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박사 생존기>
코로나19가 휩쓸고 있는 요즘 많은 프리랜서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들 이 엄혹한 시기를 잘 견디길 바랄 뿐이다. 그나마 나의 일은 큰 무리 없이 진행 중이다. 어떤 연구용역은 공중 분해되기도 했지만, 2개의 연구용역은 잘 살아남아 나의 생계를 책임져줄 것이다.
오늘은 연구 발주처와 첫 회의가 있었다. 일종의 상견례라고 해야 할까. 연구책임을 맡은 나를 발주처에서 보고 싶어 한 것 같았다. 발주처 담당자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담당자가 처음 내뱉은 말은, "연구책임자인데 생각보다 얼굴이..." 그 뒤에 숨겨진 말이 무엇인지 뻔하다.
동안인 나는 동안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일에서 동안은 그다지 좋은 요인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특히 첫인상에서는. 한국사회에서 나이는 굉장히 중요하다. 연구의 총책임을 맡은 내가 어려보인다고 인식한 발주처의 담당자는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사실 담당자의 의도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동안이라는 칭찬이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만 앞에 연구책임자가. 라는 표현이 있었다는 점에서 칭찬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를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람으로 일차적 판단으로 내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일을 계속해나가야 하기에 관계를 잘 해나가야겠지. 첫인상은 첫인상일 뿐이다. 나이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보여줘야지.
이런 회의가 처음인 나는 발주처와 연구용역 수행 기관 사이에 일종의 기싸움 같은걸 잘 해야겠다는 배움을 얻었다. 발주처는 지시한 과업에서 벗어나 뭔가를 요구할 때도 있고, 부족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정해지지 않은 사항을 더 해달라고 완곡하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적절하게 제지하면서도 타협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연구용역은 돈을 받고 하는 연구고, 대부분 정책제안인 경우가 많다. 이는 학술연구와는 결이 약간 다르다. 학술연구는 돈을 받지도 않고, 정책제안과도 거리가 있다. 특히 내가 연구하는 분야의 경우에는. 내가 궁금한 주제를 탐구하는 것일 뿐, 사회적인 요구나 수요와 큰 관계가 없다.
얼마 전에 서울대로 이직한 지도교수에게 연락이 왔다. 상반기에 게재가 확정된 소논문이 없는지. 아차 싶었다. 나도 고민은 하고 있었지만 무엇을 써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다. 작년 12월까지 소논문을 낸 내가 상반기에 또 게재를 한다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금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채움의 시간으로.
그런데 교수님의 연락을 받으니, 올해에는 꼭 한 편이라도 써야지라는 생각이 다시 강하게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다른 펀드에 연구계획서를 제출해볼까 고민도 하고 있었는데, 주제도 잡아볼까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논문 몇 편을 읽고 멈춘 상태였다. 연구계획서를 써야하나 소논문을 써야하나. 둘 다 해야 하나? 그런데 연구용역도 해야 하는데.
생각이 많아진다. 4월부터 본격적으로 연구용역이 시작되면 나만의 학술연구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강의도 준비해야하고. 읽어 할 글도 많다. 그 와중에 사람들도 만나서 놀기도 해야 하고.
연구업적을 쌓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지도교수님은 나에게 논문을 꾸준히 써야한다고 항상 말씀하곤 하셨다. 그런데 나는 의문이 든다. 그렇게 꾸준히 논문을 써서 나는 뭐가 될 수 있을까?
연구업적은 결국 대학에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인데, 나는 과연 대학에서 일할 수 있을까? 연구소에 들어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연구교수나 선임연구원이나 자리가 있다면 지원하고, 물론 떨어질 수도 있지만. 교수라는 자리와 같은 의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논문을 계속 써봐야겠다. 뭐가 되지는 못해도 내가 하고 싶은걸 할 수는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쓸모를 결과와 결부시키지 말자. 그게 내가 박사학위를 계속한 이유이기도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