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말자, 게임 속 시나리오가 아니라 시부모님과 함께 짓는 주택이다.
사람마다 집에 부여하는 의미와 가치는 모두 다르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나를 감싸주는 둥지일 수도 있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유기체일 수도 있다. 반면에, 단순히 지친 몸이 쉬어가는 휴식처일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대다수의 시간을 집이 아닌 학교나 회사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으니. 그러나 #코로나 로 인해 강제적으로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가 머무르는 '집'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몇 가지 사례들을 꼽아보자면
인테리어/가구/가전 등 집 안과 연계된 제품들의 판매가 크게 늘어남
재택근무/수업 시행에 따라 주거의 공간이었던 집 안에서 일/삶을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는지 고민이 늘어남
원래도 이불 밖은 위험하다 했지만, 어느 때보다 안전한 나/가족의 공간에 대한 열망이 늘어남
한국에도 마침내 #위드코로나 기조에 접어들면서 '일상회복'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있다. 그러나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는 코로나 이전과 동일할 수 없다. 아직 완전히 전염병을 극복하지 못하기도 했고, 전염병으로 촉발된 여러 사회 변화를 통해 우리의 가치관 역시 많이 바뀌었으니. '공간', '집'에 대한 생각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집을 짓고자 결심하게 되었고, 현실적으로 집 짓는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한국 사회에서 부정적인 컨택스트로 많이 회자되는) 시월드와 함께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주택 건축이라는 큰 미션은 설정하였으나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디테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난 내가 지금까지 거주해왔던 아파트 내의 인테리어 하나도 제대로 바꾸어본 적이 없다. 결혼하기 이전에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크지도 않았거니와 집 디자인 관련 권한이 오롯이 부모님에게 있다는 핑계로 크게 나서 본 적이 없다. 아 내 방의 가구를 들이거나 이불을 바꿀 때 내 의사를 표현하는 정도?
결혼한 이후에 거주하는 아파트 역시 내 자가 소유가 아니다보니 가구/소품 등을 소소하게 선정해본 적은 있지만 그 마저도 취향이 명확하게 세워져있지 않다보니 고통스럽게 아이템을 구매하였던 기억이 있다. 리모델링, 셀프인테리어 등은 시도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벼락치기로 이리저리 여러 미디어와 인스타그램을 기웃거려보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또 트렌드나 유행에 맞춰 제품을 사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렇다보니 결과적으로 취향이 확고한 편에 속하는 남편의 의견이 상당수 반영된 가구를 구매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하긴 누구를 탓하겠는가. 취향이 생기려면 꽤 오랜 시간과 관심(과 가능하다면 돈=쇼핑...!)을 들여 쌓아온 것이 있어야 하는데. 하다못해 옷 스타일만 생각해도 20대 초반 수많은 쇼핑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내 스타일이 생기지 않았는가. 내 스타일을 찾기 위해 사들였던_그리고 거의 입지 않고 쓰레기통으로 간_옷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좀 쓰리지만... 그런 의미에서 인테리어 관련 나의 시야도 (여전히 얄팍하지만) 혼수를 준비하면서 조금씩 기틀이 잡힌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하다. 가구 아이템 하나하나 고르는 것은 그래도 나의 전반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취향이 조금씩 반영된 것 같은데 한 데 모아 조화롭게 구성하는 능력은 별개였다. 이미 틀이 다 짜여있는 아파트에서도 이러한데 건축 자재부터에서 모든 것을 다 내가 일일이 골라야 하는데...!!!!
그래서 앞으로는 집, 공간 관련 세부 내역 및 나의 취향들을 찬찬히 정의해나가보기로 했다. 집 짓기 미션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내가 머무르는 공간에 대해 생각한다면, 최종적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역시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아래와 같은 작업들을 해 나가기로 했다.
내가 정의하는 집은 어떠한 공간인지
나는 어떠한 공간에서 살기를 원하는지 : 도심 속 단독주택, 타운하우스, 전원주택 등
내가 건축할 집에서 어떤 구성원들과 어떻게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소설 써보기. 레퍼런스 이미지들을을 찾을 때마다 스크랩해두기
자신이 원하는 집을 직접 지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책, 유투브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인테리어 소품을 특정한 책을 읽고 작은 소품을 하나 바꿔보는 시도를 해보기
그러나 나의 취향만 고려할 수는 없다. 함께 거주할 남편, 그리고 시부모님의 의견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그래서 주거 관련 여러 상황에 대해 (살아보기 전에는 모른다고 하지만) 같이 살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각자 어떤 공간을 꿈꾸는지, 그 사이에 현실적인 제약은 없는지 혹은 서로의 니즈 사이에 충돌은 없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허심탄회... 하게 이야기하자고 모두 말하지만 며느리의 위치상 있는 그대로 직설적으로 내뱉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어쩌하겠는가, 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우리 집' 안에 '내 집'은 없는 것을.
앞으로의 브런치를 통해 나의 취향을 탐색하면서 이리저리 드는 생각들과 더불어 집 짓기 실전까지 일련의 과정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지만 한 편으로는 머릿 속이 복잡해진다. 현실적인 부분에 있어 (1) 금전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2) 두 가족 간의 삶의 조율도 같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다 중간에 내 집, 아니 '우리 집' 짓기 프로젝트가 취소될 수도 있으려나... 그래도 일단 한 번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