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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Aug 31. 2023

전업주부와 워킹맘이 상극인가?

비로소 집에 홀로 남았다. 방학 끝, 개학이다.

아이들은 학교를 가고 남편은 출근하고 간만에 식탁에 앉았다. 아무 생각 없이 창 밖 하늘을 바라본다. 아무도 '엄마'를 부르지 않은 공간이 낯설어진 늦여름 아침. 내 멋대로 내린 커피 한 잔을 두고, 철 지난 다이어리를 펴고, 사각거리는 소리가 대단한 걸 쓰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펜을 놓고. 2023년 8월... 날짜를 쓰다가,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이 꽂힌다. 던져진 시선을 거둘 마음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어떤 것에도 쫓기지 않고, 누가 앗아가기 전에 틈바구니로 주어진 호젓함을 꼭꼭 씹어 넘긴다.


마음만 먹으면 구름 흘러가듯 시간도 흘러가게 둘 수 있던 때가 있었다.

누구 엄마로만 불리던 때. 은행 계좌 개설을 할 때면 직업란에 '주부'라고 적어야 했을 때. 소속된 공간은 오직 '우리 집', '내 가정'뿐이었을 때. 아이들을 유치원, 학교에 보내놓고 밥 대신 까만 커피를 넘겨도 누가 뭐라 하지 않고, 누구 하나 재촉하지 않고, 무엇 하나 나를 옥죄지 않았을 때. 과거가 되어버린 지금은 그 여유가 그리운데 그땐 그게 서럽기도 했다. 일하러 나갈 곳이 없다는 사실, 딱히 나를 찾아주는 곳이 없다는 사실, 돈을 벌 만큼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조금은 의기소침했더랬다. 


'기자' 대신 '주부'를 선택한 건 순전히 내 결정이었다.

그건 분명 '자의'였는데, 바깥일을 하지 않아 무용한 인간이 돼버렸다는 자격지심이 일 때면 갑자기 '타의'로 바뀌곤 했다. 옅은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어쩔 수 없었던 상황에 려 이렇게 됐던 거였을까.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면 자존감도 급추락했다. 가족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엄마', '아내'로 숭고한 삶을 살고 있거늘, 집을 나가면 어떠한 생산적인 역할도 하지 못하다니. 자아효용감이 바닥을 쳤다.


 "다들 워킹맘으로 사느라 힘드시죠."

누군가 '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놀고먹는 사람'이구나?'라는 인상을 내게 반사시킬 때 상당히 불쾌했다. 아이 친구 엄마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의사, 원장, 아티스트, 미디어사업 종사자. 지금은 쉬고 있지만 조만간 다시 일하러 나갈 거라고 묻지도 않은 미래 설계를 떠들어대는 00 엄마, 경제적 여유를 누리며 취미 삼아 일 금수저 **엄마 사이에 앉아 있자니 민망해졌다. '이거 뭐야, 나도 일했다고. 기자였단 말이야!' 유치하게 과거를 들먹거리고 싶다는 욕구에 빠져 혼자 입을 씰룩거렸다. 뾰족해진 성게가 되어 갑자기 워킹맘 어쩌고 들먹이기 시작한 00 엄마를 찔러주고 싶었다.


워킹맘일 땐 전업주부들 사이에 있으면 죄책감이 고개를 들었다. 일도 좋지만, 돈도 좋지만, 가정과 육아를 살뜰히 돌보지 못한 구멍은 어떻게 하지. 전업주부가 되자 자꾸 뒤를 돌아봤다. 다들 일하고 애도 키우고 잘만 사는데 워킹맘으로 버텼어야 했나. 워킹맘과 전업주부를 대척점에 두고, 마치 상극인 듯 그네처럼 오갈 이유가 전혀 없었거늘, 그땐 그랬다.


징그럽 울어대던 매미 소리도 잦아들고, 한결 시원해진 바람이 부는 창가에 앉아 있으니 그날이 오버랩됐다. 더는 출근하지 않아서 기뻤던, 오전시간에 백화점 쇼핑을 갈 수 있어서 좋았던 때. 집안일은 해도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아 마음껏 내 시간을 가용할 수 있었던 그때. 나름 충만했던 시간이었는데 그땐 왜 마냥 누리지 못했을까. 커피가 식어간다. 이제 잠시 밀어둔 일을 시작해야 한다. 글을 읽고 강의를 준비해야 하는 늦여름 아침, 주부이면서 워킹맘으로 출근하지 않고도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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