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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Aug 02. 2024

여행은 단지 3박 4일이었는데

에필로그_8주간 삿포로에 있었다

기자 시절, 해외 출장의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내 돈 말고 남의 돈으로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는 즐거움이란! 하지만 출장은 마냥 신나지 않다. 출장 다녀오면 기사를 써야 한다. 세상엔 결코 공짜가 없다.

   

삿포로에서 돌아오자 남편이 자꾸 여행기를 독촉했다. "그래서, 삿포로 여행기는 언제 나와?" 여행 다녀와서 글 쓴다고 말한 적 없는데 남편은 여행이 어땠는지 궁금하다며 잊힐만하면 묻고 또 물었다. 여행 보내준 '물주', '스폰서'에게 예의를 지켜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겼다. 그래, 남의 회사를 위해 기사도 쓰는데 남편이 기다리는 글 하나 못 쓰랴. 그래도 자신이 없어 망설였다. 겨우 3박 4일 다녀온 걸로 무슨 대단한 여행기를 쓰나. 별로 쓸 것도 없는데. 그럴 때마다 남편이 말했다. "스스로 기록을 남긴다는 기분으로 써 봐. 나중에 당신이 늙고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손자 손녀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삿포로에서 이런 걸 했어. 할머니는 여행 가서 이런 생각을 했어'라고 이야기를 남기는 마음으로."


남편이 대신 써주지 않은 이상 실질적인 도움이 되진 않지만, 그의 조언 덕에 마음은 가붓해졌다. 떡볶이를 해 먹고 옷 한 벌을 사도 글을 쓰고 공개하는데 남동생과 둘이 여행 다녀온 걸로 왜 못 쓰겠나 싶었다. 언론사 데스크(기사의 취재와 편집을 지휘하는 부서장)가 쓰라는 것도 아니고 평생 반려자 남편이 쓰라는데 그것 하나 못 쓰랴. 까칠한 데스크처럼 내 글을 두고 갈구진 않을 테니 까짓 거 쓰마, 써.


삿포로역 근처


그리하여, 겨우 3박 4일 다녀온 여행으로 글 10편을 썼다. 쓸까 말까 망설이고, 어떻게 쓸까 고민하고, 매주 2편씩 연재를 기획한 시간을 헤아리면 두 달, 8주에 달하는 기간을 삿포로에 할애했다. 글을 쓰려고 여행을 다녀온 건 아데 사진보다 더 긴 글이 남았다.


일본 여행은 핑계였을 뿐, 내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어떤 소재와 주제로 글을 쓰든 삶에 대한 태도가 드러난다.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픈 마음, 남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만큼 나 역시 방해받기 싫은 마음, 환대와 배려, 친절이 오가는 기쁨을 누리고픈 마음.

    

논쟁을 부른 '일본이 좋은데 이를 어째'를 썼던 것도 사실 이러한 마음의 발로였다. 백여 년 간 위정자들도 어찌하지 못한 국가적인 사안을 글 하나로 해결하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경험한 환대와 친절이 좋았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 이번 여행기를 쓰면서 곁에 두고 읽었던 <여행의 이유>에 나온 대목도 그러했다.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그래서 '일본이 좋은데 이를 어째'는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 내가 속깊이 느낀 것, 솔직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온전히 전달되지 못했다. 일본을 자주 다녀온 것도, 일본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글을 쓴 건, 삿포로와 홋카이도를 처음 겪은 풋풋한 감상은 오직 지금만 쓸 수 있어서였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 절대 쓰지 못할 이야기. 내겐 이만큼 쓰고 이만큼 반응을 얻었다는 글쓰기의 역사이자, 기록이다. 시간이 흐른 후 같은 주제로 보다 자신 있게, 보다 여유롭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삿포로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물적, 심적, 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남편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심히 무탈하게 잘 지내준 두 아들에게도 고맙다. 집에 돌아온 엄마를 격하게 반가워하지 않은 두 아들을 보며 <응답하라 1988>에서 정봉엄마(라미란 여사)가 해외여행 다녀온 후 느꼈던 서운함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독립해 부모 품을 떠날 듯싶다.


맛있는 것, 예쁜 것,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세 남자가 생각났다. 나중에 그들과 다시 오리라, 그땐 일본어를 공부해서. 그러려면 내 열심히 일해서 부지런히 돈을 모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무기력에 지친 내게 전보다 강렬한 노동 의지가 다져진 걸 보니, 어쩌면 남편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생산성 극대화 프로젝트. 당신 다 계획이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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