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박사 생존기>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4월 초 이후에 글을 전혀 쓰지 못했네요. 그런데도 구독을 유지하고 계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한 번 손을 놓다보니까 걷잡을 수 없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바쁜 일들을 처리하다보니 매 주 시간에 맞춰 글을 올리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핑계를 대봅니다. 이제 매 주는 아니더라도 여유가 있을 때마다 글을 올릴 계획입니다. 편안하게 읽어주세요.
6월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강의는 마지막 주만 남겨두고 있다. 진행 중인 연구용역도 무리 없이 하고 있는 중이다. 프리랜서의 삶은 그 자체로 편안하다. 일의 완급을 내 마음대로, 내 컨디션에 따라서 조절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다. 어느 정도 수입만 확보된다면 프리랜서만한 게 없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내가 원하는 최소 월 250 정도의 수입을 위해서는 많은 프로젝틀 확보해야 하고, 그게 내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지난 2월에 열심히 작성했던 연구재단 펀드 지원을 위한 연구계획서가 무용하게 됐다. 지난주 금요일 두 개의 펀드에 대한 불합격 소식을 연달아 접했다. 개인적으로 지원했던 박사후국내연수와 지도교수님과 함께 제출했던 공동연구까지. 오전, 오후로 나뉘어 기분 좋지 않은 소식을 이어 받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박사를 했을까,’ ‘이번엔 운이 좋지 않았나 보다,’ ‘계속 공부를 하는 게 맞는 걸까’ 등등. 나는 가끔 기쁘지 않은 일이 있으면 극단으로까지 치달아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는 한다. 펀드 2개 떨어진 것 가지고 박사과정에 대한 회의까지 하다니. 순간 박사과정에서 내가 충분히 느꼈던 즐거움을 모독한 것만 같았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집중하자고 했던 나의 다짐은, 냉혹한 대학원 졸업 이후의 삶에서 종종 흐트러지고는 한다.
사는 게 뭐라고. 아직 시간강사 지원사업이 남아 있다. 그것마저 떨어진다고 하면. 글쎄. 그것도 그냥 이렇게 받아들여야겠지.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한다. 어떤 펀드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내가 잘못한 게 아니고, 능력이 없는 게 아니다. 수많은 연구계획서가 선정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정교하지 않다. 오히려 정교한 듯 보이게 짜여진 시스템 속에서 객관성을 가장한 수많은 주관성들이 교차하며 대상들을 선별할 뿐이다.
내가 불합격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박사과정 시절 연구재단 펀드에 합격했을 때도 난 특별히 내가 뛰어나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수도권/지방 트랙으로 나뉘어 지고, 인문사회/이공계로 구분되는 그 틀 속에서 내 경쟁자들의 연구계획서와 내 연구계획서는 상대적으로 평가된다. 면접에 가서 느낀 나의 절망감은 더욱 컸다. 심사위원 교수들은 성의가 없었다. 내 연구계획서를 읽어온 것 같지도 않았다. 헛 다리를 짚는 질문이 제기되었을 때는 허탈하기까지 했다.
내가 합격을 했든, 불합격을 했든 나는 열심히 했다. 이번에 쓴 연구계획서도 한 달 동안 모든 걸 쏟아 부었다. 그러니 되었다. 공동연구는 지도교수님이 계획서를 거의 다 작성하셨기 때문에 내가 오히려 지도교수님을 위로했다. 그 두 펀드가 아니어도 큰일은 생기지 않는다. 펀드는 내년에도 있다. 마음을 추스르며 내년의 펀드 합격을 다짐했다. 적어도 주관성이 교차하는 그 세계의 틀 안에 들어보자고.
모든 건 그렇다. 이게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이게 아니더라도 다른 일이 생긴다. 내 삶은 언제나 그랬다. 다음 학기에는 학부 강의 2개를 맡기로 했다. 학부 강의는 과목당 1시간, 2시간으로 나뉘어 주 2회를 하기 때문에 학교도 더 자주 갈 것이다. 2과목을 맡았기 때문에 준비하는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다.
다음 학기는 수업 준비와 개인적인 공부에 시간을 더 쏟아보려고 한다. 연구용역은 돈을 벌 수는 있지만 나의 역량 계발에 큰 도움은 안 되는 것 같다. 누군가가 의뢰하는 연구보다는, 내가 원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 엄마는 가끔 내게 원하는 대로만 살 수 없는 거라고 말했다. 그치만, 그래도 원하는 대로 만들어보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게 너무 어려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