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야?!"
오늘 봤다. 그리고 꽤 많은 평론가들의 극찬어린 평론들을 봤다. 생각지도 못한 메타포에 놀랐다. 허나 스토리텔러 입장에서 나는 이 영화의 주제가 윌리의 저 외침이라고 생각한다.
뻔히 길러 준 아빠인걸 알면서도 눈 앞의 아빠를 두고 묻는 "당신은 누구야?!"
이 영화의 시작은 16년 후부터 라고 생각한다. 혁명이 끝나고, 동지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밥은 평범한 아버지가 되어 딸 윌라를 키우며 살아가던 그 시점. 거기서부터가 진짜 이야기다.
16년 동안 밥은 무엇을 했을까. 혁명가였던 자신을 지우고, 과거를 숨기고, 그저 딸 하나 잘 키우기 위해 애쓰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딸이 납치당한다.
이때부터 밥이라는 캐릭터가 완성된다. 그의 장애는 명백하다. 늙었다. 16년 동안 총을 잡지 않았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게다가 과거의 동지들은 이미 죽거나 변절했다. 혼자다. 무능력하다. 하지만 딸을 구해야 한다는 초목표 하나는 명확하다. 외면적 초목표는 딸을 구출하는 것. 내면적 초목표는 아버지로서의 존재 증명이다. 혁명가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아버지가 되기로 선택한 그 16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
밥은 완벽한 주인공이다. 응원하게 된다.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그 응원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딸을 구하려 발버둥 치지만 계속 실패하는 모습, 총 한 방 제대로 못 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 늙은 몸으로 젊은 악당들과 맞서는 모습. 모든 순간이 절실하다. 이게 진짜 가족 영화다.
나는 모든 명작의 기준이 가족이라고 믿는다. 『록키』도 그랬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도 그랬고, 『그래비티』도 그랬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든, 선택으로 만들어진 가족이든, 결국 인간을 움직이는 건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이 진실을 더욱 복잡하게 비튼다. 윌라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밥이 아니다. 악역 록조다. 퍼피디아와 록조 사이에서 태어난 딸. 하지만 16년 동안 윌라를 키운 건 밥이다. 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선택으로 만들어진 가족.
영화는 묻는다. 진짜 아버지는 누구인가? 피를 나눈 사람인가, 함께 산 사람인가?
영화의 백미는 윌라의 외침이다. 자신을 구하러 온 밥을 눈으로 보면서도, 윌라는 소리친다. "당신은 누군데!!"
이 장면이 의미심장하다. 윌라는 이미 안다. 저 사람이 16년을 함께 산 아버지라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혼란스럽다. 록조에게서 진실을 들었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아버지는 록조라는 것을. 그렇다면 밥은 누구인가?
폴 토마스 앤더슨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아버지란 무엇인가? 피를 나눈 사람인가, 함께 산 사람인가?
미국인들에게 이 질문은 더욱 날카롭다.
미국은 누구의 나라인가? 태어난 곳으로 정의되는가, 선택한 곳으로 정의되는가?
록조는 순수 혈통을 주장하지만 자신은 혼혈 딸의 아버지다. 이민자를 배척하면서도 이 나라는 이민자가 만들었다.
"당신은 누군데!!" 이 질문은 미국 자체를 향한다.
크리스마스 뭐시기 클럽 회원들 에게도 해당되는 질문이다. 그들 역시도 이민자들의 후손이다.
세계인들에게는 보편적인 정체성의 문제가 된다. 우리는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국적인가, 신념인가? 혈연인가, 관계인가?
윌라의 외침은 21세기 모든 사람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이다. 국경은 무너지고, 혈통은 섞이고, 가족의 정의는 변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자본주의에게 이 질문은 냉소다.
록조는 권력과 인정을 위해 자신의 딸을 죽이려 했다.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상류층이 되기 위해. 그가 가장 필요했던 순간, 그 조직은 그를 독가스로 죽인다. 자본주의가 약속하는 소속감은 환상이다. 진짜 가족은 밥처럼 무능해도 끝까지 달려오는 사람이다.
아나키즘에게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다. 프렌치 75는 무너졌다. 퍼피디아는 배신했고, 밥은 포기했다. 혁명은 실패했다. 하지만 세르지오는 여전히 이민자를 돕고, 디앤드라는 용감한 비버 자매회를 운영한다. 그리고 윌라는 오클랜드 시위에 참여하러 떠난다. 조직은 무너져도 정신은 이어진다. 끝없는 전투는 계속된다.
"당신은 누군데!!"
윌라의 외침은 우리 모두를 향한다. 당신은 피로 정의되는가, 선택으로 만들어지는가? 당신의 정체성은 태어난 곳인가, 사는 곳인가? 당신이 진짜 지켜야 할 것은 혈연인가, 신념인가?
밥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달려올 뿐이다. 16년 동안 그랬듯이. 그것이 답이다.
결국 영화는 사람 이야기다. 얼마나 큰 예산을 쏟아붓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진실한 질문을 던지느냐의 문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2025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로튼 토마토 96%, 메타크리틱 95점이라는 점수가 과장이 아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예술영화 감독에서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변신한 게 아니다. 그는 여전히 예술영화를 만들고 있다. 단지 그 캔버스가 더 커졌고, 질문이 더 날카로워졌을 뿐이다.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볼 것이다. 그리고 아마 또 볼 것이다. 계속 생각나고,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마치 끝없는 전투처럼 말이다.
태권도가 아니라 가라테 인게 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