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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able Jun 19. 2024

3. 권고사직, 조용한 소용돌이

회사와 나를 분리하기 시작하다. 


어느 날, 주 고객사와의 성공적인 시연 미팅이 끝나고,

팀장님께서는 우리 팀을 회의실에 불러모아 말씀해주셨다.

“곧 대규모 권고 사직이 일어날 거에요…
이건 저희 팀만 알고 있어야해요. 다음주면 전체 회의를 통해 내용이 알려질 거에요.”


우리는 벙 쪘다.

“왜? 이제 막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갑작스런 대규모 권고 사직은,

보이지 않게 우리 팀과 회사 전체, 그리고 팀장님까지

조용한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었다.


23년은 스타트업의 난항이자, 무덤이었다.

미국 빅테크 회사들의 대규모 권고 사직, AI와 Chat GPT의 등장으로 인한 인간 노동력 필요의 상실,

대한민국의 어려운 경제 상황에 따라

23년에 스타트업들이 망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다를 줄 알았다.

왜냐면 23년 연초부터 대기업들의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23년 중순에는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잠재 고객사에서 필수로 써야만 하는 신규 서비스를 출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TF팀도 만들어지고, 신규 사업 전략 기획팀에도 속하게 되며 

커리어 전환과 레벨업을, 산업 내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도모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럼에도, 회사의 내부 사정은 달랐던 것 같다. 

모회사의 대표님께서, 재무 상태를 칼같이 중요시 여기는 분이시라고 했다.

특정 사업은 잘 되어가고 있었지만, 진행해왔던 다른 사업은 난항을 겪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대상자는, 연차와 관계없이, 칼 같았다.

회사의 아주 작은 사무실 시절부터 가장 오래 함께한 디자이너분,

그리고 다양한 초년생 디자이너분들까지…


수익이 나는 핵심 본부를 빼고는, 회사에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감정은 고려요소에서 제외되었다. 

어쩌면 이익에 의해 생존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점점 출근할때 누구도 밝게 인사하지 않았고,

회사 분위기는 점점 삭막해져갔다.


한분 한분 오래 함께하신 동료들을 떠나보낼 때,

함께한 시간이 떠오르면서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눈물이 나와도 콱 참고,

그 자리에서는 절대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팀장님은 그때 아프셨다.

월에 몇회씩 병원 입원 치료를 병행하면서, 클라이언트와의 프로젝트 소통은 원활히 수행하고 싶어

새벽 4시까지 일하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나도 동료들의 권고사직 그 이후부터는,

회사를 어떻게 다녔는지 기억이 정확히 나지 않고, 

온통 내 머릿속에는 회색 빛 색깔만 가득하다.


그 와중에 이직은 하고 싶어서,

꾸역 꾸역 서류를 쓰고,

대기업 면접을 보러 다녔다.

서류를 넣은 대학원의 면접도 봤다.


그저 이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내가 정말로 그것을 ‘왜’ 원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이게 나를 ‘안정적인’ 길로 인도해줄 것이라고 믿고

계속 수행했다.


그렇게 원동력 없이 나를 갈아넣다 보니,

나는 쉽게 지치고 말았다.


.

.

.


그때부터였다.

회사와 나를 분리하기 시작한 지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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