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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잠 Feb 20. 2021

대화 1

장 사장과 박 사장

 굴뚝의 연기가 서서히 세 시를 가리키고 있을 무렵이었다. 칼바람이 왼쪽 귓등을 점점 더 매섭게 찌르려고 하던 그때, 오늘도 어김없이 그가 찾아왔다. 마치 연기보다 자신이 더 시간을 잘 지킨다는 마냥. 


-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 때문에 온 겐가?

- 아니 글쎄. 내 얘기 좀 들어보라지. 내가 참 어이가 없어서 말이야. 

- '언제는 어이가 있기라도 했나..'

- 뭐라고?

- 아 아닐세. 그냥 혼잣말이었네. 그래, 오늘은 어쩐 일로 온 겐가? 

- 아 그러니까 말이야. 가만 보자,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더라? 

- 어이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 아 그렇지, 그래. 거참 이렇게나 어이가 없는 일이 있다니. 내 참, 그래서 세상이 말세라는 거야 정말. 

- 매번 그렇게 어이없는 일만 가득한데 대체 박 사장의 삶에 어이가 남아있기라도 한 건가?

-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잔말 말고 내 말이나 한번 들어보게. 그러니까 내가 말이지..

- 박 사장, 오늘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15분 아니, 10분 안에 얘기를 마무리 해야 하네. 안 그러면 자네 이야기를 끊고 가야할 수도 있네.

- 거 참 사람 빡빡허이. 오랜 친구 이야기 잠깐 들어주는 것도 못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항상 말하는 거잖아. 세상이 참 말세라고. 

- 매번 내가 박 사장 얘기를 잘 들었는데 이러면 곤란하네. 그리고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저 조금만 짧게, 어? 짧게, 요약본으로다가 얘기해달라고 부탁하는 건데 그것마저 거절하면 그냥 지금 바로 일어날 수도 있어. 

- 자네 지금 협박하는 건가? 아직 시간이 남은 거 내가 뻔히 알고 있는데 말이야. 거참, 늙은이 얘기 들어주는 게 그렇게나 힘든 일인가?

- 아닐세, 그렇다는 뜻은 아니네. 하지만 이게 하루 이틀이어야지. 매번 이렇게 내가 일하는 곳에 와 남의 장 사 훼방이나 놓고 그러니 조심스레 하는 얘기지 않나.

- 자네가 가지고 있는 사전의 '조심'이란 단어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는 조금은 달라 보이는구먼.

- 거참 지금 말장난 하자는 게 아니잖나. 뻔히 내가 바쁠 거 알면서 그렇게 몽니를 부리는 건가?

- 누구는 바쁘지 않나? 장 사장 당신만 바쁜 게 아니라고. 나도 내 비지니스가 있는 사람인데 그새를 못 참고 그러니 참..

- 어쨌든 그 얘기나 어서 해보게. 자네가 이러는 사이에도 분명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네.

- 거참 사람 인정머리 없게.. 이거 영 서러워서 얘기할 수 있어야 말이지.

- 요전 날엔 그렇게 얘기를 잘하더니 오늘은 왜 그렇게 뜸을 들이는 겐가? 인제 그만 얘기나 시작허이. 

- 그래, 내 장 사장보다 배포가 더 큰 사람이니 내가 참고 얘기하겠네.

- 암, 자네 배포가 더 크지. 암. 

- 그러니까 말일세. 장 사장 자네도 잘 알고 있다시피 내가 젊은 시절 큰 사업을 했다 하지 않았다던가. 일제 상품을 헐값에 배로 들여와 부산에서 전국으로 납품하던 거 말일세.

- 아, 그 불법 밀수 말인가?

- 허 참, 그게 불법이 아니래두! 물론 세관 신고는 안 했다만 내 나름의 부가세를 붙여 유통했고 그게 또 전국으로 쫙쫙 퍼져 원활하게 자금을 유동시켰으니 내 이 나라의 경제를 모르긴 몰라도 장 사장 자네가 무시 못 할 정도로 기름칠을 했을 거라네.

- 국가에 신고도 안 된 상품을 몰래 들여와 몰래 판매하는 게 경제에 도움이 됐다는 말인가?

- 어찌 됐든 돈이 돌게 만들었으니 경제에 도움이 되었다는 말이지 않나. 거 참.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내가 한창 부산이랑 서울을 오가며 노다지 같은 사업을 문어발처럼 뻗치고 또 뻗칠 때였어. 그땐 국내에 외산이 많지가 않았어. 196~70년대 국내산은 지금처럼 좋은 품질도 아니었거든. 물론 지금보다 훨씬 못살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단 말이지. 그런 사람들한테 국산 제품이 눈에나 들어왔겠나? 암암리에 외산 상품들을 사가지고 치렁치렁 집안을 장식했단 말일세. 물론 나도 그중 하나고 말일세 흠흠.

- '흠흠이 뭐야? 칭찬이라도 해달라는 거야 뭐야?'

-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 아, 혼잣말이었네. 계속 얘기해보게.

- 여하간 그땐 외산 상품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던 시기였네. 그에 맞춰 중국 쪽은 서해로, 일본 쪽은 부산이나 마산으로 선박 거래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네. 물론 나는 내 똘똘한 머리가 증명하듯 누구보다 일찍 파악하여 부산항쪽을 확 잡고 있었지. 그땐 주로 이즈하라항에서 온 일본 선박과 거래를 했더랬지. 자네도 아는가? 대마도의 이즈하라항 말일세.

- 내 태어나 서울 외 다른 지역엔 가본 적이 없어 부산도 잘 모르는 판국에 대마도는 어찌 알겠나? 그리고 잘나신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나에겐 묻지 말고 얘기나 빨리함세.

- 거참 사람 삐딱허니.. 그래, 그러니까 이즈하라항에서 외산 물건이 잔뜩 실린 선박이 모일에 출항한다고 하면 이쪽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출항해 중간 바다에서 만나 거래를 했다는 말이네. 보통 이쪽에선 국내산 수산물을 수출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상은 외산 제품 밀수가 더 큰 목적이었어. 그렇게 받아온 제품들도 다양했어. 시계며 양주며 만년필, 재봉틀, 트랜지스터 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외산이라면 다 받아왔단 말일세. 특히나 일제가 인기가 좋았어. 가져와 눈 깜빡하면 바로 팔릴 지경이었으니 말일세. 

- 미안한데 이제 5분이 막 지나는 참이네. 어서 정리하고 가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 허! 이제 이야기 시작도 안 했는데 어딜 간다는 말인가? 장 사장 당신 지금 어디 갈지도 내가 뻔히 아는데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끊고 간다는 말인가? 이제 본 이야기 시작할 테니 조금만 더 들어주게나.

- 참, 이렇게나 막무가내니.. 그럼 얼른 본 이야기나 시작하게. 제발 축약해서 얘기나 하게.

- 그래, 그래서 말일세. 어느 날 어김없이 다음 거래 때문에 일본 쪽에서 보낸 사람과 회의를 마치고 기분 좋게 배웅을 하고 난 참이었네. 그런데 그때 사환 놈이 급하게 사무실 문을 벌컥 여는 것이지 않겠나. 말이 사환이지 하는 일이 많던 놈이었네. 요즘 같으면 비서? 뭐 그쯤 되었을 거야. 가만 보자.. 이름이 뭐더라? 그냥 김 군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여하간 말일세. 거래 수요 파악이나 환율 따위를 잘 계산해서 값을 적절하게, 그것도 우리 쪽에 적절하게 잘 매기는 놈이었어. 꽤나 똘똘한 놈이어서 이것저것 일을 많이 맡겼더랬지. 여기저기 거래를 그 녀석과 함께 하다 보니 그놈도 그놈 나름대로 소식통을 가지게 되었어. 그런데 그 소식통이 말하길 이제 곧 공식 관세청이 생긴다는 거야! 당시까지만 해도 재무부에서 세관을 담당했는데 수출입이 많아지면서 곳곳에 허점이 생겨 모든 것들을 다 컨트롤할 수 없게 되는 사태에 이르자 내린 박통의 결단이었겠지. 서울 동림동 서울역 뒤편에 관세청이 곧 들어설 모양이었던 거야. 그리고 중점 정책 사항이 밀수입 근절이었고. 그럼 난 어떻게 되었겠나?

-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그걸로 풍비박산 났겠지.

- 허허, 그리 쉽게 물러날 내가 아니지. 일단 김 군의 소식통이나 내 소식통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모두 확인했어. 그런데 정말 사실이라지 않는가. 이거 원. 하지만 관세청이 새로 들어선다고 모든 것을 접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 사실 우리 쪽 규모가 국내에서 가장 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덩치가 좀 있었거든. 다만 8월께 들어설 때를 기점으로 한동안은 조심하자 생각하고 사태를 주시했더랬지.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확고했나 보더라고. 그때부터 부산이며 마산이며 항이란 항에선 모두 철저한 검역이 시작됐어. 원 참. 덕분에 국제시장 쪽 우리 사무실도 잠시 접어야 했더랬지. 이즈하라항의 거래처와는 당분간 거래를 중지하고 차후를 도모하자고 했어. 하지만 일본놈들 입장에서도 거래가 아쉬웠던 모양이야. 이곳저곳을 통해 거래를 계속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말이지. 인편이며 편지며 체신이며.. 일본놈들은 잊을 만 하면 연락을 해대질 않나, 관세청은 여기저기 들들 볶고 다니질 않나.. 그땐 정말 언제 잡혀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시점이었어. 하지만 내가 또 누군가. 신출귀몰. 아쉽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몸을 잘 사렸고, 결국 직접은 걸리지 않았다는 거 아니겠는가.

- 그래? 거 축하허이. 얘기는 그게 끝인가? 그렇다면 이제 일어남세.

- 허허, 뭐가 그리 급한가?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데. 조금만 더 내 얘기 더 들어주게나.

- 몸 잘 사려서 잡히지 않았다는 게 이야기 끝 아니었나?

- 에이 이 사람아! 이게 어디 어이없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가? 이제 곧 내가 말하려는 어이없는 일이 나오니 조금만 기다려보게나.

- 내가 어이가 없으려고 하는구먼 그래.

- 거 사람 실없긴. 여하간 잡히지 않았다는 말일세. 그 엄중한 시기에 말이야. 그동안 모은 돈으로 일단 김 군이며 미스 박이며 우리 쪽 사람들 몸 좀 잘 숨기고 있어라고 하는 와중이었네. 큰 바람이 일었다가 한숨 돌릴 시점이었어. 한창때 덩치가 좀 있던 업자들이 슬슬 나와 다시금 거래를 하기 위해 기지개를 켤 무렵이었어. 물론 나도 그랬고. 흩어졌던 우리 사람들 모아서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글쎄, 갑자기 누2군가 날 찾아오는 게 아닌가.

- 꼬리가 잡혔나보이. 관세청에서 말인가?

- 관세청이면 내가 할 말이 없지. 관세청은 무슨, 검찰청에서 날 불렀던 거야. 

- 검찰? 자네 밀수 말고 다른 불법도 저질렀던 겐가?

- 불법은 무슨. 다시 말하지만 내가 했던 일은 '교역'이었네. 밀수 따위가 아니야. 국가 경제에 기름칠하는 교역 말이야. 아무런 범법도 저지르지 않던 난데 검찰청이라니? 그땐 젊은 혈기에 간땡이 크다고 소문났던 나도 머리가 새하얘졌어. 일단 제대로 파악이나 해보자는 생각에 순순히 날 찾으러 온 검찰 쪽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했어. 속으로는 덜덜 떨면서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느라 고생 좀 했더랬지. 물론 법원 출두까지 있었던 일들도 많았지만.. 자네를 위해 내 기꺼이 생략하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감세. 

- 퍽이나 고맙구려.

- 그래, 그렇게 여차저차 포승줄에 묶인 채로 재판장으로 들어갔어. 어떤 놈이 날 꼬질렀나 눈을 부릅뜨고 둘러봤어. 그런데 재판장에 보니 피의자가 왠 부녀자들인게야. 그것도 무척이나 젊은. 아마 당시 나와 나이대가 비슷했던 것 같았네. 하지만 그것만 보고선 '저 사람들이랑 내가 무슨 관련이 있지?'란 생각이 절로 들더라니까. 십여 명의 부녀자가 피의자 신분으로 포승줄에 묶여 재판을 받더라고. 결국 이래저래 듣고 보니 그 여편네들이 밀수 보석을 암거래하다가 걸렸던 게야! 그 엄중한 시기에 말이지. 지네만 사서 쓰면 되는 걸 더 해쳐먹으려고 몇 푼 더 붙여 팔고 있었던 거야. 사회의 암적인 존재 같으니라고. 결국 전말은 밀수 보석이 어디서 났는지 관세청에서 꼬치꼬치 캐물으며 뿌리를 찾는 와중에 황모 여편네가 내 이름을 불렀던 거야. 이런 옘병! 짧은 머리에 코가 넙데데하고 눈이 축 처진 데다 코 옆에 엄청 큰 사마귀가 있는 게 한눈에 봐도 재물을 엄청 탐하게 생긴 그 여편네가 어찌 알았는지 내 이름을 떠벌린 거였어. 빼도 박도 못하고 난 시인할 밖에 없었고 그때 첫 옥살이를 했더랬지. 엄중한 시기여서 처벌도 가혹했어. 가지고 있던 돈들은 같이 일하던 놈들이 다 빼쳐 갔고, 몇십 년이나 빵에서 썩다가 겨우 나왔던 게 90년대 초였어. 나와서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었겠나? 다행히 지금 일을 알게 되어 근근이 먹고 살고는 있네만 여간 억울한 게 아니란 말씀이지.

- 그래, 자네 인생은 잘 들었네. 어이가 없어도 단단히 없는구려. 잘 들었네. 그럼 이제 정말 일어남세.

- 허허! 장 사장! 이깟 일로 어이없다는 게 정말 어이가 없는구려! 아직 이야기 더 남았네. 내가 알기론 오 분 정도 더 남았으니 내 빨리 이야기 끝내도록 하지.

- 허 참.. 그래, 내 포기함세. 어차피 오 분밖에 남지 않은 거 내 포기하고 자네 얘기 듣겠네. 대단해, 박 사장! 아주 대단해! 매번 이야기 듣게 만드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야!

- 자네가 내 칭찬할 것 많은 건 알겠다만 이것까지는 듣고 마저 하게나. 여하간 그 빵에 있을 때나 나와서나 내 절대 잊지 않겠다고 생각한 게 있는데 바로 날 찌른 그 황모 여편네의 얼굴이야. 언젠가는 나가서 꼭 복수하리라는 생각에 절대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네. 절대 잊지 않으려고 이렇게 저렇게 머릿속으로 얼굴을 그려가며 각인시켰어. 지금은 우리 조부모님 얼굴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하는 게 그 여자 얼굴이야. 그런데 말일세. 그만큼이나 박혀서 이제는 잊을래야 잊을 수도 없는 그 얼굴을 내가 어디서 봤는 줄 아나?

- 그 얼굴을 직접 봤다는 말인가?

- 그래! 내가 그 얼굴을 다시 봤다는 거 아닌가! 요 앞 은행 사거리에서 한창 비지니스를 하고 있는데 그 여편네 얼굴이 갑자기 눈에 딱! 보이는 거야. 꽤 거리가 있었는데도 말이지. 자네도 그런 경험 해봤나? 시야의 모든 것들을 흐리멍덩한데 한 곳만 팍! 집중되며 선명해지는 것 말일세.

- 그걸 보통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한다네.

- 예끼! 이 사람아! 사랑은 염병. 여하간 내 머릿속에 딴딴히 박힌 그 얼굴이 딱 보이는 거야. 유별나게 넙데데한 코랑 축 처진 눈, 그리고 고놈의 코 옆의 엄청 커다란 사마귀 말일세. 물론 시대를 보정해서 당시는 이십 대 즈음이었으니 지금은 칠십 대 할망구의 모습이었어. 그 여자인 것을 확신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네. 은행에서 나오는 그 여자를 보고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쫓아갔어. 그런데 왠걸? 그 여자는 웬 사내놈이 열어주는 씨꺼먼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 이제 막 타려고 하는 게 아닌가! 놓치면 절단이라는 생각에 얼른 뒷좌ㅏ석으로 쫓아갔더랬지. 그리고 문을 열어준 사내가 운전석으로 갈 무렵 뒷좌석 창문을 두드렸어. 

- 창문을 열어주던가?

- 아니, 바로 열어 주진 않았어. 차가 시동을 이제 막 걸고 가려고 할 때까지 엄청나게 두드렸단 말이지. 분명 그 할망구도 그 씨꺼먼 창문을 통해 내 얼굴을 보고 있었을 거야.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 두드리면서 외쳤어! "어이! 황 씨! 나 알지!" 하고 말이야. 하도 두드리고 소리를 쳐서 그랬는지 운전석에서 그 사내가 다시 나오더라고. 그리고 그때, 창문이 스윽 열렸어. 계속 내 얼굴을 보고 있었던 듯한 그 축 처진 눈으로 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더라고. 그러면서도 알듯 모를 듯 살짝 웃음을 짓는 듯 마는 듯 하는 거야. 답답한 마음에 외쳤더랬지. "어이, 황 씨. 50년 전 날 기억하는가? 나는 그때 당신 때문에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황씨 당신은 잘 먹고 잘 살고 있어 보이는구만! 이 지옥에나 갈 할망구 같으니라고!" 그러자 운전석의 사내가 험악한 얼굴로 나를 확 밀쳐내더라고. 내 십 년만 젊었으면 그런 놈은 엎어치기로 팍! 제끼는 건데.. 그런데 쳐 밀린 내가 풀썩 쓰러져 있던 그때 그 할망구가 나지막이 이렇게 말하더라고.. 아, 그런데 이제 시간이 곧 다 된 것 같은데.. 이제 일어나서 저쪽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말임세?

- 허어~ 거참. 얘기를 했으면 끝까지 해야지. 박 사장 이게 뭔가? 그래서 그 할망구가 뭐라고 했는가?

- 하하. 역시 장 사장은 내 얘기를 참 잘 들어준다니까. 그래, 내 인심 좀 쓰겠네. 마저 이야기해주겠네.

 창문을 통해 뚫어져라 날 응시하던 그 할망구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왔는 줄 아나? "용케 살아있었군. 사회의 암적인 존재..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옘병! 누가 암적인 존재라는 건가!? 나는 국가 경제에 도움을 줬었다고! 헌데 그 여자는 뭔가? 사리사욕만 챙긴 게 아니었는가! 누가 진짜 암적인 존재라는 건가! 내 참 어이가 없어 얼이 빠져있는데 그 와중에 그 여자가 어떻게 했는 줄 아는가? 옆에 놓은 손가방을 스윽 들더니 지갑을 꺼내 그 속에서 오만원권 10장을 꺼내서 내게 주는 게 아닌가! 이런 옘병! 카악~ 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렇게나 어이없는 상황은 다시는 없을 것일세. 절대! 

- 그래서, 박 사장 당신은 그 돈을 어떻게 했는가? 받았는가 받지 않았는가?

- 그걸 생각이나 할 필요가 있는가? 당연히 냉큼! 받아 바지춤에 쏙 넣었더랬지! 그러자 다시 그 알 듯 말 듯한 웃음을 지을 듯 말 듯 하더니 창문이 스윽 닫히더라고. 운전석의 사내도 다시 돌아가고 차는 이내 부릉 떠났네.

- 그래서, 그 오십 만원이나 되는 돈을 그대로 받았다는 말인가?

- 이 사람아! 오십 만원이네! 오십 만원! 내 언제 오십 만원을 현금을 가지고 있어 보겠는가! 이런 기회 놓칠 수야 없지 암! 그게 현명한 처사지!

- 예끼.. 이 화상아!

- 화상이라니 이 사람아! 자네도 나랑 같은 상황이면 나처럼 하지 않을 거란 확신하겠는가?

- 그래도 이 사람아 자존심이 있지..

- 허허, 장 사장. 자존심이 밥 맥여주나? 밥은 이 돈이 맥여주는 거라네! 그래서 말일세. 장 사장. 오늘은 그동안 자네가 내 얘기도 잘 들어주고 했으니 보답이라도 하려고 하는데. 저~ 앞 사거리에 끝내주는 국밥집이 있다는구려. 오늘은 저기 무료급식소에는 가지 말고 내가 쏘는 국밥에 소주나 한잔 하세! 

- ...국밥 말인가? 

- 그래! 자네가 매번 오며 가며 냄새만 맡는 국밥 말일세! 자네 오늘 얼마 벌었나? 

- ...2,970원일세

- 허허~ 아직도 그렇게 비지니스를 제대로 못 해서야 되겠는가! 인생은 한 방이라네! 오늘은 저기서 줄 서지 말고 나랑 국밥집에나 함께 가세.

- 허허 박 사장.. 고마우이.

- 친구 좋은 게 이런 거 아니겠는가!

- 친구 좋은 게 이런건가 보구려. 그나저나 다른 재밌는 얘기는 또 없는가?

- 하하. 장 사장.. 성질 머리 급한 거 하고는. 그러니까 내가 빵에서 출소를 하고 난 뒤에 말일세... 






참고자료: http://weekly.donga.com/3/all/11/905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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