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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아누 Nov 25. 2020

내 기회의 땅, 고마바


오늘은 문득 고마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 기회의 땅이 되어주었던 곳.


결혼 후 일본어 히라가나만 겨우 익히고 나는 남편의 유학길을 함께 했다. 침 용감하기도 하지. 무슨 용기로 일본어도 모르고 남편 유학길을 쫒아갔을까? 그렇게 나의 일본에서의 첫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철부지에 가까웠던 나는 아무것도 없던 유학생 남편과 아무 생가없이 결혼했다. 그 때는 내 앞에 닥칠 일을 몰랐으니 가능했겠지. 그냥 결혼하면 다 살아가는 줄 알았다. 현실감각 제로.


남편은 기세좋게 말했지. 가면 "로터리 장학금이 될 것이고, 집에서도 보조해주고 하면 우리 사는 것은 문제없어" 나는 그 말을 그냥 의심 한 번 하지않고 덜컥 믿었다. 남편이 미리 구해놓은 일본집에 들어가서 짐을 풀자마자 편지를 든 남편의 찌그러진 얼굴, "왜 그러는데?" "어. 로터리 장학금이 안된 듯 해" 


초난감이었다. 유학생으로 기본 생활비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장학금이었는데.  "그럼 어떡하지? " 지금 생각해보면 참 생각없는 아내였을거다. 남편은 우선 나에게 일본어을 배우라고 했다. 아마 급하면 내가 일을 하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지하철을 타고 도쿄대 학생들을 저렴한 비용으로 가르쳐주는 와타나베교습소에 가서  매일 일본어를 배우게 된다.



남편은 학교를 가고 나는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매일 지하철을 1시간씩 타며 다니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혼자서 터덜터덜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남편이 전철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어, 왜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 표정이 심상치않았다. "놀라지마. 나 문부성 장학금되었어." 나는 내 일생에 그렇게 소리를 크게 지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너무 좋아서 일본사람들 의식도 안하고 남편과 나는 얼싸안고 난리를 쳤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 뭉클해진다.

그렇게 고마바역앞은 내 일생에 지울 수 없는 드라마같은 곳이었다. 내 삶에서 지울 수 없는 곳. 그렇게 옆에 사람 눈치 안보고 신나게 기뻐했던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그 고마바에서의 환호와 함께 유학생활을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남편의 안식년으로 또 일본을 온다. 2019년 일본 고마바롯찌(기숙사)애서 둘이 살게 된 것이다. 아이들 학교로 부부만 와서 살게 되었고, 난 그 좁은 고마바롯찌에서 내 지금의 업을 얻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나 심심한데 일본에서 뭐하지? " 엄마, 글 잘쓰니까 일본 이야기 블로그에 써봐"


그렇게 나는 한국에서 놀러온 친구들과 2박3일 여행을 떠난 남편이 없는 사이에 그 좁은 인터내셔널롯찌에서 생애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다. 블로그의 '블'자도 모르는 내가 3일을 꼬박 밥도 안먹고 3일내내 블로그를 개설하고 공부하고, 그렇게 내 블로그를 만든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전에 글쓰는 일도 했고, 작가도 했고, 잡지 기획 일을 했었다. 그럼에도 처음으로 내 플랫폼을 만들어 내 글을 쓴다는 그 흥분은 쉽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남은 3개월을 아침에 매일 나가서 도쿄를 탐방하고 저녁에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여행 블로거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름 내 글을 읽어주는 팬들도 있어서 아주 신나게 세 달을 보낸 것 같다. 하물며 일본여행프리패스 일주일권을 끊어 남편과 여행을 하고 남은 3일간의 기간을 혼자서 왕복 4시간 되는 아타미, 6시간 니가타를 혼자 여행하고 저녁에 와서 블로그에 글쓰고 또 새벽에 신간센타고 두시간 거리되는 도시를 당일치기 여행을 해가며  그렇게 3일을 보내기도 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싶은 욕심에. 혼자서 타지에서 자는 것은 비용도 그랬고, 무섭기도 했으니까. 지금 그 글을 보면 조금 유치하지만 그때는 나름 열심히 쓴 것이었다. 그렇게 고마바에서 시작한 블로그가 지금은 방향은 다르지만 나의 업이 되고 있다. 


고마바는 그래서 나에게 색다른 기억으로 남는 곳이다.

60년대 모습이 남겨진 고마바 역, 아직도 기차가 지나가는 횡단보도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고마바는 유학생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나에게도 변함없는 기회의 땅으로 남는다. 


코로나로 가볼 수 없는, 고바마가 오늘은 갑자기 그립다.

기찻길 횡단보도 소리가 귀에 울리고 

그 날의 감격이 또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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