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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니바람 Mar 03. 2020

#9. 프리랜서 연구노동자의 고민

<지방대 박사 생존기>


<일간 이슬아>를 읽었다. 이슬아 작가는 매일 원고지 8매 분량의 글을 한 달 구독료 만원을 선불로 지불한 구독자들에게 발송해왔다. 주말을 제외한 평일 하루에 한 번씩 글을 마감해 메일로 발송하고 다양한 피드백을 받는 그 고통을, 한 편에 500원을 받고 아주 오랜 시간 이어왔다. 자신의 글은 한 편에 500원에 발송했지만, 외부에서 청탁받은 글은 원고지 1매에 만원 이하를 용인하지 않았다. 그게 동료 작가들과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했다.      


가끔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 코너에서 10-15분 정도 책을 소개하는, 다른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시인인 내 친구는 종종 출연료에 대해서 말한다. 2만원이라는 출연료는 아주 오래되어 누가 만들었는지조차 모른다. 어떤 기준으로 책정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그 2만원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받고 있다. 최근에 청탁받은 원고료도 비판했다. A4 용지 2매 반에 20만원. 어떤 지역의 사찰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것. 외곽에 위치한 사찰을 방문하고, 어떤 것을 느끼고, 시간을 들여 글을 구성하여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으로 얻을 수 있는 소득은 8.8%의 세금을 제외한 금액, 18만원 정도이다.   

  

누군가의 글쓰기 노동에 어떻게 대가를 책정해야 하는 걸까? 나는 수필이나 시를 쓰는 작가는 아니지만, 무엇인가를 쓴다는 점에서는 이들과 다르지 않다. 재미있게도 연구노동자로서 내 노동의 대가는 의외로 명료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매년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반영해서 학술용역인건비 기준단가를 발표한다. 책임연구원은 월 320만원, 연구원은 240만원, 연구보조원은 160만원 정도이며 참여율 50%를 기준으로 한다. 기관에서 발주하는 연구용역은 대체적으로 이 기준을 따르고, 참여율에 따라서 월 금액이 보다 정확하게 책정된다.      


그런데 어떤 연구용역에 참여할 때, 시작부터 얼마를 받을 수 있을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 연구진 구성과 연구용역의 전체 규모에 따라서 참여율을 조정하게 되기 때문에, 회의가 시작되고 나서야 희미하게나마 내가 이 일로 올릴 수 있는 소득의 감이 잡힌다. 내가 연구책임자로 참여할 경우에는 나서서 이러한 과정을 적극적으로 조율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연구책임자와 협의를 통해서 내 몫을 잘 가져가야 한다.      


나는 아직 이런 일을 해보지 않았다. 예전에 참여했던 연구용역은 모두 설계가 끝난 이후에 보조연구원 정도로 일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정해진 액수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고, 그저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든 연구용역이 새로 시작되는 시점부터 개입해야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 대해서 걱정이 되기도 한다. 참여율을 정하는 것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일들을 병행하는 내가 이 연구용역에 오롯이 참여할 수 있는 비율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나 있는 걸까?     


들어오는 일은 일단 무조건 합니다.

내년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그렇습니다.      


이런저런 연구의뢰를 받을 때마다 나는 고민의 여지가 별로 없다. 아니, 필요하지가 않다. 일단은 한다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박혀있어서인지 내가 받을 수 있는 대가를 먼저 계산해보기 어렵다. 이제 막 이런 일을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인인 내 친구 역시 거절할 수 없어 이런저런 일들을 맡지만, 너무 바빠서 수행하지 못해 난처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간혹 그런 일이 생길 때면 거절하는 법을 잘 배워야겠다고 말하곤 하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라고 동시에 말하기도 했다. 나도 그렇다. 어떤 일을 거절하고, 어떤 일을 승인할지 아직은 기준이 별로 없다.      


충분하지 않은 금액만 보고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어차피 모두 관계로 인해 흘러가는 일인데, 앞으로의 일을 위한 투자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들도 많을 것이다. 지금 내가 관여하고 있는 또 다른 연구도 그렇다. 올해는 내가 직접 수행하지 않지만, 내년에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육을 받으며 아주 일부분의 연구만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년에 이 일을 내가 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사실 없다. 그저 관계를 통해 암묵적인 약속을 할 뿐이지. 그래도 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미래 투자가 있으니까.   


그래서 올해는 일단 들어오는 모든 일을, 가능하다면 잘 수행해보고 싶다. 일이 얼마나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수행의 과정에서 내가 예측하지 못한 고단함을 느끼며 종종 하고 싶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실험의 2020년이라고 생각하며 해보고는 싶다.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니 올해 하반기조차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상반기에는 그렇게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번 주부터 연구용역 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내가 벌 수 있는 소득을 확인하고 싶다.


*

아무래도 코로나19 때문에 2주 동안 연기된 개강이 추가로 2주 더 늦춰질 것 같다. 초중고는 이미 합의가 되었고, 대학 역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듯 보인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가 나지는 않았지만 추가적으로 연기된 2주 동안에는 인터넷 강의와 과제물 제출 등으로 대체한다고 하는데 어떤 형태일지는 모르겠다. 우선 공지를 기다려야한다. 조교에게 문의해보니 시간강사 월급은 원래대로 지급된다고 한다. 어서 이 상황이 마무리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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