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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니바람 Jun 19. 2020

#15. 연구계획서가 떨어져도, 잘 살고 있어요

<지방대 박사 생존기>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4월 초 이후에 글을 전혀 쓰지 못했네요. 그런데도 구독을 유지하고 계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한 번 손을 놓다보니까 걷잡을 수 없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바쁜 일들을 처리하다보니 매 주 시간에 맞춰 글을 올리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핑계를 대봅니다. 이제 매 주는 아니더라도 여유가 있을 때마다 글을 올릴 계획입니다. 편안하게 읽어주세요.   


  


프리랜서, 

마음에 든다


6월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강의는 마지막 주만 남겨두고 있다. 진행 중인 연구용역도 무리 없이 하고 있는 중이다. 프리랜서의 삶은 그 자체로 편안하다. 일의 완급을 내 마음대로, 내 컨디션에 따라서 조절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다. 어느 정도 수입만 확보된다면 프리랜서만한 게 없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내가 원하는 최소 월 250 정도의 수입을 위해서는 많은 프로젝틀 확보해야 하고, 그게 내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계속 떨어지고 있다


지난 2월에 열심히 작성했던 연구재단 펀드 지원을 위한 연구계획서가 무용하게 됐다. 지난주 금요일 두 개의 펀드에 대한 불합격 소식을 연달아 접했다. 개인적으로 지원했던 박사후국내연수와 지도교수님과 함께 제출했던 공동연구까지. 오전, 오후로 나뉘어 기분 좋지 않은 소식을 이어 받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박사를 했을까,’ ‘이번엔 운이 좋지 않았나 보다,’ ‘계속 공부를 하는 게 맞는 걸까’ 등등. 나는 가끔 기쁘지 않은 일이 있으면 극단으로까지 치달아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는 한다. 펀드 2개 떨어진 것 가지고 박사과정에 대한 회의까지 하다니. 순간 박사과정에서 내가 충분히 느꼈던 즐거움을 모독한 것만 같았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집중하자고 했던 나의 다짐은, 냉혹한 대학원 졸업 이후의 삶에서 종종 흐트러지고는 한다.     


그리 괜찮지는 않지만,  

불합격을 받아들인다

조금이라도 담담하게 


사는 게 뭐라고. 아직 시간강사 지원사업이 남아 있다. 그것마저 떨어진다고 하면. 글쎄. 그것도 그냥 이렇게 받아들여야겠지.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한다. 어떤 펀드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내가 잘못한 게 아니고, 능력이 없는 게 아니다. 수많은 연구계획서가 선정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정교하지 않다. 오히려 정교한 듯 보이게 짜여진 시스템 속에서 객관성을 가장한 수많은 주관성들이 교차하며 대상들을 선별할 뿐이다.      


내가 불합격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박사과정 시절 연구재단 펀드에 합격했을 때도 난 특별히 내가 뛰어나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수도권/지방 트랙으로 나뉘어 지고, 인문사회/이공계로 구분되는 그 틀 속에서 내 경쟁자들의 연구계획서와 내 연구계획서는 상대적으로 평가된다. 면접에 가서 느낀 나의 절망감은 더욱 컸다. 심사위원 교수들은 성의가 없었다. 내 연구계획서를 읽어온 것 같지도 않았다. 헛 다리를 짚는 질문이 제기되었을 때는 허탈하기까지 했다.      


내가 합격을 했든, 불합격을 했든 나는 열심히 했다. 이번에 쓴 연구계획서도 한 달 동안 모든 걸 쏟아 부었다. 그러니 되었다. 공동연구는 지도교수님이 계획서를 거의 다 작성하셨기 때문에 내가 오히려 지도교수님을 위로했다. 그 두 펀드가 아니어도 큰일은 생기지 않는다. 펀드는 내년에도 있다. 마음을 추스르며 내년의 펀드 합격을 다짐했다. 적어도 주관성이 교차하는 그 세계의 틀 안에 들어보자고.     


이게 아니면 안 되는 일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되겠지


모든 건 그렇다. 이게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이게 아니더라도 다른 일이 생긴다. 내 삶은 언제나 그랬다. 다음 학기에는 학부 강의 2개를 맡기로 했다. 학부 강의는 과목당 1시간, 2시간으로 나뉘어 주 2회를 하기 때문에 학교도 더 자주 갈 것이다. 2과목을 맡았기 때문에 준비하는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다.      


다음 학기는 수업 준비와 개인적인 공부에 시간을 더 쏟아보려고 한다. 연구용역은 돈을 벌  수는 있지만 나의 역량 계발에 큰 도움은 안 되는 것 같다. 누군가가 의뢰하는 연구보다는, 내가 원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 엄마는 가끔 내게 원하는 대로만 살 수 없는 거라고 말했다. 그치만, 그래도 원하는 대로 만들어보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게 너무 어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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