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 여자친구와 함께 신촌에 놀러 간 일이 있었다.
당시 내가 살던 강남에서 신촌까지는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해 이동할 수 있었지만, 어느 방향으로 돌아도 정확히 순환선의 절반 노선을 지나가야 했기에 좌석에 앉지 못할 확률이 큰 지하철 이용은 꺼리게 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없어진 12번 좌석버스가 강남에서 신촌까지 운행을 했기에, 긴 배차간격을 기다려서라도 버스를 타고 가는 게 편하다고 느껴졌다.
버스 중앙차로가 없던 시절이라 재수 없게 교통체증을 만나면 하염없이 길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을 각오해야 했지만, 그래도 여자친구와 만나서 같이 이동하는 것이니 함께 앉아 이동하는 좌석버스가 더 나은 선택이었다.
내가 얘기하려는 경험은 그렇게 12번 좌석버스를 타고 논현동 어디쯤을 지날 때의 일이다.
마침 그날이 바로 꽉 막힌 도로 사정으로 인해 좌석버스 안에 갇혀있다시피 한 날이었다.
승객을 태우려 정거장에 정차해야 하는 버스는 얽혀버린 차량들 때문에 혼잡한 도로에서도 자주 차선 이동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버스는 도로 위에서 크고 작은 시비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대개의 운전자들은 버스의 격한 운전을 보고 불쾌해하거나 욕을 하면서도 뻔한 사정을 알기에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지만, 무더웠던 그날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도로 위에서 조금씩 꿈틀대듯 서행하는 좌석버스의 앞쪽 출입구에서 갑자기 문을 두드리며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 XX야! 문 열어!"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하며 운전대만 잡고 있던 기사분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격해지자 소리쳐 맞대응했다.
"뭐? 비켜 인마!"
그러다 차문을 두드리는 손이 더 격해지자 기사분은 화를 내며 문을 열었다.
그때 차로 뛰어든 상대방은 거친 욕설과 함께 다짜고짜 기사분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주먹과 구둣발로 운전석의 기사분을 공격했고, 기사분은 좁은 운전석 때문에 방어를 하기도 어려워서 갑작스러운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순식간에 거친 폭력이 시작되었기에 차량 앞쪽의 승객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악! 왜 그러세요?"
"그만해요"
그 와중에 또 다른 사람이 버스로 뛰어 들어와 웅성이는 승객들을 협박했다.
“앉아, 가만있어, 끼어드는 XX는 다 죽어!!!”
운전기사를 폭행하는 사람과 만류하는 승객들을 향해 협박하던 사람은 그 말투와 옷차림으로 보아 누가 봐도 주먹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인 것처럼 보였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당장 신고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쩔 줄 몰라했고, 운전기사는 급기야 얼굴에 피를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나라도 말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어나 보려 했지만, 여자친구는 무서워서 내 팔뚝을 꼭 잡고 있었고 그 찰나에 내 머릿속에선 내가 일어났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이 스치듯 상상되었다.
다행스러운 건 그 고민이 길지 않은 상태에서, 옆을 지나던 다른 버스 기사님이 뛰어 올라와 폭행을 제지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 상황은 다 해도 2분도 채 되지 않을 짧은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서 어떡해야 할까를 고민하던 시간은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고민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일어서서 나서지 않았던 것이 잘한 일인가 아니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가에 대한 고민은 또 그보다도 훨씬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어느새 30년은 되었을 그 당시의 사건이 아직도 머리에 떠오르기도 하고, 그럴 때면 그때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 쓰이기도 한다.
평상시 나의 상식과 양심으로는 시시비비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누군가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다면 일단 말려야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당시엔 조폭 같은 상대의 모습에 겁먹었던 것일지 아니면 여자친구까지 위험에 노출될까 봐 참았던 것인지 어떤 이유로든 나는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았다.
누구도 내게 뭐라 하지 않았고 그런 상황을 함께 겪은 지금의 와이프도 다 잊어버린 일이지만 당시 상황이 떠오를 때면 부끄러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아마 내게 양심의 가책이 있었던가 싶다.
어떤 사람은 슬쩍 훔친 물건을 10년이 지나도록 마음에 걸려하다가 양심의 가책 때문에 돌려주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40년도 지난 무임승차가 양심에 걸려 천배의 요금으로 갚았다는 뉴스도 있었다.
영화 '변호인'에서도 주인공은 외상으로 먹은 국밥값을 갚지 않은 게 미안해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이를 변상하고자 한다.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이렇듯 마음이 불편한 게 인지상정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이 오히려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은 실제로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정작 뉴스에 나와야 할 일들은 저런 미담이 아니라 양심 없이 행동하고 부끄러움도 없이 모른 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여야 한다.
자기가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지나간 일이라고 그냥 잊어버리지 말고
책임 있는 사람들이 침묵과 외면보다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회라면
양심의 소리에 응답하는 게 미담이 되는 사회가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당연한 일이 되겠지 싶다.
無羞惡之心 非人也(무수오지심 비인야)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사람이 아닌 무엇이 사는 세상인가.
내 마음에 자리잡은 부끄러움은 얼마나 지나야 어떻게 해야 지울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