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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통 Dec 14. 2020

'평범'의 가치란?

공식적인 공부와 비공식적인 공부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는   하는  하지만  볼일이 없고 성과가 없었던 이야기를 적고자 한다. 열심히 한다는  주관적인 평가이기에, 내가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다 해도, 누군가에게는 전혀 노력을  기울인 듯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성과가  나온  수도 있다.   역시, 누군가는  성과가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한 ‘성과 누구나 ‘우와!’ 할만한, 어디 가서 당당히 내놓고 이야기할  있고,  이야기가 소위 말하는 ‘성공의 지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평범하게 삶을 살아갈 따름이다. 그런 평범함이 눈에 부신 그런 ‘성과들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평범 소중하고 가치 있을  있다는 점을 누군가는 공감하며 위로받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나의 ‘평범 일들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공부 – 내가 어렸을 때는 초등학교 때 전과목 필기시험을 봤었다. 도덕, 미술, 체육 등

아직도 기억나는 문제는 도덕 시간의 일화와 관련된 문제였다. 공서방과 어느 서방(성이 기억나지 않는다) 은 둘이 친구인데, 둘 중 누군가가 나라분들과 약속을 하여 어딘가에 다녀오게 된다. 나머지 친구는 그 친구와 약속을 보장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는 스토리다. 결국 친구는 약속 시간에 돌아오게 되고, 친구의 목숨을 구한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내가 풀었던 문제는 외국에 다녀온 게 공서방인지 아닌지 쓰는 거였다. 나는 어느 서방인지 헷갈려서 그 관련 네 문제를 다 틀렸다. 또 조각칼의 용도와 관련된 문제도 있었는데 납작 칼인지, 둥근 칼인지 세모 칼인지 헷갈려서 그것도 다 틀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다른 과목에서 월등하게 잘했던 것 같지는 않다. 국어, 수학에서도 몇 문제씩 틀렸던 것 같다. 결국 난 전과목에서 11개의 문제를 틀렸고, 엄마한테 엄청 혼이 났다. 그러나, 나는 도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공부해야 할지 몰랐다. 공서방인지 아닌지 그런 것 까지 외워야 하는지도 몰랐고, 조각칼이야 그냥 되는대로 쓰면 되는 거지 그거의 규격에 따라 세모 칼로 조각하다가 ‘앗불싸! 지금 나는 둥근 칼을 써야 하는데! 이런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군! 고무판화를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겠다.’라고 하지는 않을 테다. 아무튼 나는 열심히 나눗셈도 배우고 곱셈도 배우고 했지만, 결국 시험 결과는 처참했다.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방향도 잃어버렸던 나는 어영부영 중학교에 입학했다.


무엇을 공부해야 하고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몰랐던 건 중학교 때도 이어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공부에 딱히 흥미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단어도 외우고, 수학 문제도 열심히 풀었다. 희한하게 과학시험을 딱 한 번 잘 봐서 90점이 넘었다.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90점이 넘은 학생이었다. 그때는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끝나면 담임선생님이 전학생의 전 성적표를 교실 뒤 게시판에 게시하셨다. 나는 예체능에서 90점이 넘지 않아서 평균 90점이 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다른 과목에서도 예체능의 부족함을 뒤집을만한 성적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학교 3년 내내 평균 90점 이상인 학생들에게 주는 우등상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시험기간에 펑펑 논 것도 아니다. 수업시간에 열심히 필기도 하고, 집에 오면 책상에 앉아서 수업 내용을 정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벽까지 공부한 적도 없고, 그날그날 공부 목표를 설정하고 ‘오늘의 목표를 다 마칠 때까지 잠을 자지 말아야지’라고 외친 적도 없다. 

먼가 공부를 할까 하면 다른 무언가 들이 생각났고, 다른 무언가 들에 정신이 팔려 오늘의 공부 목표는 늘 까먹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매일매일 공부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고,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갈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느꼈던 다른 일들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는다. 물론 조금 후회가 될 수도 있다. 그 당시 내가 주로 몰두했던 다른 무언가 들은 1920,30년대 한국 소설을 읽는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쓸데없이 치기 어린 마음에 방 벽에 ‘죽은 시인의 사회’ 대사들을 영어로 적어놓은 것들이었다. 혹은 친구의 연애편지를 대필해줬다거나 기타 등등


그렇게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는 더 나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전교 1등부터 30등까지 명단이 중앙현관에 게시되었다. 그 명단에 게시된 아이들은 최고급 시설이 갖춰진 학교 내 독서실에서 공부할 특권이 부여되었다. 난 여러 번 그 명단에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그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다음 시험에서는 명단에서 제외되어 다시 우리 반 교실에서 자율학습을 하고 왔다 갔다 했다. 그러나 이런 야간 자율학습이 무슨 의미가 나한테 있으랴. 난 그 당시 나온 문학 계간지를 사다 자율학습시간에 읽었다. 혹은 영화 잡지를 읽거나, 혹은 가끔 수능 모의고사 문제집을 풀거나 혹은 몰래 땡땡이치고 딴 데 갔다가 다음날 담임 선생님께 혼나고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경이로웠던 건 특별 독서실에서 봤던 진짜 열심히 눈을 반짝거리며 공부에 몰두하던 아이들이었다. 아니 어쩜 저렇게 몇 시간을 한 눈도 팔지 않고 공부만 해대나 싶은 게 나로서는 놀랍기만 했다. 결국 그녀들은 다 의대에 진학했다.

나는 수능 전 마지막 모의고사를 매우 잘 봤다. 너무 잘 봐서 혼자 기쁨에 치어 그냥 놀았다. ‘이 정도면 되었다!’ 하는 심정 있던 게다. 그리고 공부에 손을 놓고 컨디션 조절이나 한답시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연습만 해댔다. 나머지 시간은 대충 빈둥거렸다.

그랬더니 수능에서는 처참히 몰살당했다. 아주 처참히.... 집안 형편상 서울에 있는 사립대 가기도 애매모호하고, 물론 내가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우수 장학금을 받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으면 모르겠다.

아무튼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아무 생각 없이 지방에 국립대에 원서를 넣었다. 그냥 친구가 기차 타고 그 지역에 있는 학교에 원서 내러 간다고 해서 따라 내려갔다가 나도 가는 김에 그 근처에 원서를 넣는다고 했다.

물론, 담임 선생님은 “너네 집 형편을 생각하면 네가 국립대 가고, 거기서 기숙사에서 지내도 나쁘지 않아.”라는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12년의 공부 결과 나는 원했던 적도 없는 대학에 다니게 되었다. 당연히 대학교 성적은 바닥을 쳤다. 그때는 술 마시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놀이였으니까!


그러다가 30대에 들어서자 다시 ‘공부’를 만회해보고 싶었다. 한 번도 잘해보지 못했던, 남들한테 공부 잘한다 소리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던 ‘공부’라는 게 다시 하고 싶어 졌다.

그렇게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들어가니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나이도 많은데 공부도 못한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열심히 했다. 이제야 공부 방법을 알 거 같았다. 공부의 즐거움도 알게 되는 것 같았다. '텀 페이퍼' 하나를 쓰기 위해 수십 개의 해외 논문, 수십 개의 국내 논문 등을 읽으며 발췌하고, 여러 가지 브레인스토밍을 거쳐 나만의 주제를 정했다. 주중에는 직장생활, 주말에는 대학원 과제에 집중하느냐 2년 동안 토요일에 잠을 자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마무리 한 대학원 생활은 내 인생 공부 역사에 있어서 가장 뿌듯한 시절이 되었다.

좋아하는 공부를 좋아하는 방법으로 한다는 게 참으로 무미건조하고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앎의 기쁨’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다.


더 이상 이제 뭘 해야 할지 몰랐고, 그렇다고 박사를 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은 듯했고(30대 초반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박사가 끝나면 내 진로가 어떻게 될지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난 불확실한 미래에 ‘공부’를 건 도박을 하기엔 너무 소심했다. 그렇게 평범했던 나의 공식적인 ‘공부’ 인생은 끝이 났다.


그렇지만, 나는 좋아하는 공부는 비공식적으로 계속하고 있다. 관심 분야에 책을 빌려 보고, 관심 분야 온라인 강의를 듣고, 관심 분야 영상들을 찾아보고, 관심 분야에 대해 고민한다. 그렇게 또 상투적인 표현 ‘앎의 즐거움’은 계속 확장되고 있다.


평범했던 나의 공식적인 ‘공부’ 인생은 현재로서는 끝인 것 같지만, ‘공부’ 자체에 기쁨을 느끼게 된 후, 나의 비공식적인 ‘공부’ 인생은 이제가 시작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학위를 내세우고, 사회적 명망을 쌓기엔 거리가 먼 비공식적인 공부들이지만, 나는 나의 지적 기쁨을 채워나가는 걸로 충만함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남들이 보면 아주 평범한 공부 인생이지만.. 나는 나만의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세상엔 배울게 참 많다.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오늘의 주제 '공부' 끝!


(표지사진) Photo by Amelie & Niklas Ohlrogg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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