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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Nov 11. 2022

관제 법칙 : 관제에는 정답이 없다

관제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본인만의 스타일이 생기게 된다.


비행기가 많아질수록 통행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등 관제사가 스스로 결단해야 하는 상황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 안전에 심각하게 지장을 주는 식으로 관제하는 경우만 아니라면 각자의 관제 스타일은 매우 개성 있어질 수밖에 없다. 관제사 개개인의 생각들에 비추어, 안전보다는 효율적인 교통 흐름을 더 우선할 수도 있고 반대로 항상 안전을 1순위로 근무할 수도 있다. 또는 항상 관제용어는 짧게 유지하는 것을 선호하는 관제사가 있고, 이와 다르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을 선호하는 관제사도 있다. 더 나아가 보자면 본인과 동시간에 근무하는 타 근무석 관제사와 협조하여 표준 경로 등을 일시적으로 바꾸는 것에 굉장히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있고, 정해져 있는 표준 경로를 우선하여 근무하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단독근무를 할 수 없는 훈련 관제사는 최대한 많은 관제사의 관제 스킬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다. 훈련 관제사는 관제를 하는 경우 항상 옆에 감독 관제사의 모니터를 필요로 한다. 보통은 숙련된 관제사와 1:1로 페어 되어 주로 같은 사람에게 배우긴 하지만, 돌아가며 관제석을 맡는 관제 특성상 매 시간마다 같은 사람이 훈련을 도울 수는 없다. 훈련 관제사 A 씨의 하루 시간표를 쪼개 보자면 다음과 같다.


<훈련 관제사 A의 하루>


09:00 - 10:00 관제(+감독 관제사 B)

10:00 - 11:00 휴식/기타 업무

11:00 - 12:30 관제(+감독 관제사 C)

12:30 - 13:30 점심식사

13:30 - 15:30 관제(+감독 관제사 D)

15:30 - 17:00 휴식/기타 업무

17:00 - 18:00 관제(+감독 관제사 B)


특히 레이팅이라고 부르는 한정자격 심사 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하루에 본인이 관제를 하는 시간이 위의 시간표처럼 굉장히 증가하게 되는데, 위의 시간표대로만 해도 A관제사가 하루에 맡은 관제 시간은 무려 5시간이 넘게 된다. 그러니까 밥 먹고 잠깐 쉬는 시간 빼고는 전부 다 관제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보이는 것처럼, 훈련을 돕는 감독 관제사가 매번 바뀌게 되는데, 감독 관제사 별로 스타일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훈련을 받으며 약간의 어려움이 생기게 된다. 특정 한 사람만의 관제 스킬을 그대로 따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릴지는 본인 선택에 달렸다. 이건 아마 모든 관제사들이 공감할 이야기일 것이다.


예시를 들어보자면 이런 간단한 경우에도 관제사들의 관제 용어 사용은 두 부류로 갈린다.


-계류장에서 평행 유도로로 항공기가 진출하는 경우, 기동지역 유도로인 A 또는 M 전에서 우리는 '정지하세요.'라는 관제용어를 사용한다. A와 M 유도로는 우리 관제사의 관할 구역이 아니기 때문에, 일시 정지 지시를 주고 타 관제석에 항공기를 이양하고 있다. 관제 용어로 써보자면 'Hold short of A/M'로 이야기한다.

(1) 이 지시를 한 번만 사용해서 항공기를 이양하는 관제사가 있고 >> Taxi via R8, Hold short Mike. (이후) Contact Ground 121.7

(2) 용어를 두 번 반복해서 사용하는 관제사가 있다. >> Taxi via R8, Hold short Mike. (이후) Hold short Mike, Contact Ground 121.7

전자는 이전의 본인 지시를 조종사가 확실하게 이해했다는 가정하에 할 말을 최대한 짧게 하고 싶은 사람이다. 후자는 관제사는 해당 지시를 한 번 더 반복하더라도 항공기가 반드시 타 관제사 관할구역 진입 전 정지하는 것이 안전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또는 나처럼 1과 2를 적당히 섞어서 사용하는 관제사가 있다. 내가 생각했을 때 필요한 경우 - 조종사의 리드백이 잘못됐거나 엉성했을 때, 내 관할구역으로 들어오는 항공기와 기동지역에서 경로가 겹칠 것으로 예상될 때 - 나는 '기동지역 진입 전 정지하세요. [Hold short of A/D/M]'라는 단어를 한 번 더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관제사의 성격,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본인의 스타일마다 옳다고 생각하는 관제 기법이나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관제에는 정답이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있을 수 있다.


- 계류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도착 항공기가 있는데, 도착 항공기의 이동 경로에 출발 항공기가 푸시백을 대기하고 있는 경우. 이런 경우 운이 좋지 않으면 출발 항공기가 길게는 7분에서 10분까지 기다릴 수도 있다. 출발 준비는 다 되었는데 10분이나 지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럴 때 우리 관제사의 선택은 보통 두 갈래로 나뉜다

(1) 출발 항공기를 대기(=지연)시키기 싫으니 일단 푸시백하고 도착 항공기를 계류장 진입 전 잡아달라고 협조를 구함. (또는 도착할 때의 일반 경로를 사용하지 않고 비표준 경로로 협조를 구함.)

(2) 도착 항공기가 들어갈 때까지 출발 항공기를 푸시백시키지 않고 대기시킴.


이런 간단한 문제에서도 관제사는 본인 스타일에 따라 선택을 달리한다. 나는 출발 항공기에게 푸시백을 주지 않고 대기시키면, 그 항공기가 지연되는 이유가 왠지 나 때문인 것 같아서, 1번의 경우처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와는 정 반대로 일단 도착 항공기가 계류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우선해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착 항공기가 기동지역에서 대기하게 되면 그 항공기 뒤로 계속해서 들어오거나 출발하는 전체적인 교통 흐름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나는 1번과 2번 중 어떤 게 정답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와중에도 '관제를 잘한다'라고 인정받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공항의 전체적인 교통흐름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우선순위를 결정하곤 한다. 평균적으로, 1명의 관제사가 본인 주파수에 약 10대 정도의 교통을 가지고 있으면 그게 관제사 개인의 처리 용량 최대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현장에서 겪어보니 그야말로 관제는 타고나는 것이라서, 그 이상을 해내는 사람이 있고 또 10대면 이미 조금 버거워하는 사람도 있다. 정신이 없을 때 사람의 판단력은 더 무뎌지기 마련이라서 안전에 더욱 민감해지기 때문에, 그 바쁜 시간을 지나고 나면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는 건 덤이다.


얼마 전 준공된 인천공항 원격계류장 탑승교


얼마 전, 전국의 관제사가 조금씩 모여 듣는 관제사 정기교육에서 한참 연차가 되신 강사분이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재밌게 하세요. 재미있게."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재미있게 관제하자!

고 언제쯤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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