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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23. 2022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무지갯빛 하루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저는 2N살 여름이라고 합니다.’ 이런 기계적인 답변을 제외하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저 이름과 나이보다 훨씬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니까. 국적, 나이, 성별, 성적 지향, 성격, 직업, 장애의 유무, 관심사. 이렇듯, 우리를 정의할 수 있는 수많은 단어들 중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성적 지향’이다. 내가 LGBTQ+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은, 나의 삶 깊숙이 또 커다랗게 위치하고 있다.



    

   몇 년이 흘렀지만, 처음 커밍아웃을 했던 날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거절당하면 어쩌나, 나를 보는 시선이 변하면 어쩌나 불안에 떨다,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오랜 걱정이 무색하게도 친구들은 너무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고, 그 덕에 씩씩한 퀴어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듯, 커밍아웃의 끝이 늘 좋았던 것은 아니다. 대놓고 거부감을 표하는 사람도, 정신질환이라 말하는 사람도 만났다. 나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음에도, 거부당하는 경험에는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세상이 그리 친절하지 않음을 깨달은 이후, 꽤 오랜 시간 거짓말을 하며 살아왔다. ‘주말에는 뭐 했어요?’라는 물음에 ‘퀴어문화축제 다녀왔어요!’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떤 영화를 가장 좋아하냐는 물음에 ‘캐롤’이라고 답할 수도 없으니까. 연애 얘기가 나오면 늘 ‘연애에 관심이 없어서요’라고 답하곤 했다. 평범하고 평범하게.  


    그러나 올해 들어, 그 거짓말의 종지부를 찍었다. 일상의 작은 부분 속에서, 매일 스스로를 부정하는 말을 내뱉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그 오랜 거짓말에 지쳐, 또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을 믿고 용기를 내어,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더 나서기로 했다. 이제는 나를 태워가면서까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싶었다.


    오픈퀴어는 아니지만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커밍아웃은 누군가를 내 세상으로 초대하는 초대장이자, 우리가 여기 존재함을 알리는 운동이다. 그래서 대화의 흐름상 커밍아웃이 필요하면, 씩씩하게 이야기를 한다. ‘난 떡볶이보다 김밥이 좋아’라는 말을 하듯 자연스럽게. 몇 년 전만 해도 커밍아웃을 할 때마다 불안에 떨며 펑펑 울었는데, 이제는 김밥을 먹으면서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어졌으니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모든 삶의 방향은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이기에, 내 삶에는 오늘도, 내일도 무지개가 가득할 것이다. 미래를 계획하고 진로를 고민할 때도, 내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곳을 가장 먼저 고민해 온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퀴어를 ‘용’같다고 말했다. 들어는 봤지만 본 적은 없는 전설의 존재 같다는 유쾌한 비유에,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브런치의 첫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여러분 주변에 어쩌면 득실득실할지도 모르는 용 한 마리의 자기소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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