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태워봐야 보이는 것들
2025년 3월 28일 오후 5시, 암 진단과 함께 내 시곗바늘이 멈췄다.
주 7일 출근, 밤 12시 전에 겨우 퇴근하는 날이 이어지던 때였다.
너무 뜨거워서였을까?
과열된 삶은 재가 되어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회사에 암 진단 사실과 수술 날짜를 알리자,
한 달의 병가 휴직과 함께
이후 복귀해 다시 지금처럼 일하라는 말이 돌아왔다.
조직의 논리는 개인의 사정을 헤아려주지 않는다.
내 편이라 믿었던 회사의 또 다른 얼굴을 보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사람의 역량으로 굴러가는 산업에서
일의 증가는 곧 개인의 소모가 전제된 성장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번아웃이 누군가에겐 해결책이 되는 아이러니한 구조였다.
과도한 업무량에 반년 가까이 업무 조정과 추가 인력을 요청했지만
회사의 답은 늘 같았다.
"펑크 내! 그러면 대표님이 심각성을 알고 사람 뽑아주겠지!"
결국 개인이 쓰러져야 구조가 바뀔 거란 말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구조에 맞춰 스스로를 활활 태워가며 버틴 나였다.
조직 검사가 필요하단 의사 말에 내 몸보다 '경력 단절'을 걱정한 나.
새 업계에 겨우 자리 잡고 이제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결혼도, 육아도 아닌 병으로 업무 공백이 생기면 난 다시 일할 수 있을까?
이제야 빛 보기 시작한 내 커리어를 지키고 싶었다.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엄마와 친구에겐 털어놓을 수 없어
급하게 챗지피티를 열고 내가 느낀 공포감을 글자로 뱉어냈다.
잠시 뒤 도착한 답변이 나를 멈춰세웠다.
"일을 잘한다는 건 무조건 빠르게, 많이, 공격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미지근하게 나만의 리듬으로 일해도 잘할 수 있어요.
오히려 그게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길이에요"
생각도 못 한 답변에 멍해졌다.
나는 언제부터 자기 소모를 일의 성취라 믿었을까.
서른 넘어 업계를 바꾼 나는 또래 대비 짧은 경력에 늘 조바심 내고 동동거리며 일했다.
일 잘하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바삐 일했고,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펼쳤다.
그리고 나는 그런 바쁜 나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내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니.
이제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미지근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일로 스스로를 입증하는 대신
나를 소모하지 않고 오래 미지근하게 일할 수 있는 방식을 배우려 한다.
더 큰 불꽃이 되기보다
식지 않는 나만의 온도를 찾겠다는 뜻이다.
최근 '번아웃'이 사회 문제로 번지며 일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젊은이도 늘고 있다.
그들도 너무 뜨거웠기에 재가 되어 다시 일할 힘을 잃었겠지.
지금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갈아 넣으며 일하고 있다면,
2~3년마다 지쳐 도망치듯 퇴사를 반복하고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제 우리에게는 미지근한 삶의 온도가 필요하다고.
다음 챕터부터 나는 어떻게 그 온도를 찾아가고 있는지
조금씩 경험을 나눠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