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의 고장 다즐링
홍차의 품종 중에 다즐링이라는 품종이 있다. 전 세계에서도 최상급으로 손꼽히는 품종인데, 이 품종의 차가 유래된 곳이 바로 인도 다즐링이다. 다즐링은 티베트어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천둥(다즈)의 땅(링)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내가 머물렀던 날 중에 단 하루도 맑은 날이 없을 정도로 날이 변덕스러운 곳이었다.
나는 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는 커피를 마시고, 피로가 쌓여도 커피를 마시고, 목이 마르거나 마실 것 가 당기면 커피를 마시는 커피 애호가이지만, 히말라야 여행을 시작하기위해 고산 적응차, 그리고 티베트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티베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했다.
다즐링은 인도 동북부에 있는 웨스트 뱅갈 주에 위치해 있다. 인도의 동쪽인데 왜 웨스트 뱅갈이냐면, 이 지방은 원래 방글라데시와 같은 지방이었으나, 이슬람교가 더 많은 동쪽의 방글라데시가 분리독립을 하면서 웨스트 뱅갈 지방으로 남게 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다즐링도 사실은 시킴주에 소속된 도시였으나 영국에 의해 분리되었고 아직까지도 다즐링의 시킴 출신 사람들은 시킴주로의 분리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
다즐링에 도착하려면 콜카타에서 뉴잘패구리(New Jalpaiguri)까지 12시간 기차, 뉴잘패구리로 부터 90km 지프를 타고 3시간가량 줄곧 산을 넘어 북쪽으로 올라가야 도착할 수 있는 꽤나 먼길이지만, 히말라야를 보려면 그 정도의 고생쯤은 감수해야 된다며 콜카타에서 뉴잘패구리로 출발했다.
매우 더운 시즌에 에어컨이 없는 SL (Sleeper)을 타서 많이 더울 줄 알았으나 야간기차에다가 뉴잘패구리로 가는 길이 고도가 서서히 높아지는 길이었고, 북쪽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덥지는 않았다. SL 칸을 처음 타기 전까지만 해도 빈민들이 너무 많아서 물건을 막 훔쳐간다는 소리에 무서웠다. 그래서 1층 다리에 가방을 우선 묶었다.
근데 내가 탄 칸이 가족들이 탄 칸이었는지,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와 탔다.
가족들은 나에게 호기심을 보이며 본인들이 싸온 난과 커리, 달을 나에게 주며 뭔지도 모르는 나에게 먹어보라고 보채서 먹었다. 처음엔 미심쩍었지만 그들의 진심 어린 미소에 받아 들고 먹었는데 그 맛은 진짜 어딜 가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음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LOWER, 즉 1층이 내 자리였는데 나는 외국인이니까 불편할 거라고 같은 칸에 탄 가족 중에 UPPER 좌석 보유자가 나에게 자리를 양보해줬다.
이 가족들이 보여준 성의, 호의 덕분이었을까? 인도 사람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날 이후로 나를 대하던 인도 사람들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고 대하게 됐다.
다만 중간에 길이 안개가 껴서 도착이 2시간가량 지연됐고 총 14시간이 걸려 뉴잘패구리 역에 도착했다. 아직도 귀에 맴돈다. 짜이 파는 아저씨의 짜이 소리가.
"짜이~ 짜이~"
뉴잘패구리역에 내리면 보통 역 앞에 다즐링으로 가는 사설 지프가 있다. 사설 지프가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러 (그래 봤자 2천 원이지만) 고민하던 중에 "다즐링 지프 스탠드"라는 곳으로 30루피에 데려다준다는 기사가 있었다. 인도를 여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는 당연히 "다즐링에 위치한 지프 스탠드"인 줄 알고 지프를 탔으나 알고 보니 그 명칭은 "다즐링으로 가는 지프가 서는 곳"이라는 의미였다. 결국 공영 지프 스탠드에 와서 지프를 잡아 탔다. 사설 지프는 보통 6~8인, 그리고 공영 지프는 10인이 차야 출발하는 시스템이다.
드라이버와 같이 탄 현지 사람들이 외국인인 나를 조금 넓은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이렇게 아무 이유 없이 쉽게 호의를 준다. 나 때문에 불편하게 가는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했다. 내가 너무 계산적인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렇게 계속 호의를 받으면 가끔 사기꾼인 사람들도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사기꾼이 아닌 사람들이 더 많았기에 더 기억에 남는 인도 여행이다.
길을 올라가다 보면 기찻길도 보인다. 기차를 타고 갈 수도 있지 않나? 싶지만 원래는 이 기차는 일반적인 기차가 아니라 영국에서 차를 운반할 목적으로 만든 기차다. 기차 폭이 좁고 장난감 같다고 해서 "토이 트레인"이라고도 한다. 물론 이 기차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다. 지프로는 3시간이 걸리는 길을 기차로는 최대 9시간 정도가 걸린다. 지금 생각하면 여행이니까 저런 것도 탈 수 있지 않나 싶지만, 그때는 나의 마음속에 여유가 존재하지 않아 선택하지는 않았다. 다음에 가면 또 선택을 할까? 잘 모르겠다. 이동하는건 너무 피곤하다.
지프를 계속 타고 달려 다즐링에 도착했다. 내가 본 인도(콜카타)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확실히 여기는 인도사람들보다 티벳사람들이 더 많이 사는 것 같다. 심지어 우리와 외모도 비슷해서 종종 사람들이 여기 말로 말을 걸었다.
초우라스타 광장에서는 인도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다. 무슨 유명한 (아미르 칸 정도 되는?) 배우가 와서 촬영을 하고 있고, 그 덕분에 스탭들, 그리고 그 배우를 따라 온 팬들 때문에 성수기가 아니지만 성수기처럼 방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좀 특이했던것은 광장 근처에 삼국지의 관우를 숭배하는 사당이 있었던 점이다. 중국에서만 있다고 들었던것 같은데 여기도 있는게 신기했다.
맑은날 다즐링에서는 칸첸중가의 봉우리가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머무른 내내 칸첸중가는 보이지 않았고, 이는 나를 시킴주의 갱톡까지 들어가게 만들었다. 날씨도 춥고 우중충해서 힘든 와중에 우연히 콜카타에서 만났던 K와 Y, 그리고 H를 만난 김에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계속 커리만 먹고 다녀 질린 우리들은 문명의 상징 프랜차이즈로 향했다. 피자헛에서 치킨이 들어간 피자를 시키고, "마살라 레몬에이드"가 있어 시켜보았는데 먹고 토할뻔 할정도로 맛이 없었으나 우연히 만났던 친구들 덕택에 재밌게 수다를 떨며 먹었다. 이때는 몰랐다. 앞으로 이 동행들과 꽤나 오랜 기간 같이 다니게 될것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