눈물 꾹 참고 ‘미안해’라고 얘기하면,
대개는 친구도 역시 눈물 흘리며 ‘나도 잘못했어’라고 답하는 게 아이들의 화해 루틴이었다.
그렇게 화해하고 나면 싸웠던 이유를 다시 들춰내 얼굴 붉히기보다는 친구와 다시 잘 지내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 봐도 당시 어른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먼저 사과하지 않으면 결코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 사람들은 먼저 사과하는 법을 잊어가는 것 같다.
어른의 세계에선 ‘미안하다’는 말이 마치 '내가 책임지겠다’ 또는 ‘내가 손해를 보겠다’는 의미와 동일한 뜻으로 느껴진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라고 인정하면 모든 손해를 뒤집어쓰고 책임져야 할 것 같은 불안이 자리 잡은 것이다.
실제로 먼저 고개 숙이고 잘못을 인정하면 이때다 싶어 상대를 비난하며 합당한 책임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운전 중 작은 접촉사고라도 나면 일단 뒷목부터 잡고 내려야 손해보지 않는다는 게 상식처럼 얘기될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니 먼저 사과하는 것이 미덕이란 것은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기가 참 어렵기만 하다.
이런 세태는 비단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서 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공적 책무를 가진 사람들에게서도 오히려 더욱 심하게 느껴지고는 한다.
정치인들은 먼저 사과하기보다는 상대에게 먼저 사과를 요구하고
혹시 사과를 받더라도 아이들처럼 '나도 잘못했어'가 아니라 이때다 하고 상대를 더 몰아세우고는 한다.
만약 사적인 영역에서 혹시 잘못을 하고도 본인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나쁘더라도 해법은 있다.
가급적 피하고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게끔 손절하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공적 영역의 인물이 그런 성향이라면 피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피할 수 없는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 목숨 걸고 투쟁하며 싸우던 시절에도 '내 탓이오'를 실천하자는 운동이 있었다.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 간에 신뢰를 회복하려면 결국 자기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고금의 진리인 법이다.
마케팅 영역에서는 기술이나 문화의 급격한 변화에 남들보다 먼저 도전해 경험하고 판단하는 early adopter들의 역할이 주목받고는 한다.
하지만 극심하게 갈등하고 있는 세태에 대해 생각해 보면 early adopter 못지않게 먼저 사과할 줄 아는 early apologizer의 역할도 주목받고 대우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 간단히 읽기 쉽게 글을 쓰지 못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