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결산해보면 나쁜일들과 좋은일들이 나를 번갈아가면서 괴롭혔던 것 같다.
모든 해가 아마도 그렇겠지만
내 삶에 나쁜일이 이렇게 압도적이었던 적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최근 몇 년 간 평탄한 삶을 살아서 그랬던걸까.
2019년 마지막날 나는 응급실에 있었다.
이틀 연속 응급실을 방문하고 입원하기로 결정한 뒤 아침 9시까지 병실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새벽 2시쯤 응급실을 갔으니 7시간은 넘게 기다렸던 것 같다.
해가 넘어가는 날이어서 그런지 응급실엔 사람이 많았다.
술에 잔뜩 취해 정신을 잃은 대학생, 술을 먹다 서로 싸워 머리가 깨진 할아버지,
보험 때문에 그냥 넘어졌다고 말하자고 공모하는 목소리들,
아내와 다툼을 하다 넘어져 응급실에 실려온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폭행하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통화하는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하고 풀이 죽어 있었고,
폭행을 말리는 간호사는 대차게 할아버지를 힐난했다.
9일간의 입원 끝에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엉엉 울었다.
성인이 되고 그렇게 울어본 적은 또 없었다. 소리내서 울었다.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
한 달은 앓았던 것 같다. 털고 일어나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기억도 안난다.
그동안 힘들었던 모든 게 한 번에 터져나온 것 같았다.
그래도 살아야하니까 다시 일했다.
생전 얼굴도 본적 없는 사람들에게 비판과 평가를 받으며 돈을 벌었다.
그러면서 상처도 함께 받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만두고 도망가고 싶었다.
난 늘 도망가고 싶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그대로 실현하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적어도 공부하는 사람은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공부를 하든 아니든 우리 모두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걸
계속 깨달아가면서 언제까지 내가 이 삶을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냥 나 자체가 위선이고 모순인 것만 같았다.
이게 자기분열인 건가.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마음이 잘 안되는지 모르겠다.
난 여전히 비겁한 겁쟁인데
2021년에는 다르게 살 수 있으려나.
조금더 담담하게 고요한 물결처럼 누가 돌을 던져도 그 돌을 그냥 삼켜버리고 마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야하는데 자신이 없다.
그래도 그렇게 마음을 먹어보고 시작하자.
10%라도 더 그런 나로 살아보자.
모두들,
2021년에도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