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혹은 전하지 못한 고백.
이런 것만큼 애틋한 것은 아니지만 남기고 싶은 순간이 있다.
얼마 전 회사에서 시상식에 참석하라는 메일을 받았다. 큰 감흥은 없었다. 그냥 평소보다 조금 신경 써서 입고 늦지 않게 도착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시상식장에 들어서자 여러 가지 생각이 올라왔다. 머릿속 생각만큼이나 공간도 많이 북적였다. 나 말고도 상을 받는 사람들이 꽤 여럿 있었고 축하해 주러 온 사람들도 많았던 터라 자리가 부족해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상을 받으려니 어색해서 그런지 몸개그를 시전 하는 분들도 있었다. 생각과 행동이 다를 때 보이는 어색한 표정과 로봇처럼 뚝딱거리는 몸짓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대표님이 회사에 오신 지 3년째인데 가까이서 실물을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표님은 코로나로 재택 하던 시절에 우리 회사로 오셨고, 그 시기에 나는 다른 회사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있던 터였다. 분명 서로 어색해하며 미소를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사진 속 표정은 절친이 따로 없었다.
시상이 모두 끝나고 사회자가 랜덤으로 지명을 해서 수상소감을 들었는데, 룰을 몰랐던 나는 놀라서 급히 수상소감을 준비했다. 찰나의 순간 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소감은 놀이처럼 즐겼다는 것, 그리고 내 안에 나조차도 몰랐던 고정관념(신념)을 인지하게 된 경험이었다는 거였다.
결론적으로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나에게 소감을 말할 기회가 왔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안녕하세요. 도심산책자입니다.
이렇게 많은 구성원분들 앞에서 상을 받게 되다니 정말 얼떨떨합니다.
이번 아이디어 공모전을 준비할 때, 정말 김칫국을 많이도 마셨습니다.
혼자였더라면 지난했을 그 과정을 놀이처럼 즐길 수 있게 해 준 동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순조롭지는 않았어요.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초반 상상의 나래를 펼 때까지만 해도 정말 즐겁고 설레는 마음이었는데요. 예정에 없던 프레젠테이션이 추가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하기 싫은 숙제를 받아 든 것처럼 부담스럽더라고요. 이런 마음으로 PT를 하면 필패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실망할 것 같았어요. 열정은 못 보여주더라도 이 아이디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 이야기만큼은 진심을 담아서 전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할 수 있어서 다행스럽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얻은 배움도 있었는데요.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이 ‘현실’이라는 단어가 계속 발목을 잡더라고요. 초반에 상상의 나래를 펼 때는 한없이 에너지가 올라가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현실’이라는 단어와 마주하게 되면서 위축되고 에너지가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어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순간에 ‘현실’이라는 단어가 벽처럼 느껴지고, 그것이 에너지 뱀파이어가 되어 스스로를 갉아먹었을까를 인지하게 된 순간이었어요. 이번 공모전을 통해서 내 안의 부정적인 신념을 인지할 수 있었고, 그것을 균형적인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아이디어가 현실 속에서 빛을 보게 될지 아닐지 아직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온다면 저처럼 ‘현실’을 ‘벽’으로 마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현실’이 ‘벽’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으로 진화하는 비밀스러운 순간의 묘미를요.
가까운 미래에 이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길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