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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우 Oct 27. 2020

어쩌면

강현우 드림

은평구 골목에 위치한 작은 카페에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날이 좋아 놀러 왔다던 작가 A 그리고 이 카페를 함께 꾸린 B와 함께 마감을 하고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정리를 끝낸 카페는 술 없이도 떠들기 좋아하는 셋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장소가 돼주었다. 밤은 소리를 재운다. 자동차, 새, 강아지, 사람들. 해가 떠있던 내내 들리던 소리는 밤이 덮어준 이불속에서 잠이 들었는지 고요만이 남았다. 


"사랑한다는 것과 좋아한다는 것의 차이가 뭐예요?" 


'연애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요.'를 온종일 이야기하던 A가 질문을 던졌다.

잠시 생각하던 B가 조심스럽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랑은 희생이 따르는 거 아닐까요."


희생. 그 대답을 이후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와 어쩌면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고민하며 엎치락뒤치락할 것들에 대해 얘기했다. 정답 없는 주제는 이따금 밤과 잘 어우러져 깊은 시간을 만들어준다. 오늘의 밤은 깊고 고요했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간단하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복잡해지는 사랑에 대한 생각은 모서리만으로 중심을 잡아 유리컵을 세워보려 애쓸 때처럼 설듯 하다가도 종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생각을 함부로 꺼낸 날은 밤을 뒤척인다. 밤이 길어지는 걸 원치 않아 대답을 삼켰다. 삼킨 말들이 머릿속을 헤엄쳤다. 집에 가는 길에는 좋아함을, 어두운 자취방을 밝히며 사랑을, 강변을 달리는 내내 좋아함을, 하루를 씻어버리는데 다시 사랑을. 이퀄라이징을 하며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프리다이버처럼 머릿속을 헤엄치던 생각은 목을 타고 가슴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고 숨이 찰 때까지 사랑을 생각하다 수면 위로 오르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편안하게 오를 수 있는 언덕을 걷다가 만난 낮은 풍경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종아리가 아리고 땀이 허리춤까지 젖어 내릴 정도로 오른 정상에서 바라본 하늘이 사랑일까.

창 너머로 잘 익은 감나무를 보며 가을이 가고 있음을 짐작하는 게 좋아하는 것이라면 찬 바람을 몸소 받으며 네게 줄 감 하나를 따기 위해 까치발을 들다 문득 겨울이 오고 있다 생각하는 게 사랑은 아닐까.

우연히 걷던 골목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발걸음이 가벼이 털어주는 게 좋아하는 것이라면 우연히라도 들려오지 말았으면 했던 노래에 잠시 멈춰 섰다가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 다시 걸음을 떼야하는 게 사랑은 아닐까.

발목까지 차오르는 물가에 서서 바라보는 하늘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갑자기 깊어진 수심에 머리까지 잠겨버리는 순간 수면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너무나도 황홀해 폐에 차오르는 물은 뒤로 한채 넋부터 잃어버리는 게 사랑은 아닐까.

얽히고설켜 하나의 덩어리를 만든 전선 뭉치 뒤로 빛을 내어주는 전등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엉킨 전선을 풀며 따라가다 보니 하나의 덩어리였던 전선은 결코 하나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럼에도 네 벗겨진 피복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지 않게 더 단단히 엉켜버리자 약속했던 새끼손가락 너머로 여전히 빛나는 빛이 어쩌면.

 




글. 사진 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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