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해냈듯이, 나도 잘해볼게.
신혼 초, 생각지도 않게 찾아온 임신 소식은 그 자체로 축복이었다. 하지만 두 번의 유산을 겪고 난 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처럼, 처음의 설렘은 깊은 상실감으로 바뀌었고 그 기억은 내 마음을 오랫동안 붙잡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기대하지 않으려, 스스로를 단단히 감쌌다.
그러던 어느 날, 임신 테스트기에서 선명한 두 줄이 나타났다. 임신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이전의 경험들이 내 기쁨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며칠 뒤, 심장소리를 확인했을 때 비로소 마음 한편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그 무렵 가족 일정으로 친정집을 찾았고, 식탁에서 나는 조심스레 엄마에게 테스트기를 내밀었다.
“너 코로나 걸렸어?” 엄마는 그렇게 물어보셨다.
“아니, 엄마. 나 임신이야. 그것도 쌍둥이야.”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엄마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셨다. 그 얼굴 위로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가족들이 “고생 많았어”라며 나를 안아주었지만 엄마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늘 딸 걱정이 앞서는 사람이다. 장애인인 딸을 키워온 세월이 얼마나 험난했을지, 나는 다 알 수 없지만 그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엄마는 생각하셨을 것이다. ‘내 딸이 아이들을 잘 키워낼 수 있을까.’
결혼 후 낯선 도시로 이사 와서 양가의 도움 없이 쌍둥이를 키워야 하는 내 처지가 엄마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을까.
그날 이후, 엄마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으셨다.
“내 딸이 힘들지 않게 건강하게만 태어나게 해 주세요.”
건강하게 손주들을 보고 싶은 마음, 그리고 혹시라도 아이들이 장애를 갖게 되어 내가 다시 힘든 길을 걷게 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 그 모든 감정이 엄마의 짧은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엄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엄마도 청각장애인 딸을 키우는 건 처음이었잖아.
그럼에도 늘 강하고 따뜻하게 나를 지켜준 엄마,
정말 고마워. 엄마가 해냈듯이, 나도 잘해볼게.”
막연한 불안과 기대가 공존하던 그 초여름, 엄마의 마음을 느끼며 나도 조금씩 ‘엄마’가 될 준비를 해나갔다. 엄마의 걱정을 보며 다짐했다.
이 아이들을, 내가 지켜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