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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일공공 Dec 13. 2022

13년 만의 글쓰기



글을 쓰기 위에 컴퓨터를 켠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만삭의 몸으로 밤을 새우며 기사 마감을 하던 것이 벌써 수년 전이다. 마지막 마감은 무슨 글을 썼는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 능력의 끝이 보였고, 그냥 빨리 쉬고만 싶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목소리로 울고 있는 갓난아이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이 자그마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했지만, 나를 더 힘들게 한 건 외딴섬 같은 집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살림과 육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참 재수 없지만) ‘나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마감에 찌들었던 생활은 다 지워버리고 멀어진 과거를 화려하게 ‘포샵’한 채 감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의 작업을 보고,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고, 그것에 대해 글을 써내는 사람이고 그것이 나의 진짜 정체성이라는 망상과 더불어.


그 망상은 우리나라 GDP에도 집계되지 않는 내 고독한 노동력에 대한 한탄으로 이어졌다가, 동료들과의 점심 후 20여 분간의 수다 시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끝나곤 했다.


예고 없이  급습하는 다양한 잡생각들 - 이를테면, 내가 쓰고 싶은 책 제목, 예전에 인터뷰했던 작가의 새로운 작업, 새 프로그램이나 기사에서 보게 된 옛 선배, 동료의 안부, 이번 주에 내면 좋을 만한 특집기사 아이템 등 - 속에서 나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은 그냥 싹을 잘라내는 것뿐이었다.


나는 아주 고립된 섬에 있었기에, 억지로 외면하면 내가 있던 곳은 나와 무관한, 실재하지 않는 곳처럼 여길 수도 있었다.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할 때 즈음 엄마들과의 커뮤니티에 적응하면서부터 나는 그 세상을 향한 미련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결혼하면서 살게 된 낯선 동네였지만, 이제 슈퍼나 놀이터에 가면 아는 사람 한 두 명 정도는 항상 마주치게 될 정도의 동네 아줌마가 된 것이다.

그때의 나는 ‘이 정도면 평범한 아기 엄마’라고 세뇌하며, 스스로 그런 역할을 연기하듯 지내다가, 이내 그것을 현실로 만들었다. 동시에 회피와 외면, 포기와 좌절 사이에서 ‘스스로 내려놓음’이라는 틈새를 발견했다.


아줌마가 되어 자비 없이 할퀴어진 상처들을 내 손으로 다듬고 나니 비로소 얻은 자유였다.  


자유는 나를 멀리서 바라보게 한다. 고통의 핵 안에서는 내 주변으로 부는 광풍만 보였지만, 항공 샷으로 바라본 나는 현재가 과거의 또 다른 나의 모습의 거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각자 자신의 주력 분야에 대한 학문적 깊이와 전문가적 식견, 깊이 있는 시각, 빠른 정보력을 가진 동료들에 비해 나의 그것은 얄팍하고 조잡한 지식에 불과했다.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마감 끝나면 마감, 그때그때 보도자료와 검색으로 그저 쳐내기에 바빴다.


글 자체도 문제였다. 마감을 그렇게나 빨리 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과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동기의 특집기사, 글 참 잘 쓴다며 편집장님께 칭찬받던 후배의 글, 언어의 연금술사 같던 선배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작품’ 속에서 내 자리는 점차 위축되지 않았던가. 내 글의 초라함을 매번 목격하며, 그것이 오롯이 내 빈곤한 능력치 같아서 괴로웠다.


그렇다. 때가 되어 ‘멈춰진’ 거다. 내 동력이 딱 그만큼이구나.   



 

나는 그래서 쓰지 않게 되었다. 기사 ’깜’인지 아닌지 판단할 때, 최소한 종이 낭비는 하지 말자던 한 선배의 말처럼 종이에게 미안할 정도의 글을 쓰면 안 된다. 나는 그동안 내 능력치에 비해 너무 많이 썼고, 내 연료는 바닥난 것이 맞았다.


다시 무엇인가를 쓰려면 채워야 한다. 쓰는 사람은 내 안에 하고 싶은 말이 넘쳐나는 사람. 비바람과 햇빛을 받고 여물고 무르익으면, 나도 무엇인가 쓸 수 있을 것이다.

전쟁으로 여러 나라를 떠돌면서도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썼던 동화작가 유리 슐레비츠처럼, 전업주부로 살다가 마흔에 등단한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처럼.  


지금을 열심히 살자. 기다리지는 않아도 언젠가는 하고 싶은 말이 차고 넘쳐서 쓸 수 있게 될 거다.

단어의 의미가 하나하나 내 삶의 경험과 생각으로 채워질 때 그때는 무엇인가를 쓸 수 있을 거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사진제공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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