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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 Dec 09. 2019

커피, 세상으로 나오다 (3) 完

Shin의 커피이야기


검은 황금, 커피


커피가 유럽으로 유입되고 대중화된 이후, 세계 시장에서 커피의 소비량은 나날이 커져갔다. 당시부터 현대까지 주요 커피 생산지 역할을 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의 커피 농사 작황에 따라 시세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커피의 소식을 기다리며 경매장에 대기 중인 상인들과 투기꾼들은 연신 손톱을 질겅였다. 해저 케이블이나 전화, 증기선이 발명되기 전에는 부족한 통신기술의 빈틈을 노리고 투기꾼과 자본가들이 모의하여 커피 시세를 조작하기도 했다. 여기에 도매상인의 개입, 불안정한 유럽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는 상황을 더욱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1823년 프랑스와 스페인의 긴장된 상황이 연출되자 커피 가격은 역대 최고가를 갱신했고 물량을 쥐고 있던 상인들은 행복에 가득 찬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프랑스 국왕 루이 18세의 전쟁은 없을 거라는 칙령이 떨어지자 커피 가격이 역대 최저로 곤두박질 쳤고, 수많은 투기꾼이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또 1870년에는 커피 작황이 최악이라는 소식이 유포되어 커피 가격이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지만 이어 항구에 엄청난 양의 커피가 도착하면서 물량을 사재기한 도매상인들은 형편없는 가격에 커피를 풀어야했다. 이런 커피 인플레이션은 1874년에 남아메리카와 뉴욕, 뉴욕과 런던 사이에 해저 케이블이 부설되고 나서야 잦아들었다.


그렇다면 당시 상인들은 어째서 이처럼 커피 거래에 열을 올렸을까? 그것은 당시 유럽 전역에 퍼져있던 커피 예찬 때문이다. 이 검은 음료의 열렬한 신도들은 과거 자신들의 조상들이 와인과 맥주를 탐하던 것처럼 커피를 탐했다. 그들은 전쟁의 발발 등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와중에는 ‘밀’, ‘치커리’, ‘무화과’ 등등을 이용해 만든 커피 대용 음료를 마시다가도 형편이 펴는 순간 주전자 가득 커피를 담아 놓고 마셨다.



 커피를 마시는 프러시아 가족, Karl Ludwig Jessen 1897       lempertz 1845


제국주의와 커피


커피 소비가 급증하다보니 커피 생산지들의 역할은 몹시 중요해졌다. 유럽 각 국은 더 많은 커피를 생산해내기 위한 갖은 노력을 했다.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흑인 노예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배하에 있는 남아메리카 플랜테이션 농가를 향해 바다를 건넜고, 인도네시아 자바에서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주도아래 수많은 농지가 커피 농장으로 탈바꿈했다. 앞의 세 국가와 달리 유력한 커피 생산지를 확보하지 못한 다른 국가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커피재배 사업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답은 아프리카였다.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아시아 최대 커피 생산지였던 자바섬을 네덜란드에게 돌려주면서, 새로운 경작지를 필요로 했고 자국의 식민지 중 마다가스카르, 기아나, 소말릴란드의 원두 생산을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뒤늦게 식민지 확보에 끼어든 독일도 케냐와 우간다에서 제법 좋은 품종의 원두를 재배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 시민들의 위장으로 흘러들어가는 커피를 감당하기에는 아프리카의 생산량은 극히 미미한 것으로 여전히 막대한 양의 커피를 수입에 의존했다.


영국은 커피 재배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커피 산업에 오로지 판매자로서 접근했다. 런던의 경매장에는 외국 상인들에게 대량의 커피가 항시 유통되었고, 영국 최대의 식민지인 인도 제국에서도 이슬람 상인들이 투르크에서 들여온 커피가 대량으로 소모되었다. 영국 정부는 확실한 판매처가 확보된 장사를 그냥 두지 않았다. 자국 식민지 중 커피 생산지로 적합한 곳을 물색하던 정부의 눈에 띈 곳은 훗날 차 생산지로 더 유명해질 실론 섬이었다. 타고난 상인이었던 영국인들은 커피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기후와 토질을 지녔다고 평가 받던 인도네시아 자바섬과 매우 유사한 것을 깨닫고 실론섬을 대규모 커피 경작지로 탈바꿈시켰다.


영국의 노력과 실론섬의 이상적인 환경의 결과물은 엄청났다. 실론의 커피 수출은 급속도로 그 세를 불려나갔다. 실론 주민들의 반발, 세포이의 난과 커피 관목에 퍼진 전염병으로 커피 생산이 중단되고 차나무가 그 자리를 대체하기 전까지 실론 섬은 1812년 150 톤, 1845년 15,000 톤에 달했으며 1869년에는 무려 50,000 톤이 넘는 커피를 수출하는 거대 플랜테이션이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 속에 몰락한 실론의 농장에서 마지막으로 커피가 재배된 것은 1900년 무렵으로, 그 양은 겨우 7,000 포대에 지나지 않았다.


이처럼 수많은 국가들이 자국민의 수요와 수익 증대를 위해 뛰어들었던 커피재배 산업은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커피의 특성 때문에 점차 시들해졌다. 커피관목은 4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생산력을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플랜테이션을 확장하던 재배업자들의 뒤통수를 쳤다. 심어둔 커피가 4년이 지나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이 과정이 5년, 6년이 지나면서 확장된 땅에서 더 많은 커피가 물밀 듯이 쏟아져 나왔다. 한두 군데가 아닌 모든 생산지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니, 과잉생산으로 커피 가격이 폭락했다.


구매자보다 판매자가 많아지니 커피 재배업자들의 수익은 그들이 넓힌 농장에 들어가는 자본과 노동임금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 결과 커피재배 사업에서 수많은 이들이 손을 뗐다. 이러한 일련의 소동 이후의 커피재배는 기존부터 커피의 최대 생산지였던 남아메리카와 전통적으로 커피를 재배하고 소비하던 아프리카 일부 지역으로 한정되었다.



일련의 소동 이후에야 형성된 주요 커피 생산국 현황, 일명 커피벨트


현대의 커피, 그리고 미래


오늘날 범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커피는 에스프레소(espresso)를 베이스로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만드는 이탈리아의 방식이다. 19세기 이탈리아 전역에 퍼진 커피하우스들은 몰려드는 손님들에게 일정한 품질의 커피를 빠르게 제공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했고, 이런 연구의 결과물로 1901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루이지 베제라가 만든 커피머신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커피머신 개발은 가속화 되어 피스톤 원리의 도입과 개별식 보일러가 추가됨으로서 현대의 에스프레소 머신이 세상에 나타났다. 그 결과로 카페에서 커피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줄어들었고, 이는 폭발적으로 증가한 수요를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안정화된 공급 방식을 확보한 현대의 커피 산업 방향의 키는 브랜드의 손에 쥐어졌다. 미국의 Folgers Coffee Beans, Maxwell House 등을 비롯해 우리에게도 익숙한하워드 슐츠의 Starbucks, 유럽의 Nespresso를 비롯한 Lavazza, Tassimo 등 서구권의 브랜드에 이어 한국의 투썸플레이스, 이디야, 탐앤탐스 등이 커피 산업의 최전선에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에 대한 결과물로 길거리의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브랜드의 종이 잔을 손에 들고 있고, 카페의 불은 새벽 늦게까지 거리를 밝힌다.


삼삼오오, 혹은 홀로, 사람들은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는 이 ‘이슬람의 와인’을 연신 홀짝인다. 식도를 거쳐 혈관으로 스며든 화학물질은 뇌를 폭발적으로 활동하게 만들어 인간을 고양시키고 휴식의 필요성을 미루게 만든다. 전기의 발명과 함께 밤이 인간의 활동 영역에 속하게 되면서, 이 검은 음료는 수많은 사람들의 혀와 코를 매료시키고 끊임없이 자신을 갈구하도록 만들었다. 본디 차(茶)의 영역에 속해있던 대한민국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2018년의 커피 원두 수입량은 12만 톤에 달한다. 성인인구 한 명당 한 해에 353잔의 커피를 소모하는 셈이며, 시장의 규모는 약 7조원에 달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과거 무슬림들이 향유하던 ‘신의 음료’가 중동에서 유럽을 거쳐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를 뒤덮었다. 과거의 투르크식 커피에 이어, 브루잉 커피, 아인슈패너, 에스프레소, 그리고 콜드브루와 투명커피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맞는 옷차림으로 갈아입으며 변화를 계속 해오며 그야말로 현대를 지배하는 음료가 된 것이다. 커피는 인간이 그 향취와 영감을 필요로 하는 이상 끊임없이,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 역사를 이어나갈 것이다.



본 내용은 하인리히 E.야콥의 저서 '커피의 역사'를 골자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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