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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잠 Feb 26. 2020

일상200225

고양이의 삶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왔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그랬던 것' 같다. 왜 추측의 표현이냐, 오늘 단 한순간도 바깥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지난 글과 같은 주제가 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 바깥에 단 한순간도 나간 적이 없었으니까. 이전 글에서 언급한 대로 오늘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강제 휴무/칩거를 '당하고' 있다. 어제나 그제, 사흘 전이나 나흘 전만 해도 비가 오지 않아 낮 시간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예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기상 후 아침부터 축 쳐지는 기분은 거실 커튼을 활짝 여는 순간 쉽게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고, 어쩌면 좋은 핑곗거리를 하나 찾았다는 생각에 마음 놓고 곧장 소파로 향했다. 요즘 거실 소파엔 꽤 따스한 이불이 자리하고 있다. 집안에서의 생활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따뜻하게 쉴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언제든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 유튜브를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기 위함이다. 이 이불은 소파 저쪽 끝에 자리한 시로/쿠로 전용 방석이 항상 놓여있는 것과 같다. 음,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 오늘까지 총 나흘 간의 삶은 마치 고양이의 삶과 같았다는 것을. 거실 작은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여전히 시로가 그 방석 위를 점하며 쿨쿨 자고 있다.(물론 쿠로 또한 어딘가에서 쿨쿨 자고 있을 게 분명하다.) 생각이 난 김에 고양이의 삶에 대해 한 번 이야기를 해보아야겠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집의 고양이 시로와 쿠로의 삶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아내를 만나기 전, 내가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될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유년 시절 총 두 마리의 개를 키워본 적이 있었지만 그 친구들에게도 어째서인지 그다지 큰 정을 주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이야 고양이건 개건 고라니건 날다람쥐건(얘는 실제로 본 적 없다. 그냥 생각났다.) 인간이 아닌 어떠한 다른 동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흘러넘치지만 어렸을 땐 특별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썩 좋아했다고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아마 유대감 혹은 애정을 쌓을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버지께서 어디선가 데려왔던 첫 번째 반려견은 믹스견 특유의 급성장으로 인해 얼마 함께하지 못하고 시골 할머니 댁으로 강제 이사를 가버렸다. 또한 두 번째 반려견은 세탁소를 운영하시던 내 고등학교 시절의 어머니가 출퇴근을 함께 하며 어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내가 아예 기억을 못 할 정도로 함께한 추억이 현재 내게 남아있지 않다. 심지어 지금 이렇게 그 두 친구의 이름조차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 다 한 셈이다. 하지만 동물들을 향한 기본 마음가짐이 달라진 지금, 수십 년이 지나도 잊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시로와 쿠로의 이름을 말이다.


 시로와 쿠로가 아~주 어렸을 무렵,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미의 젖을 채 다 떼기도 전에 아내는 시로와 쿠로를 만났다. 천천히 걸으면 집안 바닥도 함께 쓸고 다닐 정도로 흘러내린 현재의 뱃살이 무색하게 예전 시로 와 쿠로의 모습을 보면 정말 작은 한 주먹만큼 작은 모습이었다. 꼬물꼬물 거리는, 세상의 모든 위험에 노출된 작은 생명체에 불과했던 이 둘은 아내와 함께 서울 생활 및 다시 돌아온 대구에서의 삶을 쭈욱 함께 하다가 인간 나이 대략 45세의 중년의 시절에 나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얘네들과 처음 대면을 하던 2015년의 순간은 절대 잊지 못한다. '고양이'라는 동물 자체가 생소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예전의 나는 동물에 대한 커다란 애정을 가진 타입의 인간이 아니었다. 아내를 처음 만난 그 시절에도 말이다. 보통 본가에 살 무렵, 동네 길냥이들로만 고양이라는 존재를 접할 수 있었고, 주변의 지인 그 누구도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다. 물론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개인 공간에 가 그 고양이들을 만난 적이 없으니 나로선 반려묘로서의 고양이를 만난 적이 전무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제를 시작하고, 관계가 좀 더 깊어짐에 따라 일상의 공간을 공유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한 아내와의 옛 시절에, 아내와 함께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던 이 두 고양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당시 내 나름대로 큰 고민이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는 상태에서 마냥 친한 척할 수만은 없었고 또한 고양이의 습성을 내가 잘 모르기도 했다. 고양이들이 대체적으로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혹은 싫어하는 지를 알지도 못했고 그랬기에 시로, 쿠로라는 고양이가 어떤 성격적 특성을 가질지에 대한 상상력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결국 쿠로를 강아지처럼 대하던 난, 내 얼굴 바로 앞에서 윗니 아랫니를 활짝 다 보여주며 "하아~~ 악!!" 하는 모습을 보며 가까워지려 노력하려던 내 마음을 다시 꽁꽁 싸매게 되었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만큼 고양이들과의 시간 또한 함께 많아졌다. 아내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오랜 시간을 이 두 고양이와 함께하며 각각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고, 쿠로와는 반대로 시로는 그래도 내가 친한 척을 해볼 만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방금 물을 핥짝핥짝 마시고 다시 소파 방석 자리로 폴짝 뛰어올라온 시로는 뭔가.. 멍청미(美)가 있다. 항상 맹~한 모습의 시로는 신경질적이거나 감정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는 편이 아니다. 그저 가만히 빵을 굽다 스르륵 눈을 감고 자는 게 일상이고, 그 외에는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냄새를 맡고 아내나 나의 품에 들어와 예의 그 빵을 또 진득하게 굽어댄다. 반면, 쿠로는 약아빠졌다. 자신이 원하는 걸 끝까지 시위를 통해 얻어내기도 하고, 싫으면 싫다(하아~~ 악!!), 좋으면 좋다(그르렁~)를 확실하게 표현할 줄 안다. 자신의 최애 인형을 물고 애옹애옹 이유 모를 소리를 한밤중에 내기도 하며, 가끔 와다다다다 집안을 가로질러 에너지를 분출하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극명하게 다른 성격의 고양이기에 초반에는 적응하는데 꽤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각자의 성격을 완벽하게 알고 있기에 예전과 같은 마찰 없이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가끔 이 두 고양이의 일상을 보며 다음 생엔 꼭 아내와 함께 사는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꿈을 꾼다. 항상 두 고양이를 주시하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작은 두 눈을 부릅뜨고 관찰하는 아내는 내가 쉽게 찾지 못하는 시로의 작디작은 피부병도 쉽게 발견해낸다. 또한 항상 지루하지 않게 새로운 장난감이나 어떠한 물체를 사 오기도 하며, 별식도 꼬박꼬박 잘 챙겨준다. 무언가 알아듣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뭐라 뭐라 이야기하기도, (별로 잘한 일도 없는데)"이쁜 고양이네~"라며 칭찬을 해주기도 한다. 응아를 누면 바로바로 치워주기도, 화장실 모래가 가득 차면 제때 갈아주기도 하며 일상 속 불편함을 느낄 새 없이 매 순간 시로와 쿠로를 챙겨주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선택할 수만 있다면 꼭 다음 생엔 시로 혹은 쿠로로 태어나리라 반복적으로 다짐을 한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뭔가 내가 질투하는 듯해 보이지만 실상 유난히 굵고 지독한 응아를 주로 싸는 시로의 화장실도 아침마다 '내가' 잘 치워주는 편이고 목욕을 하고 나오면 '내가' 드라이기로 꼼꼼하게 말려주기도 한다. 이렇게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기에 이젠 나도 어디 가서 스스로 '집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자부한다. 물론 아직 모자란 집사로서의 행동양식이 있겠지만 10년 가까이 집사로 살아온 아내의 모습을 잘 관찰하고, 때론 가르침을 잘 배우며 시로와 쿠로와 함께 백 년 만 년 오래오래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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