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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m Musica Dec 22. 2023

영화 <크레셴도> 리뷰

왜 음악은 세상을 향해 더 크게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들어가며

2022년 반 클라이번 (Van Cliburn) 피아노 국제콩쿠르 현장을 생동감 있게 그리고 진솔하게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크레셴도> (Crescendo). 특히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만 18세의 한국인 피아니스트 임윤찬 군의 우승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처음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우승자였던 임윤찬 군의 탁월한 음악적 기량에 대해 이 영화가 주목하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영화 <크레셴도>는 단순히 임윤찬 군을 포함한 다른 본선 진출 연주자들의 천재적인 음악성에 대해 논하기보다는 음악이 어떻게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며 음악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본질적인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미국의 피아니스트인 반 클라이번의 이름을 따서 만든 콩쿠르이며 1962년에 처음으로 시작되었으며 4년에 한 번씩 미국 텍사스 주 포트워스에서 반 클라이번 재단에 의해 개최된다. 특히 이 콩쿠르에서는 현재에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두 명의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씨와 손열음 씨가 각각 우승 및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하였으며, 아까도 언급했듯이 2022년에는 임윤찬 군이 불과 만 18세의 나이로 우승을 차지한, 나름 한국인 피아니스트들과도 인연이 있다. 반클라이번은 1958년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의 우승자이기도 했으며 생전에 본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심사 및 재정지원을 담당했다고 한다. 반 클라이번이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1958년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 안 되고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이 한창이었는데 주최국인 러시아에서 미국인 피아니스트가 우승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이슈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특히 소련은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공산주의 이념 전파 및 러시아의 훌륭한 음악인들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한 이른바 프로파간다용으로 치밀하게 개최하였는데 첫회 우승자가 미국인 피아니스트였다는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어쨌든 반 클라이번의 우승 후에 뉴욕 시민들은 반 클라이번을 성대한 퍼레이드로 맞이하고, 반 클라이번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유명해졌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4년 후인 1962년부터 반 클라이번 콩쿠르가 개최됐으며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냉전시대에 공산 진영 (소련)과 자유 진영 (미국)을 대표하는 콩쿠르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영화 <크레셴도>에서 비치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현장

영화 <크레셴도>에서는 30명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 본선 진출자들의 콩쿠르 준비 모습 및 인터뷰를 다룬다. 30명의 피아니스트들은 이번 콩쿠르에 대해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어릴 적에 음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등에 대해 수줍으면서도 당차게 진술한다. 더 나아가 음악이 본인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 언급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는 단순히 누가 연주 테크닉이 더 좋고 누가 더 치열하게 연습을 많이 하는 등 “누가 누가 잘하나”식의 이런 장면이 아닌 각 연주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밀한 목소리와 생각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콩쿠르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며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화합의 과정이며 연대의 순간이라는 것을 연주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연주자들이 어떤 레퍼토리를 선택했는지는 이 영화에서 그리 중요하게 다루지 않으며 심사위원들의 날카로우면서도 냉철한 심사평 또한 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마라톤과도 같은 콩쿠르의 일정들을 그저 묵묵하게 수행해 나가면서 연주자들은 연주자 자신들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고 험난하고 빡빡한 여정의 콩쿠르로 인해 불가피하게 생길 수밖에 없는 연주 실수에 대해서도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 또한 하나의 음악적 성장 과정임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특히 심사위원 중에 한 분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자기는 연주자들에게 과도한 연습을 하지 말라고 한단다. 연습 대신에 아름다운 포스워드시 주변을 산책하며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에서 자유롭게 놀라고. 오랜 시간 연습만이 훌륭한 음악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실제로 콩쿠르 본선 진출자들은 서로가 경쟁자라는 인식보다는 함께 순수하게 어울려 놀고 즐기면서 세상을 향한 시야를 넓혀가는 경험을 하였다. 즉 “비음악적인 “ 부분도 ”음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어에서도 ”비언어적인 “요소가 ”언어적인 요소“보다 훨씬 큰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추구하는 연주자의 모습은 단순히 기교적으로 완벽하게 완성된 연주자가 아닌,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 및 잠재력이 풍부한 연주자이다.




연주자들의 인터뷰 태도의 차이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 중의 하나가 연주자들의 인터뷰 태도에 대한 차이였다. 대체적으로 서구권 출신의 연주자들은 “본인의 관점”에서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표현하였다. “나의 시선”은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해석하는지 “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매우 자유분방하게 진술하였다. 반면에 아시아권 출신의 연주자들은 인터뷰에서 상대적으로 “관계 지향적 “인 태도를 보였다. 임윤찬 군의 인터뷰에서도 그러한 면을 볼 수 있었는데 자신의 스승의 말과 생각을 자주 인용하곤 하였다. 또한 자신의 음악이 선배 음악가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늘 노력한다는 진술을 하였다. 물론 임윤찬 군이 가지고 있는 음악에 대한 철학 및 가치관은 어린 나이답지 않게 매우 훌륭하고 겸손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이러한 인터뷰 태도에 대한 차이는 각 연주자들이 오랫동안 경험하고 축적해 왔던 교육과 문화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나가며

반 클리번 콩쿠르가 개최된 2022년은 공교롭게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해였으며 본선 진출자 중에도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출신 참가자가 몇몇 있었다. 또한 2위 및 3위 수상자들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출신이었는데 이들은 본인들의 출신 국가와 상관없이 순수하게  음악적 동반자로서 서로를 진심으로 격려하고 깊은 연대감을 보여주었다. 혼란스럽고 약육강식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음악의 역할은 국적, 성별, 종교, 지역을 넘어서 서로가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유대감과 연대감의 회복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음악이 이 세상을 항해 좀 더 크게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영화리뷰 #크레셴도 #음악다큐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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