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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Jan 29. 2020

쉽지 않은 말로 쉽지 않게

사유하는 연습


 겨울이면 베란다에 잘 나가지 않는다. 베란다도 엄연한 실내인데 바깥 날씨보다 늘 더 냉랭하기 때문이다. 얼음장 같은 타일을 밟고 싶지 않지만 오늘은 베란다로 나갔다. 거기엔 안 쓰는 물건들을 모아 놓은 작은 서랍장이 있는데 제 몸뚱아리에 비해 품은 게 많은지 꼭 한 번씩 끄트머리를 삐걱여줘야 열렸다. 일기장 몇 개를 꺼내 들고 방으로 왔다. 오래된 일기장들은 시간이 흐른 만큼 차갑게 얼어 있었다. 우선 엄지 손가락의 탄력을 이용해 한 번에 스르륵 종이들을 넘겨 본다. 어쩌다 글자가 빼곡한 페이지를 발견하면 이게 웬 떡이야 싶다. 어떤 날, 무슨 말들을 그렇게 써놓은 걸까. 일기를 쓴 혜택은 이럴 때 빛을 발한다. 소중한 기억들이 생기고 당시엔 괴로웠으나 지금 보면 아무렇지 않은 간극도 웃으며 만끽할 수 있다. 대단한 감흥을 느끼긴 어려웠다. 그 감흥 없음이 조금 허무해져 다른 일기장을 잡아 봤지만 좋은 감상을 찾긴 힘들었다.


- 2015년 10월 13일의 일기-


중랑천을 걸어서 스타벅스에 갔다. 그냥 삼천 얼마 하는 딸기 주스를 시켰다. 다니던 중학교 앞을 걸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음에도 뭔가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원더걸스의 텔미가 처음 나온 날 민아랑 운동장에 나란히 앉아 이어폰을 나눠 끼고 텔미를 들었다. 수행평가로 만든 작품이 망가질까 이른 새벽에 그걸 안고 등교했다. 모르는 애한테 체육복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할 뻔한 날도 있었다. 몇 가지 기억나는 게 없어 생각날 때 빨리 써놓아야지 안 그럼 안 된다. 더는 까먹고 싶지 않으니까. 시간은 너무 빠르고 카페에서 혼자를 만끽하는 지금이 좋다.


 긴 휴학을 하는 동안 독서를 조금씩 습관화하게 되었다. 재미를 붙여 찾아 읽는 일은 거의 4년 만이었다. 집에 있던 낡은 책을 들고 삼청동으로 출근을 했는데 점심시간이면 정독 도서관 벤치에 앉아 유부초밥을 먹으며 읽었다. 그때 읽은 책들은 옆모습이 울퉁불퉁하다. 마음을 관통하는 문장과 생생한 표현을 발견할 때마다 온몸이 짜릿해져 모서리를 접지 않고는 못 배겼으니까. 바쁘게 일 할수록 생각하고 감각하는 데 무뎌져서 읽히는 표현들이 죄다 생경했고 아름다웠다. 그때 나는 최적의 표현과 묘사를 이루는 문장을 쓰고자 골몰했다. 가장 최선의 문장이 가뭄에 콩 나듯 나오면 그 날 매출이 저조해도 그게 내 성공이었다.


- 요시모토 바나나, <데이지의 인생> -


 그래도 나는 야키소바 볶는 것이 좋았고, 오코노미야키를 뒤집는 것도 질리지 않았다. 주문이 들어오는 순간에는 '아, 귀찮아.'하고 생각하지만, 재료가 앞에 있으면 몸이 신이 나서 움직였다. 그 움직임을 느끼는 것이 좋았다. 가게가 끝나 불을 끄고 밖으로 나갔을 때의 바람 내음, 별을 올려다보고, 땀이 잦아들고, 축제가 끝난 후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좋았다.

 

 여름에 북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마감을 하고 나오면  저랬다. 축제가 끝난 후의 기분에 빗대는 표현력에 읽는 나에게도 땀을 날리는 가벼운 바람이 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문장들은 흐릿하면서도 강렬하다.  표현에 충만해져 피로를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훌륭한 작가에게는 언제든지 상징할  있는 단어와 시점이 머릿속에 있나 보다. 나도 일기에 저런 문장을   알면 좋을 텐데 생각했지만 그저 감상에 젖을 뿐이었다. 바쁜 때는   권을   내내 읽어도 읽지를  했고 일기도 핸드폰에 가끔씩 썼다. 집에 가는 버스에서 창피했거나, 하고 싶은데 하지   말을 주로 적으며 속사포처럼 내뱉는 일기였다. 고민하며 쓰지 않아서 굉장히 단순하고 직관적인 문장들.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하나는 확실해서 믿을  있는 문장이었다. 묘사와 아름다운 단어에 집중할  나는  느끼했고 작위적이기도 했다. 직관적인 글은  그대로 파악하기에 용이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에 불안하고 무엇에 집착하는지. 잠금장치가 있는 메모는 비속어와 줄임말도 손쉽게 적혀 해묵은 감정을 게워낼  있었지만 중요한 '어떻게' '' 없었다. 어떤 현상이 있었는지 관찰과 설명이 부족했다.  


- 정세랑, <피프티 피플> -


 예를 들어 엄마는 「반지의 제왕」 주인공은 '프로도'가 아니라 '샘'이라고 믿고 있는데 따지고 보면 정말 샘인 것 같았고,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보고는 "아이고, 저년은 팔자도 사납지."라고 놀랍도록 경제적으로 요약하기도 했으므로 이삭은 특별히 다시 설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너무 감명 깊게 보고 좋아한 나머지 하도 홍보를 하고 다녀서 주변 사람 셋이 정세랑 작가의 책을 사 읽었다. 아주 단순한 문장도 밑줄을 그었는데 나는 그렇게 쓰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문장을 보면서 처음으로 말을 걸게 되었다. '왜 이 문장이 좋지?' '어떻게 이렇게 재밌게 쓸 수 있지?'를 생각했다. 정세랑 작가의 책들을 모으듯 사 읽었는데 뭐가 위트인지, 뭐가 탄성을 내지르게 하는 문장인지 너무 잘 아는 사람 같았다. 중요한 것은 하나도 힘 들이지 않아 보이는 것. 꾸민 듯 안 꾸민 듯 파리지엔처럼 말이다.


 저 문장을 읽자마자 우리 집 은숙 씨가 떠올랐다. 은숙 씨는 가족들이 모여 드라마를 볼 때, 본인이 이미 본 화이면 대뜸 스포일러를 했다. 우리가 볼멘소리로 "아~ 그런 걸 말하면 어떡해~!" 하면 은숙은 "가족끼린데 뭐 어때~!"라고 말했다. 그 자신 있는 태도에 우리는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거랑 그거는 달라도, 그러게 가족끼리 뭐 어때. 순식간에 생각을 무력하게 만드는 희한한 위트가 은숙에게도 있었다.


내게 부족했던 점이 그런 관찰이었다. 나 자신 말고 타인이 주어가 되는 법. 계속 눈을 뜨고 거듭 관찰하는 태도. 볼 줄을 알아서 현상을 잘 캐치하는 글은 파장했다. 책으로부터 확장되는 경험들이 그래서 선명하다. 비슷한 경험이 있거나,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그것은 글쓴이에게 충분한 글감이었으니까. 나는 그것을 조금씩 연습하고 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번지는 글을 쓰고 싶어서이다. 직접 쓴 일기를 다시 보아도 마음이 번지는 글은 많지 않다. 적다. 스스로를 설명하기 위한 글 보다도 자꾸 물음에 물음을 더 해 충분히 사유한 기민한 글을 쓰고 싶다. 2015년에 쓴 저 일기를 다시 쓴다면 왜라고 묻고 싶다. 왜 중학교 앞을 지나면 골똘히 생각하는지. 왜 까먹고 싶지 않은지. 그냥 딸기 주스를 시켰다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지. 헬륨 풍선처럼 손 놓는 순간 날아가버리는 생각을 다시 한번 붙잡아 보는 훈련. 쉽지 않은 말로 쉽지 않게 쓰는 일기. 그건 내가 글을 어려워해서 이기도 하다. 사실 좋아하면서도 계속 어려워하고 싶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나는 한 발 자국 더 들어가 생각해보고 싶다. 서로가 가진 깊은 생각들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고 그것들을 구현해내는 일이 머지않아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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