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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물과 불 중에 어느 것인가?"

[경주X도자기 02]

by Harry Yang

흙, 물, 불

와인의 특성과 품질을 결정하는 것으로 흔히 세 가지를 꼽는다. 토양 혹은 토질을 말하는 떼루아(terroir), 포도의 품종, 그리고 날씨다. 전세계 어느 곳이든 고급 와인은 예외없이 이 세 가지의 조합이 최적으로 맞아들어가야 나올 수 있다. 이를 동아시아 방식으로 말하자면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로 와인이 나온다는 정도로 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려는 장인들이 이 세 가지 요소의 조화에 쏟는 열정과 연구는 상상을 초월한다. 청자 생산에도 마찬가지로 세 가지 요소가 핵심이다. 태토(胎土)라고 부르는 흙, 그릇에 바르는 물인 유약(釉藥), 그리고 그릇을 구워내는 가마의 불이 관건이다.


우리가 흔히 토기(土器)라고 부르는 것은 점토를 태토로 쓰고, 유약은 바르지 않고, 비교적 저온에서 굽는 경우를 말한다. 토기는 소성온도에 따라 구분되는데 600℃∼700℃에서 소성되는 와질토기와 700℃∼900℃에서 소성되는 연질토기, 1,000℃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진 경질토기로 나뉜다. 각 온도가 태토의 성분이 화학적으로 변성되는 구간이다. 거친 점토를 태토로 써서 700-850℃ 온도로 구워낸 토기가 빗살무늬 토기 등 연질토기(軟質土器)라 불리는 것들이다. 유약을 바르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액체를 저장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곡식을 담아두거나, 취사나 제사용 기물로 많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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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박물관의 수장고에 가보면 엄청난 양의 도자기들을 시대별로 볼 수 있다. 상당히 딴딴하게 잘 구워진 이 토기들은 이후의 회유토기와 녹유토기 시대를 충실히 예비하고 있다.

연질토기보다 더 내구성이 있는 그릇을 구우려면, 태토로 고온에 견딜 수 있는 점토를 구해야 하고, 표면에 유약을 발라서 유리질을 형성하도록 하는 등의 제약 사항이 많아진다. 그리고, 1,100℃ 이상의 온도를 내려면 기존의 평평한 가마로는 안된다. 가마는 이제 언덕에 비스듬하게 만들어서 불길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산소의 유입을 적절하게 차단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이 단계에서부터는 그릇을 만드는데 있어서 태토의 성분, 유약의 종류, 가마와 불의 통제가 매우 중요해진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토기나 도기가 아니라, 자기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도자기라고 할 때, 도기와 자기는 태토의 성분, 유약의 사용 여부, 가마의 온도 등에서 갈라진다. 물론 이런 경계선 상에 있는 그릇들이 있다. 경질토기 기술은 도기와 자기 양쪽을 넘나드는 측면이 있다.


1,100℃ 이상의 고온에 구워낸 토기는 경질토기(硬質土器) = 도질토기(陶質土器)로 불리는데, 이 정도의 온도가 되면 태토 내의 산화알루미늄이나 규산이 녹아나오면서 결정화가 이루어져 강도도 높아지고, 액체의 보관도 가능해진다. 그리고 가마에서 재가 날아가 그릇 위에 쌓였다가 고온에 녹아서 자연스럽게 유약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후에 쓰이게 되는 유약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를 녹인 물, 즉 잿물(회유, 灰釉) 유약이다. 양잿물을 발라 구워내는 토기를 회유토기(灰釉土器)라고 부르는데, 본격적으로 유약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그릇의 품질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유약이 사용되면서 특정한 색깔을 낼 수 있는 성분을 유약에 넣어서 바르고, 이 유약이 녹는 온도에서 굽고, 꺼내서 다른 유약을 발라서 다시 굽는 식으로 여러가지 색을 사용한 채색도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도자기 작업의 핵심

어떤 도자기를 만들 때 그 최종 결과물에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태토, 유약, 불 중에 어느 것일까? 물론 이 세가지 모두가 기본적으로 중요하고, 각각의 요소가 충분히 좋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작업을 하느냐에 따라 특정한 요소의 중요성이 더 두드러질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의 경덕진(景德鎭)은 송나라 시대 이래로 도자기 분야에서는 역사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세계적인 도자기 도시인데, 이곳은 백자를 만들 수 있는 백자토 중 최고 품질의 고령토(Kaoling) 산지이다. 중국 도자기라고 했을 때 쉽게 연상하는 초대형 청화백자들은 그 크기를 버텨낼 수 있는 양질의 고령토가 없이는 만들 수가 없다. 고온에서도 그릇의 형태와 무게를 견뎌내는 태토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도 경기도의 여주와 이천 등지가 백자를 생산하는 관요로 조선시대부터 사용된 데에는 장작으로 쓸 나무의 운반과 더불어 좋은 태토의 공급이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되었다.


도자기의 색깔을 내는 데에는 유약의 특성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특히 채색도자기가 많이 만들어지면서는 특정한 온도에서 녹고, 특정한 색깔을 발현하는 화학적 성분을 찾아서 유약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중국이나 일본의 채색도자기는 정말 다양하고 화려한 색채감을 구사한다. 이것은 유약 자체로 색을 내거나, 아니면 채색한 위에 이를 보호해주는 막을 형성해주는 유약을 사용하는 등의 여러가지 방식으로 활용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불 혹은 가마의 역할은 비교적 단순해 보인다. 특정한 온도을 유지하며 그릇을 굽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니, 현대로 오게 되면 과거의 진흙가마에 장작을 때는 방식보다는 가스나 전기를 이용해서 더욱 정밀한 콘트롤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청자 재현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청자의 그 유명한 비색은 어떻게 구현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처음에는 태토라고 생각했다. 소위 특정한 청자토를 찾아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국내에서는 전남 강진이 비색청자로, 전북 부안이 상감청자의 생산지로 유명한 것은 태토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청자토라고 할 때, 그 성분으로 철이나 다른 광물 요소가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런 성분은 엄청나게 희귀한 요소가 아니다. 해겸선생은 태토가 중요하지만, 청자 재현을 가름하는 결정적 요소는 아니라고 말한다. '비장의 청자토' 같은 것은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 유약일까? 유약도 중요하다. 그러나, 비색 재현이 특정한 유약 성분 탓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현대 청자 작업에 종종 유약에 청색을 발현하는 요소를 섞어서 유약의 색으로 비색을 만들어 보려던 시도가 있었으나,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작품 전체에 인위적으로 발색 성분을 넣는 방식으로는 고려청자에서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탁월한 색과 완성도를 만들어 주지 못했다.


해겸 선생은 '불'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도자기를 굽는 과정에서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산화 불'과 '환원 불'이다. 가마에 불을 때는 과정에서 산소의 유입을 허용한채로 작업하면 태오의 철(Fe) 성분이 산소(O)와 결합해서 색이나 특징을 드러낸다. 철 성분은 산소와 만나서 산화되면 붉은 색을 띈다. 이런 방식으로 작업해서 나오는 것이 '철화백자' 같이 붉은 색을 발현하는 작품들이다. 가마에 산소 유입을 차단하고, 고온의 불을 지속하면 도자기의 태토나 유약에서 철분과 결합해 있던 산소를 뺏어오면서 환원작용을 촉발하게 되는데, 이를 활용한 도자기가 푸른 색을 발현하는 '청화백자' 류의 작품이다. 즉, 도자기의 푸른 색을 유약의 색깔로 내는 것이 아니라, 환원불로 도자기를 구워내면서 태토와 유약의 철 성분이 푸른색으로 발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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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겸도요는 국보급 작품의 재현을 많이 하고 있어서 그 성취도를 원본과 쉽게 비교 해볼 수 있다. 청자불로 구워낸 다른 도자기들도 고른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이야기가 별로 대단한 발견이 아닌 것 같지만, 해겸선생은 수십 년의 시행착오를 통해 손에 익힌 것이고, 이제는 그런 방식으로 고려의 청자가 비색을 만들어 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는 2013년 KBS1 TV의 <다큐 공감> "마지막 불꾼, 청자를 꿈꾸다"에서 이미 그간의 작업을 소상히 설명한 바 있다. 불 기술에서 차별성을 만들어낸다는 착안점. 그리고 그 결과로 매우 높은 수준으로 고려 청자의 비색을 재현하는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세부적인 불의 통제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최종 결과물에 어떤 특성이 드러나기를 원하면 어느 과정에서 어떻게 조절을 해야 하는지가 훨씬 섬세하게 구현된다고 한다. 과거에도 좋은 작품은 종종 나왔지만, 정확히 어떤 요소를 통제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결과를 기다리곤 했다는데, 지금은 매년 가마불을 올리면 일정하게 예상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내어놓는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물론 현대 과학 지식의 세례를 받은 세대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전기나 가스 가마가 온도를 통제하는 데에 더 유리하고, 가마 안의 조건을 더 원하는대로 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진흙을 바른 고대의 통가마가 더 낫다는 말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먼 훗날에 가마 내부의 산소 농도, 온도 분포, 불과 열기의 흐름 등을 다 데이터로 확보할 수 있다면 더 정밀한 재현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재 해겸 선생은 흙가마에서 최고 수준의 불을 통제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 결과물에서 뚜렷한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3주간 장작불을 땐다는 것은 대단한 노동의 투입이다. 그는 더 길게 혹은 짧게 장작불을 넣어보며 오랜 시간의 실험을 통해 21일이 최적의 시간이란 경험치를 얻었다고 했다. 한번 작업에 들어가는 장작의 양만 해도 엄청나다. 옛날에는 산 아래에 가마를 만들어서 산 하나의 나무를 다 때면 가마를 다음 산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과거의 가마터들을 찾아내면 인근 산에 여러 가마터들이 흩어져 있는 것은 그런 이유라고 한다. 이런 방식의 작업을 기본값으로 장착하고 있는 해겸 선생의 작품들은 어떤 도자기든 정한 온도로 2-3일 정도 구우면 그 다음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와는 적지 않은 차이를 만들지 않을까?


과연 해겸선생의 생각은 과도한 자기만족일 뿐일까? 아니면, 그 결과물에서 분명한 차이를 발생하는 비법인 것일까? 우리의 청자 감식안이 어느 수준이냐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해겸도요는 청자 재현 작업을 주로 하지만, 한번 가마에 불을 넣을 때 토기, 다완, 분청사기, 백자도 같이 굽는다. 각 작품은 가마 안의 위치에 따라 어떤 불을 만나는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품질이 매우 뛰어나다. 청자와 같이 넣고 작업을 하다보니 다른 가마에서 굽는 것보다 훨씬 고도의 불에 더 오랜 시간을 소성하는 것이라서 도자기의 최종 품질이 상향 평준화되었다고 할까? 청자 불을 다뤄낼 수 있다면, 백자든 분청이든 다른 도자기들도 눈에 보이는 차이를 만들어 낸다. 해겸도요의 전시실에 온갖 종류의 도자기들이 저마다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내며 진열되어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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