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반느, 그리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나를 넘어뜨린 아름다움들 1

by 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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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파반느》와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상상력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나의 사랑은 늘 치기 어린 망상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게 맞다.

사랑은 상상력이니까.


작품에 관하여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경록'에게도 어둠이 있다. 그는 못생긴 여자의 전구가 꺼져가는 것을 보았고, 그 여자가 살기를 바란 사람이며, 친구와 애인은 잠시 곁을 지켜주는 것뿐이었던, 영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사람이 가짜로 보이는' 남자다. 그러나 영화 속 경록에게서는 고민의 흔적이 옅다는 느낌이 받았다. 시대적 배경을 현대로 옮긴다고 해도, 현대무용이라는 전공과 오로라라는 꿈은 그에게 있어 너무나 밝고, 구체적이다.

그러한 과거를 가진 사람이 꿈을 꾸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읽은 경록은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미정과 요한을 만났다. 요한의 소설 속에서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만 존재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가 대학에 붙은 후의 모든 장면이 꽤나 당황스럽게 다가왔던 것 같다. 미정에게 말을 붙일 때도, 우는 미정을 큰 소리로 다그칠 때도, 아마 '군만두'였을 여성과 다음날 모텔에서 나올 때에도 그는 내가 읽은 경록과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나... 단 한 번도 뭔가를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요구해선 안 된다고... 어떻게... 내가...


'미정'의 말버릇은 '아니, 아니에요.'다. 그는 뭔가를 요구할 수 없었던 사람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어둠에 갇혀 있었던 사람은, 몇 걸음만 앞에 문이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는 법이다. 아니, 그런 사실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영화 속 미정은 너무나 쉽게 그 문을 열고 나와버렸다고 생각한다. 그가 경록을 떠난 이유는 (내레이션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면) 경록의 환경 변화와, 그로 인해 엄습한 두려움 정도로 납작해져 버렸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경록의 사랑으로도 쉽게 밝아지지 못했던 그 안의 어둠이, 아주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좀 더 설득력 있게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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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것없기 때문이야.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야.


'요한'은 외로운 사람이다. 얼핏 보면 냉소적인 인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너머에 인간을 향한 연민이 있다. 보잘것없는 인간, 똥과도 같은 인간, 너무나 미운, 잘못 설계된 인간. 요한은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싶기에 감히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배우의 입을 통해 그의 주옥같은 발언을 좀 더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량상의 문제로 많은 게 잘려나갔고, 몇 개의 문장은 다른 인물의 입을 빌려 발화되었다. 아마 영화 《파반느》를 처음 접하는 관객들을 위한 선택이었겠으나, 소설 속 요한에게 매료된 나 같은 인간에게는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사람들을 조금만 더 섬세하게 바라봐주었다면, 그들과 눈을 맞추고 걸을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조금은 다른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기꺼이 미끄러지는 그들을, 그들의 단단함과 연약함을 알아주었다면.


소설에서 미정이 외모로 인해 받은 상처는 대부분 그의 말로 드러나지만, 영화는 매체의 특성상 보여주고 증명해 내는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미정이 괴롭힘을 받는 장면 또한 더 신경 써서 구축해야 했다는 생각이다. 21세기의 성인들은 못생겼다고 해서 대놓고 조롱하지 않는다. 아 그분? 일은 잘하는데 사적으로 만나기는 조금. 친해지기엔 벽이 느껴져서요. 점심을 매번 혼자 먹네? 하지만 같이 먹어주고 싶지는 않아. 쟤도 혼자인 게 편하겠지. 아 걔, 걔는 좀 그렇지. 얼마 주면 잘 수 있냐? 아이고, 화장해도 안 되네 안타깝다. 이런 잡다한 마음이 모여 오직 그녀만을 위한 콜로세움을 짓는 것이다.

세상의 것으로 비추어져야 할 문제가 눈에 띄게 유치하고 악랄해지는 순간, 대다수의 관객들은 선을 그어버린다. 난 저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야. 요한의 말대로 인간은 보잘것없는 존재라서, 조금이라도 평균적이지 못한 스스로를 발견하면 재빨리 평균에 올라탈 기회를 잡으려 한다. 미정 앞에서 공룡이 나타났다고 외치는 이들과 별 다를 게 없는데도 말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이끄는 거대한 쥐의 행렬에서 이탈한 세 사람의 이야기는, 이질적이며 한편으론 위대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스스로의 보잘것없음을 깨달은 모든 인간들에게 바치는 헌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인간이 가진 유일한 상상력을 발휘하고픈 사람들을 위해.


나에게서 비롯된 빛으로 누군가를 밝혀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발견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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