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모양
이러나저러나 시간은 흘러간다. 2019년이 그랬듯, 2020년이 그랬듯, 이번 2021년도 같은 빠르기로 흘러 어느새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그저 연속된 시간의 흐름에 연도라는, 또 날짜라는 의미를 붙인 것뿐이지만, 그 의미에 모든 것을 쏟고 웃으며 아쉬워하며 살아가게 된다.
2021년의 첫 아침, 나는 무슨 다짐을 하고 한 해를 보내고자 기대했을까. 그날이 어느새 몇 년 전이라도 된 것 마냥 아득하게 느껴진다. 아마 머릿속에는 새로운 학교에 대한 생각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 날에도, 새해를 맞이한 바로 며칠 뒤에도 학교를 만들고 개교하고 굴러가게 하는 것들과 관련된 회의를 했던 기록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나는 평소에 의미 없어 보이는 사진들을 많이 찍는다. 신호등 빨간 불에 멈춰 선 채 마주하는 하늘 풍경이라던지, 걸어가던 길 옆에 있는 이름 모를 풀과 자갈이라던지, 어딘지 기억나지 않는 한 카페의 작은 소품이라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휴대폰 용량만 차지하게 쓸데없는 사진을 왜 이리 찍냐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한 해를 돌아보기에 이보다 좋은 수단은 없는 것 같다.
오늘은 한 해를 보낸 뒤 남겨진 나의 의미 없어 보이지만 값진 사진들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아마 새해 첫눈이 아니었을까, 엄청 추웠겠지만 따뜻하게 느껴지는 사진이 남아 있었다. 눈이 오면 우선 기분이 좋아진다. 상황에 따라 눈을 치워야 하는 걱정, 눈으로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우선 설레고 이유 모를 미소를 짓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어느새 또다시 눈 내리는 계절이 돌아왔다니 계절과 시간은 꽤나 정직하지 않나 싶다.
대부분의 직업들은 달력과 업무의 끝맺음을 같이 할 것이다. 새 달력으로 새로운 한 해를 개시하고, 헌 달력을 돌아보며 한 해의 업무를 정리하고 새로운 나아감을 위한 다짐을 할 것이다. 교사는 그런 점에서는 많이 다른 것 같다. 교사들은 2021년을 살지 않는다. 2021학년도를 산다. 3월이 되어서야 드디어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한다는 체감을 할 수 있게 된다. 나도 모두 마스크를 낀 채로 조심스럽게 모여 선 사진 한 장과 함께 지난 한 학년도를 마무리했다. 처음으로 함께 지내본 2학년 아이들과 정말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정말 많은 것들을 느꼈고, 배웠고, 다짐했다. 그저 학교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하고, 학교가 그저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칸막이에 가로막힌 답답한 공간으로 느끼고 있을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드디어 학교가 문을 열 준비를 시작했다. 텅 빈 학교에 활력을 불어넣을 학생들이 올 차례였다. 새로 문을 여는 학교인 만큼 모든 학년, 모든 학생들이 전학을 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서류를 받고, 확인하고, 점검하고, 등록하는 그 절차를 진행했다. 서류를 받고 확인하는 선생님들도, 서류를 등록하러 온 학부모님들도, 무엇보다 우리 학교가 될 곳을 바라보는 아이들도 모두 묘한 설렘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학교는 참 산뜻하게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이 없는 곳을 좋아한다. 바쁘게 치이고 밀려가듯 흘러가는 공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연의 광활함과 고요함을 좋아하는 것은 또 아니다. 군중 속의 고독을 좋아한다는 느낌일까.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깔끔한 공간에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 게 정확한 설명일 것 같다. 그래서인가 나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느낄 때, 평창이나 정선과 같은 조용한 곳을 찾곤 한다. 평일도 주말도 구분하지 않고 매일 바쁘게 일하고 치이고 시간의 흐름을 잃어가던 그때, 3월이 끝났다. 처음으로 주말에 여유를 가져보게 된 날이다. 일도 중요하지만 쉼도 중요하다. 쉬지 않으면 일할 수 없고, 일하지 않으면 쉼에 의미가 없다. 일과 쉼, 그 사이의 간격을 찾는 한 해를 보내야지.
사람이 없는 곳을 좋아한다고 말한 나는 어울리지 않는 곳을 간 듯하다. 지난번 정선 여행으로는 쉼이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4월 한 달간 또 다른 '일'로 인해 '쉼'이 필요해졌기 때문일까. 혼자 서울로 떠났다. 그것도 유동 인구가 많은 삼성역 코엑스 바로 앞! 아이러니하게도 군중 속의 고독이 목적이라면 아주 적절한 곳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이 날의 쉼은 정말 크게 다가왔다. 조용한 쉼, 그리고 드라이브. 혼자 하는 여행에도 나름의 맛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날이다.
전라도 학교 중에는 우리 학교처럼 통합으로 학교급을 묶어 운영하고자 하는 학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들의 연구 세미나 행사에 우리 학교가 초청을 받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서 세 분의 선생님이 발표자로, 그리고 나는 지원(?) 인력으로 함께 떠나게 되었다. 주말을 껴서 가야 하는 일정이라 마냥 일 같지도, 그렇다고 여행 같지도 않은 느낌이었다. 이때부터 느끼게 된 점이 있다. 어딘가에서는 조금씩 더 잘 운영해보고자 하는, 새로운 것을 추진해보려고 하는 노력의 움직임이 항상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고, 열심히 해보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게 된 계기가 된 출장이었다. 세상을 바꾸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하나씩 바꾸어가자는 나름의 큰 꿈을 꾸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한 해를 글 하나로 돌아보고자 하는 것은 욕심이었다. 3월이 작년같이 느껴지는 그 기분이 단순히 기분 탓만은 아니었나 보다. 정말 수많은 사건과 이벤트와 업무와 쉼이 번갈아 흘러갔다. 바쁘고 정신없는 한 해였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값진 한 해였던 것 같다. 새로 다가올 내년은 어떨까. 어떤 한 해가, 아니 한 학년도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