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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잠 Mar 14. 2021

독후01 <한 눈 팔기>

 우리는 모두 오롯이 현재를 살아간다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한순간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우리는 우리의 현재를 이룩하고 있으며, 그 찰나는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 어느새 과거에 종속된다. 잠시 잠깐의 현재라는 느낌만 있을 뿐 우리가 인식하는 대부분의 순간은 모두 지금보다 가까운 혹은 먼 과거의 사건과 감각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결국 우린 모두 현재라는 시간보다 과거에 더 가깝게, 혹은 더 많은 영향받으며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한눈팔기>의 겐조처럼. 


 해외 유학을 다녀온, 당시 시대의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조금은 다른 주인공 겐조는 과거에서 시작된 여러 인연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요구받는다. 또한 셋째 딸이 탄생하고 연말연초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왜 자신의 삶이 지금과 같이 엉키게 되었는지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주인공 겐조를 둘러싼 세계 속에서 그가 정말 ‘현재'라고 느낄 만한 것은 쉬이 찾을 수가 없다. 흔치 않은 해외 유학의 경험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학문적 혹은 커리어 성취를 위해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지난 과거의 인연들은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금전 문제를 통해 그 지난 과거들이 그에게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오로지 향후 자신이 노쇠했을 때를 대비해 양자로 삼았던 양부와 양모가 있다. 양부 시마다는 노골적으로 자신과 겐조의 과거를 드러내며 지원을 요구한다. 친부로부터 거의 외면에 가까운 양육 포기를 거둬들여 겐조를 양자로 입양한 그는, 겐조의 시각에 의하면 오로지 자신의 노후 안위만을 위해 양육을 하게 된다. 유년 시절의 기억에 더듬어 보았을 때 좋은 옷, 좋은 장난감을 수시로 사주었던 양부였지만 나이가 들어 과거를 돌아보는 현재의 겐조는 그 모든 것들이 오로지 자기 자신인 양부의 안위만을 위해서였다고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무기 삼아 현재의 겐조에게 자신의 불우한 형편을 ‘당연히' 지원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누군가를 통해, 그리고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어른들 간의 이해관계와 그릇된 책임감에 희생된 어린 겐조의 인생은 겐조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원하지 않았던 과거를 대가로 성인이 된 겐조에게 그때의 책임을 되갚아라고 하는 양부 시마다는 자꾸만 겐조를 과거의 그 순간으로 그를 끌어당긴다. 양모 오쓰네 또한 마찬가지다. 비록 시마다 만큼의 노골적이고 당당한 태도는 아니겠지만 그녀 또한 과거 양육하던 시간을 통해 자꾸만 그를 과거로 끌어당기고 있다. 또한 과거 서로의 오해가 쌓였지만 굳이 누군가 특별히 풀려고 하지 않아 점점 더 곪아 썩 좋지 못한 관계를 이어가고 장인도 그렇다. 비록 정중한 태도를 보이고는 있지만 둘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은 겐조의 생각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과거 장인과의 시간은 겐조 입장에서도 내심 해결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겐조는 ‘생각'만 하는 편에 속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린 듯했다.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손을 내밀고 그 손에 있던 무언가를 받고 다시 거둬들이는' 표면적인 모습만 이어졌고 관계의 개선을 위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물론 아내는 그것을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었고. 그렇게 꽉 막힌, ‘종래의 장벽을 무너뜨리기엔 이미 각각의 성격이 너무 굳어져 버려' 현재 장인과의 관계는 겐조로 하여금 장인의 요구에 끌려가게 만들었다. 덧붙여 현실감 있는 묘사와 대화들을 통해 제대로 된 소통 없이 왜곡된 이해의 순간들이 쌓여 소원한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아내와의 관계 또한 그렇다. 미묘한 부부 심리를 완벽하게 간파하며 묘사하는 대사와 모습들을 통해 아내와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사담이지만 그 모습을 통해 현재의 나와 아내와의 모습을 여러 차례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여하간 아내와의 관계 또한 장인과 마찬가지로 아내가 아픈 순간 혹은 아이를 낳는 순간 걱정은 되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 괜한 자존심과 이기심에 행동의 단계까지는 진행시키지 않은 겐조의 모습은 현재의 긍정적 발전을 외면한 채 과거의 부정적 인식에 매몰된 모습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겐조는 과거에 끌려다니기만 할까? 비슷한 일련의 사건들이 겐조에게 일어났을 때 아내는 옆에서 ‘단박에 싫다고 하면 될 일을 왜 응하냐'는 듯한 모습으로 겐조를 힐난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괴로워하면서도 굳이 아내의 말처럼 끝끝내 단칼에 거절하지 못하는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걸까? 어쩌면 불행한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변명을 유지하기 위해 그런 건 아니었을까? 희망을 품고, 영국으로 가 학업을 해보고자 했지만 힘없는 나라에서 온 유일한 동양인이라는 자신의 처지에서 비롯된 외로움,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기에 궁핍했던 당시의 생활 등이 당시의 서양이라는 희망을 짓밟았고, 결국 그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돌아온 고국에서의 삶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외국에 있는 동안 한 명 더 생긴 아이에서부터, 장인의 사업 실패, 여전히 아슬아슬한 아내와의 관계 등은 그 어떤 것도 자신에게 희망 혹은 긍정적인 무언가를 전해주지 않는다. 자신의 집에 종종 찾아와 대화를 나누는 청년과의 대화에서도 그의 현실 세계에 대한 시각을 찾아볼 수 있다. 젊은 시대인이 살아가는 현재의 시대가 지난 시대보다 열 배 더 각박해졌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자신 또한 열 배 더 각박해진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그는 자신이 잘하는 글 기고를 통해 언제든지 원하는 원고료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예정된 매수를 채우고 그 원고를 돈으로 바꿀 단계에 별 어려움 없이 일을 끝냈던' 것을 미루어 보면 그는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말하자면 경제적인 상황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내적으로 고민을 하며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들을 통해 아내와, 그리고 장인과 자신 사이의 관계에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또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는 과거에서부터 이끌려와 현재 불행한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이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세상의 희망과 행복이 있어야 할진대 그렇지 않기에 자신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저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끌려다니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내가 간단하게 조언했던 것도 쉽게 따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겐조는 깊이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를 대조해보며 어떻게 과거가 현재로 발전해 왔는지 의아해하며 왜 자신이 지금 이러한 불행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일까 고민을 한다. 그리고는 결정을 내린다. 모든 문제는 현재에 있다고, 양부나 양모, 누나나 형 그리고 장인 등 모두와 멀어진 것은 이 현재 때문이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모든 불행한 상황은 현재의 모든 관계나 상황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사실 모든 원인은 그들과의 관계가 시작된 과거에 있지만 말이다. 자신의 내면에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는 각 상대 인물들과의 과거의 기억과 사건들이 있기에 현재가 불행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그는 불행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분명 자기 자신에게 그 불행을 바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청년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은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있다는 것을 스스로 밝힌다.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는 청년의 물음에 쓴웃음을 지으며 어느 프랑스 학자가 주장한 한 학설을 이야기해주는데 어쩌면 그것이 겐조의 현실 상황에 가장 들어맞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p.128)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든 생각은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냥 똑같은 방식이 아닌, 주인공 겐조가 ‘왜곡된' 생각에 물들어 자신 주변의 모든 인물을 이해하고 있다는 시각으로 말이다. 문득 가문의 누군가가 성공을 하면 다른 부양가족들을 이끌어야 하는 것이 당연했던 당시 일본의 시대상에 대한 겐조 개인적인 반감이 시마다를 비롯한 지원을 요구하는 인물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책을 덮고 난 후 며칠이 지난 어느 시점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내를 향해 냉랭한 반응을 일삼으며 자신이 낳은 아이에 대해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것과 동일하게) 무관심한 모습이나, 돈을 벌기 위해 어떻게 보면 ‘쉽게' 글을 써서 원고료를 마련할 수 있었던 모습을 비추어보자면 겐조라는 주인물이 확실히 ‘왜곡'된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정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던 장인도 사실 겐조가 생각한 만큼 그렇게 겐조를 향해 감정적 비난을 숨긴 채 ‘겉으로만' 정중한 척했던 것이 아닌, 정말 겐조라는 인격을 존중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히려 논리나 이론적으로 더욱 공감이 갔던 아내 오스미 또한 마찬가지일 테고 말이다. 언젠가 다시 이 책을 들게 된다면 그 부분을 다시금 새기며 2회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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