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리 Nov 04. 2018

홍차 다즐링 말고 인도 다즐링 #2

안개라는 장벽 속에서

다즐링에 도착한 다음날, 추운 날씨에 잠이 화드득 달아났다. 분명 같은 인도였는데 날씨가 이렇게 다르다.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도 땀을 뻘뻘 흘려야 했는데 지금은 또 바람막이에 후드티를 걸치고 있다. 드넓은 국토와 다양한 지리적 요건 덕에 같은 시기에도 여러 날씨를 맛볼 수 있는 것 또한 인도 여행의 매력이다. (아마 한국에서는 다양하고 다이나믹한 날씨를 동일한 장소에서 1년간 맛볼 수 있다는 것도 매력포인트이지 않을까, 살면서 눈을 보지 못했던 동남아 관광객들이 한국을 방문하듯!)

아침 안개에 둘러쌓인 다즐링

일어나 창밖을 쳐다보니 다즐링은 안개라는 이름의 장벽 안에 휘감겨 있었다. 창문을 열었더니 방안으로 안개가 들이닥쳤다. 안갯속에서 서 있는 기분은 묘했다. 신선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이런 공기를 맡아본지가 꽤 오랜만이다. 캐캐 한 먼지 구덩이 콜카타와는 다른 신세계다.

아침을 먹으러 밖으로 나섰다. 날씨가 흐리면 보통 기분이 안 좋거나 혹은 돌아다니기 적합하진 않을 텐데 워낙 더운 동네에서 올라왔던 터라 이런 날씨가 괜히 반가웠다.


여행을 시작하고 가장 많이 하는 걱정은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뭐 이게 회사를 다니거나 한국에 있어도 똑같이 존재하기야 하겠지만 익숙한 음식이 곁에 없는 때만큼 자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간단히 먹되 차가 유명한 곳이니 꼭 다즐링의 홍차를 먹어보기로 했다.

홍차

홍차를 마셨다. 약간의 포도향이 살짝 맴돌았다. 어라? 홍차가 원래 이런 맛인가? 하고 다시 들이켰다. 홍차를 직접 사 먹어 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처음 느껴지는 맛이었다. 차에서 포도향이 날줄이야! 포도향이 난다고 이야기했더니 주인이 다즐링 홍차는 원래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운 동네이고, 차밭이 넓게 분포가 되어 있어 여러 가지의 특성이 합쳐져 그 맛이 난다고 한다. 차의 맛을 잘 모르겠지만, 꽤나 괜찮은 경험이었다.


홍차와 토스트로 가볍게 아침을 한 우리는, 전날 하지 못한 빨래를 맡기러 갔다. 평소 같으면 숙소에서 빨래를 해서 널어 둘 배낭여행자이지만, 다즐링의 4월은 물이 부족한 동네다. 비가 이렇게 자주 오는데 물이 부족하다는 게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다즐링은 히말라야에 위치해 있다. 4~5월쯤 접어들면 히말라야도 날씨가 더워져서 눈이 녹아내리게 되고, 눈이 녹아내리면서 산에 흙과 섞여 내려오기 때문에 마시거나 세탁을 할 물이 부족해지게 된다. 물론 몰래 화장실에서 빨래를 한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이야 없겠지만은, 우리는 잠시 머물다 갈 '여행자' 아닌가. 여행자로서 우리는 여행지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니까.

세탁소

다른 인도의 지방 같으면 빨래를 주로 1kg 당 받는데 다즐링은 물이 부족한 동네이니 만큼 티셔츠 1장, 셔츠 1장 등 1장당 가격으로 받았다. 처음엔 바가지인 줄 알았으나 바가지가 아니라 그저 물이 부족한 동네의 특성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빨래를 맡겼다.


Y를 보내고, 사진에서 보듯 날씨가 그리 좋지는 않지만 케이블카를 타면 다즐링의 전경이 보이지 않을까 싶어 케이블카로 향했다. 인도에서는 케이블카를 Ropeway라고 부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닫혀 있다.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사실 오만한 생각이긴 한데 인도인들은 일요일에도 안 쉴 줄 알았다. 앞으로는 이런 생각을 안 해야지 라고 다짐했다. 여행을 하면서 오만한 생각들이 하나둘 씩 사라져 가는 게 내가 성장하는 것만 같아서, 이런 깨달음을 얻을 때는 기분이 좋다.

오늘밖에 시간이 없는데 타지도 못하고, 실망을 한채 숙소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인상 좋은 상점 주인을 만났고 날씨도 추운 데다가 상점 주인의 인상 덕에 짜이와 오믈렛을 하나 사 먹었다.

짜이

인도를 여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짜이를 많이 마셔보지는 않았지만, 추운 날씨 덕에 어느 곳 보다 맛있는 짜이였다. 단것을 싫어하는 나였지만 짜이의 단맛은 알게 모르게 내 입가를 맴돈다. 덥고 더운 콜카타에서, 먼지가 가득한 길거리에서 짜이를 마시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시 콜카타로 돌아간다면 마실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위생이 어쩌고를 떠나서 인도 여행을 풍부하게 하는 재료가 된다.

한국에서 스타벅스의 차이 티 라떼를 좋아한다면 아마도 짜이도 좋아할 확률이 높다.

안개가 끼기 전과 후

잠시 맑았던(진짜 맑았는가?) 다즐링에 다시 안개 장벽이 생겼다. 도시가 신비로워지는 느낌이다. 

잠시 햇살을 받으러 앉아있던 아이들

숙소까지 장장 1시간을 넘게 걸었다. 걸어 올라가는 길에 아이들을 만났는데 아이들의 얼굴이 한국사람들과 너무 흡사했다. 종종 나를 티베트 사람이나 혹은 인도 동북부의 나갈랜드, 마니 뿌르 사람과 혼동하는 인도 사람들이 있었는데 실제로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을 보니 틀린 말은 아니구나 싶다. 


우리는 내일 칸첸중가를 보기 위해 갱톡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4월 29일까지는 카트만두에 도착해야 대통령 투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시기는 대통령 선거 해외 부재자 선거를 하는 기간이었다.) 실제로 갱톡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은 3일밖에 되지 않을 테지만, 칸첸중가를 보지 못했던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갱톡으로 가기 위해선 시킴주에 갈 수 있는 퍼밋(Permit: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District Magistration Office 에 가면 바로 받을 수 있는데 우리는 오전에 떠나기 위해 Foreigners Registration Office(이하 FRO)에 들러 신청서를 먼저 작성했다.

인도도 은근히 프랜차이즈가 많다.

사람들이 인도를 미개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쉽지만 은근히 다양한 프랜차이즈들이 들어서 있고,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인도에 오기 전까지 생각하던 고정관념들이 하나둘씩 깨지고 있다. 

다즐링 쵸키네 그리고 비프 모모(Beef Momo)

고정관념은 음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도 사람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라는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분명히 인도를 와보지 않았거나 델리 정도만 가볍게 들렸을 확률이 높다. 적지만 꽤 여러 지역에서 소고기를 먹는다는 사실. 콜카타에서 소를 도축하는 모습을 보고 놀랬던 나는 쵸키네에서 소고기가 들어간 모모(만두)를 먹었다. 심지어 저녁에는 티베트식 소고기 육개장(티베트식 칠리소스와 소고기를 끓인 국)을 판다는 사실. 고정관념은 생각의 많은 틀을 지배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숙소에서 책을 잠깐 보다가, 어디선가 본 다즐링의 막걸리, 뚬바라는 게 있다는 정보가 기억나 찾아보니, 우리가 지나갔던 길에 팔고 있었다는 정보를 입수. 인도는 주마다 다르지만 생각보다 술을 마시기가 어렵기 때문에 술이 고팠던 우리는 당장 달려갔다.


다즐링 동물원으로 가는 방향에 있는 "Hot Simulating Cafe"
아마 구글 지도에 치면 나올 거다. 여기는 티베트식 막걸리인 뚬바를 판다.

바는 이렇게 나오는데 뚜껑을 열고 뜨거운 물을 부은 뒤, 3분에서 5분 정도 기다리면 아주 맛있는 막걸리가 된다. 막걸리인 듯 아닌 듯 한 맛인데 뜨거운 물을 계속 넣어 마실수 있다.

우리는 신나게 이걸 나눠 마시다가, 이 카페 사장님이 퇴근해야 된다는 소리를 듣고 얼른 자리를 떴다. 역시 한국과는 문화가 다르다. 이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고. 이래야 맞긴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20년 이상 살았던 나에게는 아직 낯설다. 


퇴근하던 사장님이 우리에게 술을 좋아하면 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권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현지인이 직접 권한 술자리, 그리고 현지인이 자주 들리는 술집을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따라갔다.

인도에서 흔히 보던 킹피셔가 아니라, 사장님은 HIT 맥주를 시켰다. 병을 자세히 읽어보면 시킴 지방의 맥주인 듯하다. Super Strong이라고 쓰여있는 만큼 도수가 강하다. 우리는 얼굴이 시뻘게 질만큼 맥주를 마셨다. 정말 오랜만에 즐겁게 술을 마신 듯하다. 사장님의 인생 이야기를 다 들었던 것 같은데...

즐겁게 원샷!

너무 즐겁게 마신 덕분에 기억이 전혀 나질 않고, 기억나는 건 이렇게 마시고 숙소에서 열심히 토를 했다는 사실. 뚬바를 같이 먹었던 탓에 더 심하게 토를 한 것 같다. 어찌 됐건 많은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덕분에 재밌는 이야기도 듣고, 맛있는 맥주도 마시고, 다즐링에 우리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에 다즐링에 다시 간다면 꼭 이 공간에 들릴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