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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식당 by 안주인 May 02. 2022

24절기 - 곡우 | 씨앗을 뿌리는 때

간절함의 다른 이름 - 기우제를 지내던, 곡우(穀雨)

곡우는 땅에 씨앗을 뿌리고 싹이 잘 자라도록,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절기라고 한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나 마른다."는 말이 있는데, 이 때 가뭄이 들면 그해 농사를 망친다는 뜻이란다. 수확은 결국 뿌려둔 것을 때가 되면 거두는 것이니, 모든 것을 시작하는 중요한 때이다. 


"저는 이 시기가 되면 결연해져요. 옛사람들은 기우제를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대요. 비가 올 거란 믿음으로, 비가 올 때까지 지냈기 때문이죠." 요가 선생님은 '곡우'를 지나는 마음을 '인디언 기우제'의 간절함으로 알려주셨다. 


올해 내가 간절하게 거두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태양력으로 '곡우'를 지나던 때(4월 20일), COVID-19 확진자가 되어 꼼짝없이 앓았다. 어떤 씨앗을 심을지 고르기 전에 건강이야말로 모든 수확의 근원, 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이라는 밭에 촉촉히 비가 내리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이 앞선다. 


강릉 <테라로사> 뮤지엄 입장 전에 만났던, 커피 체리 나무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지는 '24절기'와 지구의 자전을 통해 태양과 만남을 가리키는 '24시간'은 묘하게 닮았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그 날 수확할 마음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양력으로 8번째 '곡우'를 닮은 아침 8시가 되면 나는 어김없이 커피를 내려 마신다.


'곡우'에는 산나물을 많이 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취나물, 고사리, 고비, 두릅, 엄나무순, 참죽나무순 등. 지난 절기에 이미 초록을 먹자는 글을 써두기도 했고, 글작성을 때에 맞춰 못하고 늦어졌으니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의 씨앗이 되는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로스터리 카페 <브라운칩>에서 사켜먹은 원두 봉투 더미

내가 커피를 '알고' 마시게 된 각성의 계기는 3번이 있다. 

1. 신혼집 주변에 위치해 커피 맛 선생님이 되어주신 우리가 정말 좋아하던 카페, <브라운칩>

2. 핸드 드립 '손맛'을 알려주신 <콩당콩당> 클래스 

3. 커피 체리의 역사부터 공정과정까지 보고 들으며 배우게 된 <테라로사> 커피 뮤지엄



<콩당콩당>에서  커피클래스 기초 과정을 배웠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커피를 내린다. 그 날의 날씨, 집에 남은 원두의 로스팅 날짜와 종류에 따라 20g의 원두를 그라인더에 갈고, 물을 끓여 200ml의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이 나의 오랜 리추얼이다. 알람 없이 반짝 눈을 뜨는 아침형 인간이기도 하고, 출근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 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복이기도 할테다.


신맛과 쓴맛의 균형을 적당한 온도로 잡아내는 것이 매일 아침 핸드 드립의 미션이다. 비몽사몽간에 굼뜬 아침의 움직임을 통해 느릿느릿 커피를 내리며, 집안에 퍼지는 커피향을 맡으면 비로소 하루를 시작하는 씨앗을 뿌리는 것만 같다. 물길을 따라 봉긋하게 부풀어 오르는 '커피 빵'은 마치 봄비에 촉촉히 젖어 생명을 틔우는 장면과 비슷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커피를 마시면 확실히 각성 효과가 있다. 빈 속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 딱히 좋을리 없을텐데 정신이 깨어나고, 장운동을 시작하라는 신호가 내려지기도 한다. 어디 아침 커피만의 일인가. 하루 중 피로감이 덮치는 매순간 커피 한 모금을 통해 아침을 시작하는 컨디션으로 시간을 되돌리려 애쓰게 된다.  


재택 근무를 해보니, 습관적으로 소비하는 커피의 횟수가 얼마나 잦은지, 그래서 커피콩을 소비하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절감하게 되었다. 커피 값을 감당해야 하는 돈도 돈인데, 자본주의 현대인이 소비하는 어마어마한 커피 콩의 총량이 지구를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요즘 사는 맛> 요조님 글을 통해 알게되었다. 커피 뮤지엄에서 들여다 보았던 커피 농장의 사람들의 삶이 결국 나와 연결되고, 오늘 하루 내 커피 소비가 미래 지구랑도 연결되는 일인 것이다. "안다는 것은 힘이 아니라, 고통이 되기도 한다"는 깨달음이 어쩌면 내가 커피를 '알고 마신다'고 생각하는 4번째 각성일지 모르겠다.


커피를 끊겠다는 말은 못하겠고, 습관적으로 쉽게 마시면 안되겠다는 다짐은 해본다. 간절함으로 기우제를 지내던 농사 짓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오늘 하루 잘 지내보겠다는 간절함을 담은 순간에 귀하게 마셔야지. 의도를 가진 습관은 '의식(리추얼)'이 된다했다. 나의 오랜 아침 리추얼,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는 순간에 뿌리는 마음의 씨앗이 좋은 싹을 틔울 수 있도록 가능한 애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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