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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통 Apr 04. 2021

무의식의 세계 23

'모험'은 꼭 낭만적인 것일까?

 어제인지, 오늘인지 시간이 불분명하지만 분명 신나고 재미있는 모험을 꾸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하도 재미있어서 노트에 연필로 꿈의 내용을 적은 기억이 난다. ‘아 이거 너무 재미있는데! 일어나서 이 재미있는 모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신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것도 기억난다. 

하지만, 일어나고 나니 정작 기억나는 건 아무것도 없으며 밤새도록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꿈나라에서 신나는 모험을 하고 왔다는 인상만 남았다. 

결국, 나의 꿈나라에서 느꼈던 재미있는 모험은 그저 내 심연 어딘가에 가라앉아 버렸다. 하지만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건 내 모험뿐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많은 보물섬들이 바닷속 깊은 곳으로 떠났다. 그리고 또 많은 이들은 ‘가라앉은’ 보물을 찾으러 ‘모험’을 시작하였다.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흥미롭다.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모든 것이 가능해지면 모든 것을 ‘꿈’ 꿀 수 있다. 

그래서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모험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가능함을 꿈꾸고, 후자는 아무것도 없는 백색의 세계가 흑색의 세계가 되는 순간을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흰색은 검은색이 되고, 누군가에게 검은색은 흰색이 된다. 


누구는 흰색을 채워야 할 도화지로 보고, 누군가는 흰색을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공포로 본다. 


바닷속 깊은 곳을 찾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해적 왕국의 황금시대(The lost pirate kingdom, 2021, Netflix)는 바하마에 근거지를 둔 여러 해적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미지 출처 : https://timesnewsexpress.com/


스페인과 영국의 해전 이후, 18세기 초 실제 해적으로 이름을 떨쳤던 이들에 대한 소개하는 역사 드라마이다. 실제 해적의 이야기를 알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고, 해적이 되는 각각 개인의 에피소드 등도 다채롭고 이목을 끌만한 지점이다. 

각각의 인물마다 드라마 요소를 부각해서인지 실제 문헌에 따른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각 인물들이 해적이 되는 계기는 그야말로 모든 인생의 파란만장함을 대변하여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은 이름을 떨친 해적들이고, 그야말로 솜씨가 좋은 바다의 싸움꾼들이다. 리더로서 그들의 일대기에는 흥미가 가지만, 그들이 활약했던 시대를 생각했을 때, 제국주의의 그늘에서 무법자들의 세상이 된 바닷가를 보는 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 바닷가에는 진귀 명귀한 보물들을 실은 선박들이 많이 오갔지만, 그 진귀 명귀한 보물들이 식민지 국가에서 무자비로 착취한 자원품 들일 테고, 일부는 노예무역이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진 노예선 들일 테다. 

그러니 그들이 획득한 소유물들은 그저 다른 도둑에서 또 다른 도둑으로 옮겨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러한 무법 현상이 비단 과거 제국주의에서나 볼 법한 일들만은 아니다. 이는 현재 진행형이고 아무도 이에 대해 책임지는 이는 없다. 


얼마 전, 수에즈 운하에서 침몰한 ‘에버 기븐(Ever Given)’ 호는 대만에 본사를 둔 운송회사인 에버그린 마리타임에서 운영한다. 에버그린은 일본 회사에 배를 전세로 내주었다. 두바이에 본사를 둔 회사가 항구에서 선박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  배는 ‘파나마의 국기’를 달고 다닌다. 대다수의 선원들은 중국이나 인도인 들일 테다.  

‘파나마 국기’는 선박의 소유, 운영 등의 법규를 따르지 않는 편리함의 깃발이다. 느슨한 노동 규정, 운영 등 그 어떤 것에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https://www.washingtonpost.com/politics/2021/03/26/big-ships-were-created-avoid-relying-suez-canal-ironically-big-ship-is-now-blocking-it/


별 다른 규정과 제재 없이 이런 ‘초국적’ 기업들은 바다를 떠돌고 있다. 

이렇게 바다는 무법자들의 손쉬운 통행로가 되고, 누군가는 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일들’에 대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그 누군가는 꼭 사람이 아니어도 말이다.


누군가의 짜릿한 ‘모험’이나 ‘영웅담’이 누군가에겐 핍박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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