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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엄마, 오늘은 묻지 않았다

대답을 얻어내는 노하우

by 오르

"오늘 학교 어땠어?"

"친구들은 방학 잘 보냈대?"

"00은 XX와 여전히 사이가 안 좋니? 괜찮아진 것 같아?"


현관문이 열리면 물음표가 먼저 들어선다. 궁금한 게 많은 엄마에게 태어난 아이들은 묻고 답하는 일에 익숙하다. 그런 아이들도 가끔은 난감한 표정으로 날 빤히 쳐다본다. "엄마, 00과 XX 사이가 어떤지는 제가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엄마는 가끔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것까지 요구하는 질문을 해요. 기자여서 그런 거예요?"


직업병은 사라지지 않는 걸까. 시도 때도 없이 사실관계를 꿰맞추려는 질문이 툭툭 튀어나온다. 진정 궁금한 걸 어쩌랴. "엄마, 좀 그만 물어봐요. 우리가 그렇게 궁금해요?" 암만, 궁금하고 말고!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묻는 건 깊은 애정에 근거한 호기심이다. 하지만 어떤 질문은 아이의 시야 밖을 요구한다. 아이가 다른 친구들 사이가 어떤지 속사정을 어찌 알겠는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일을. 나야 내 아이를 챙기듯 아이 친구들 안부도 헤아리고 싶지만, 아이 귀에는 '정보 수집'처럼 들릴 때가 있다. '팩트 체크'라는 이유로 기자가 매일 쫓아다니면서 일거수일투족을 꼬치꼬치 묻고 또 묻는다? 흐음, 갑갑함을 인정한다.


개인적인 호기심을 해결 받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피곤하게 할 순 없다. 아이가 영영 입을 다물어버릴지도 모른다. 가볍고 쉽게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질문의 범위를 좁힌다. "오늘 학교 어땠어?" 대신 "오늘 뭐가 제일 재미있었니?"라고 묻는다. 전자는 하루 전체를 요약하라는 과제 같고, 후자는 선택의 여지를 준다. "친구들과는 문제없지?" 대신 "오늘은 누구랑 얘기를 제일 많이 했어?"라고 바꿔본다. 그러다 운 좋게 얻어걸리면 남자 녀석들이 요즘 어떤 '짱구짓'을 하고 다니는지 재미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의미 있는 답변을 얻기 위해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속 깊은 이야기일수록 말하기 어렵다. 이럴 땐 "지금 말하지 않아도 좋아. 대신 생각이 정리되면 말해줘."라고 귀띔한다. 부모로서 꼭 들어야 할 중요한 말이라면 아이 입에서 언젠가는 나온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이건 답변을 얻는 기술 중 최고 난도다.


질문을 멈춰야 할 때도 있다. "오늘은 피곤해서 말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아이가 ‘빨간불’을 켜면 결단코 입을 다물어야 한다. 궁금함이 지나치면 무례해질 수 있다. 그래서 질문이 솟구칠 때마다 되뇐다. ‘묻기도 하지만 멈추기도 해야 한다, 대답을 기다리되 때론 듣기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강의 중 질문을 던질 때 학생들이 고개를 숙이면 다음 질문을 삼킨다. 카카오톡에 물음표를 가득 채워 넣으려다 멈춘다. 궁금함에 브레이크를 달 줄 아는 능력이 말의 지혜를 더한다.


그럼에도 본디 참을성이 부족한 터라 아이가 말끝을 흐릴 때 그 끝을 잡아당기고 싶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결론은?" 이렇게 추궁하면 백전백패다. 질문의 방향을 돌려 스스로 묻는다. 이 질문이 지금 당장 필요한가? 아니면 내가 불안을 달래려는 의도일까? 질문은 애정의 다른 이름이지만, 방향과 속도는 조절해야 한다. 그래야 묻고 답하는 사이, 우리는 서로 연결되고 관계는 단단해진다.


종종 글을 쓰다 손 끝을 들어 허공에 띄운다. 잠시 생각의 틈을 두어 다음 문장을 고민할 때 나오는 나름의 버릇이다. 바로 이어 올 문장이 반드시 필요한지를 따지고 조금 더 적확한 단어를 고르는 시간이다. 글을 쓸 때 문장에 브레이크를 달듯, 말에도 브레이크를 달아야 한다. 잘못 튀어나간 말은 백스페이스 키를 눌러 지울 수도 없다.


요즘 말 끝에 물음표가 너무 많이 붙는 것 같아 어찌해야 하나 방법을 찾는 중이다. 마냥 입을 닫고 살 수도 없고 매번 마침표를 콕콕 찍어 단정적인 서술문만 만들 수도 없다. 지금까지 찾은 아주 단순한 해결책. '하지 않아도 되는 질문은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다.', '지독한 궁금증에 기인한 질문이라면 상대에게도 도움 될지 생각한다.'


일방적으로 상대의 세계를 열어젖히는 건 언어적 무력 행위다. 가끔은 모르는 상태로 남겨두기로 한다. 답이 채워지지 않아야 상대를, 나를, 우리를 더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전보다 조금 덜, 조금 천천히 묻고 있다. 꼭 들어야 하는 이야기는 알아서 내게 굴러 들어온다는 걸 경험 중이다.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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