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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Dec 29. 2023

비행기 왜 지연시키는 거예요?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진짜루

정말 가끔이긴 하지만 타워에서 민원성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출발항공기의 이륙 시각(TTOT)이 정해지는 바람에, 실제로는 20시에 출발하기로 했던 게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1시간씩 지연되니까. 아니면 도착항공기가 왜 주기장 앞에서 못 들어가고 대기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전화도 있다. 순화해서 말했지만 날카로운 말투로 '안 그래도 지연됐는데 왜 또 잡냐!'는 식의 민원이 요즘엔 들린다.


대체 왜 항공기가 이렇게 지연되는지 변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아래에서 정확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인천공항에는 활주로가 네 개 있다.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건 보수공사를 위해 잠시 닫은 제2활주로(33R-15L)를 제외한 세 개 활주로다. 일반적으로 활주로는 바람에 따라 두 개의 반대 방향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인천공항의 제3,4 활주로는 34 또는 16이라는 방향을 사용하며, 정풍(head wind)을 맞고 이착륙해야 하는 항공기 특성상 풍향과 풍속이 활주로 방향의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된다.

인천공항 활주로 4본


이륙전용인 제3활주로(34R-16L)를 기준으로 바람이 340도 근처에서 불어오면 방향 34R를, 160도 근처에서 불어오면 방향 16L를 사용하게 되며, 이 활주로 방향은 이착륙관제를 담당하는 인천관제탑에서 접근관제소와 상의하여 결정한다. 이륙활주로로 34R를 사용하면 계류장에서 나가는 출발항공기가 3활주로 앞에서 줄줄이 대기하는 모습을 빈번히 구경할 수 있다. 출발항공기는 빠르면 2분에 한 대 정도 이륙할 수 있다. 약 6대의 항공기가 M유도로에서 출발 대기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면, 이륙 순서 7번째 항공기는 대충 계산해도 줄 서는 동안 적어도 12분을 대기해야 한다. 그게 계류장 안에서든, 활주로 앞에서든 유도로를 물리적으로 점유하게 되는 것이다.


계류장관제사가 모든 능력을 발휘해서 이렇게 저렇게 공간을 만들어 후방견인 허가를 있는 대로 다 줘도, 비슷한 시간대에 출발항공기가 몰리면 어차피 이륙하지 못하고 활주로 앞에서 10분 이상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얘기다.



skyteam 도장의 대한항공, 그리고 제2계류장관제탑



그래서 최근에는 출발항공기가 많아 바쁜 시간대에 미리 이륙순서가 정해져서 나오기도 한다. 비행허가를 주는 관제사가 직접 출발항공기에게 이륙 순서를 부여한다. 이 이륙순서를 *TTOT 또는 **CTOT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 항공기가 활주로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역산한 ***TSAT이 바로 출발항공기가 최초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각이다. TSAT은 우리 계류장관제사에게 가장 중요한 시각이기도 하다.

*TTOT(Target Take Off Time) : 목표이륙시각. 출발항공기가 몰릴 때 관제탑에서 항로분리 등을 고려하여 발부하는 시각.
**CTOT(Calculated Take Off Time) : 조정이륙시각. 특정 항로 분리 또는 목적공항 도착항공기 분리 등 제한사항이 있는 경우, 해당 제한사항을 고려하여 항공교통흐름관리 센터에서 발부하는 시각. 거의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TSAT(Target Start-up Approval Time) : 목표엔진시동시각. 인천공항에서는 후방견인 및 엔진시동 허가를 주는 시각이다. 계류장관제사는 정해진 시각의 +- 5분 이내에서 후방견인 허가를 줄 수 있다.


출발항공기가 동시간대에 몰려 한꺼번에 다 활주로로 가겠다고 튀어나와도 어차피 활주로의 개수는 정해져 있고 시간당 이륙할 수 있는 항공기 대수도 정해져 있다. 이동 동선인 유도로에 항공기를 올려놓아 빈 틈 없이 지상을 복잡하게 만들 바엔 주기장에서 이륙순서에 맞춰 항공기를 기다리도록 하는 것이 관제사 입장에서도, 연료를 아껴야 하는 항공기 입장에서도 윈-윈 하는 좋은 방법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계류장관제사는 TSAT을 기반으로 항공기에게 후방견인 허가를 주기도 하고, 대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TSAT에 맞춰 출발항공기를 대기시키다 보면 도착항공기가 들어가야 하는 터미널 주기장이 계속 점유된다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인천공항의 일일 여객 편이 1,000대를 가뿐히 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접현주기장은 1터미널 44개, 탑승동 30개, 2터미널 41개뿐이다. 그러니까 쉴 새 없이 비행기가 출발해 줘야 도착항공기가 또 바로 터미널로 들어갈 수 있다.


출발항공기를 빨리 후방견인 시켜서 유도로에 올려두어도 출발을 못하고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문제가 있고, 그렇다고 도착항공기를 무작정 기다리게 하기에는 주기장이 놀고 있는 시간이 아깝다. 이렇게 우리 관제사는 피크시간대에는 'TSAT을 지킨다' VS '도착항공기를 빨리 넣어준다'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는데 요즘에는 그냥 도착항공기를 빨리 주기장에 넣어주는 방식을 선택해서 근무하는 편이다. 출발 여객은 얼른 나가고 싶어 하고, 도착 여객은 얼른 집에 가고 싶어 하니까.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항공기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며 출도착 시키고 있으니 우리가 일부러 잡는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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